분류 | 게시판 |
베스트 |
|
유머 |
|
이야기 |
|
이슈 |
|
생활 |
|
취미 |
|
학술 |
|
방송연예 |
|
방송프로그램 |
|
디지털 |
|
스포츠 |
|
야구팀 |
|
게임1 |
|
게임2 |
|
기타 |
|
운영 |
|
임시게시판 |
|
현 한국 온라인게임의 처절한 결과물이 기획능력의 부족이라고 말하신다면 이해가 가십니까?
예제를 들어보겠습니다. 물론 야매로.
기획서 A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한 개의 인스턴스 던전 구성에 대한 개요도가 적혀 있습니다.
모범적인, 뛰어난 기획자가 일을 처리하는 프로세스를 보시면...
기획자:자, 여기 기획서가 완성되었다. 이번에 할 일은 인스턴스 던전, 플레이타임 약 2시간을 뽑아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지. 일단 컨펌을 받은 원안은 이렇다. 4개의 이동경로, 6개의 보스, 이동경로 중 4번 경로는 두 개로 나뉘어져 최종 보스를 택1하는 구조다. 고로 플레이어들은 4개의 경로와 5마리의 보스 몬스터를 잡도록 만들었지.
직원1:왜 굳이 택1을 해야 한댑니까?
기획자:아이템 테이블을 나눠서 현재 상황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얻을 기회를 선택하는거지. 무기를 먹을 것이냐, 갑옷을 하나 더 먹을 것이냐.
직원2:그렇지만 작업량이 늘어나는 것에 비하면 효과는 별로일 것 같은데요? 던전 이펙트랑 보스 패턴을 이용하는 건 어떻습니까?
기획자:음... 그것도 나쁘지 않긴 한데. 일단 1개의 보스로 2개의 효과...
직원3:차라리 던전 구조를 원형으로 하고 던전 공략을 시계,반시계에 따라 드랍테이블이 바뀌는 건 어떨까요? 원형 던전이니 출구를 따로 만들지 않아도 되잖아요.
기획자:그래? 니들 생각은 어때?
직원1:3이 말한 쪽이 훨씬 괜찮을 것 같은데요. 진행 방향이 헷갈릴 수 있다는 문제가 있지만...
직원2:던전 진입 이후 첫 보스와의 전투 승리 시, 반대편 입구를 봉쇄하면 헷갈릴 일이 없지 않을까요?
기획자:그거 괜찮네. 그럼....
직원3:잠깐, 그러면 종료 직전에 반대편 보스에게 접근하는 꼼수가 나오지 않을까?
기획자:아냐, 그건 전투 시작 이후에 몇 미터 떨어질 때 자동적으로 끌어당기거나 하는 식으로 막으면 될 거야. 그럼 변경한 거로 다시 컨펌 들어가봐야겠다. 원형 던전, 진행 방향에 따른 아이템 테이블 변경.... 그런데 이러면 첫넴이랑 막넴이 서로 같은데?
직원3:첫네임드를 잡으면 그 패턴 중 하나가 막넴으로 옮겨지면 될 것 같은데요.
직원1:혹시 모르니 추가적으로 원형 던전 한가운데에 숨겨진 방을 구성할 여지를 남겨두는 건 어떨까요?
기획자:그럴까? 아니 그러면 너무 복잡해질 것 같은데...
직원1:난이도 변경이나 차후에 재활용할 여지가 있잖아요. 일단 문만 마련해두고 열리지 않는다 정도로 해 두면, 나중에 어디 써먹을 기회라도 있겠죠.
기획자:콜. 그럼 여기까지 수정한거 들고 다시 올게.
대충 이럴겁니다. 실제로는 뭐 더 복잡하고 뭐 하고 하는 이야기가 나올 거에요. 그러길 바래야죠. 안그래요?
하지만 안 좋은 기획자라면?
기획자:야, 여기 기획서. 일단 이거 만든다.
직원1:어, 그러니까.... 일방행 던전이고 보스는 여섯? 그런데 보스룸이 다섯개밖에 안나올 것 같은데요.
기획자:막넴은 둘 중에 하나 골라서 나오게 할 거야.
직원2:쓸데없이 방 두 개 만드는 것보단 하나로 하는게...
기획자:야, 막넴이 딱 방 안에 하나씩 있고 하나 잡으면 하나는 알아서 사라지도록 할 건데 두 개는 있어야지.
직원3:차라리 패턴 바꾸기로 보스 하나를 통합해서 하죠? 기획서 보면 테이블 드랍 차이를 두는 것 같은데 그냥 스위치 하나로...
기획자:그럼 멋이 안나잖아. 똑같은 거 계속 때려잡으면 누가 좋아하겠어? 자, 자. 시끄럽고 이거로 간다.
무슨 차이인지 아시겠습니까?
예쓰, 그렇습니다. 좋은 기획자는 초기 구상 단계에서 확실하게 가닥을 잡고 그걸 수정해서 최대한 '더 이상 뭔가 뜯어고칠 여지를 남기지 않도록 한 다음' 본격적으로 일을 진행합니다. 나쁜 기획자요? 확실하게 안 하고 나갔다가 '어 이건 아닌 것 같아, 이거 수정' 인거죠.
기획이 얼마나 잘 잡히냐에 따라 총체적인 소요시간 및 자원소모도가 확 달라집니다.
구라같다구요? 한 번 봅시다.
기획:자, 이번 던전 컨셉은 원형임.
그래픽:ㅇㅇ... 그런데 어떻게 만들면 됨?
기획: 사이즈는 ~~미터*~~미터로 할 거고, 통로 공간은 ~~미터, 보스룸은 대충 ~~미터 정도로 잡아주면 됨. 아, 그리고 중간은 ~~미터정도 비어둘거임. 나중에 뭐 추가할지도 모르니까.
그래픽:음... 그럼 뭐 어떻게 하지. 이번 컨텐츠 메인 테마가....
기획:참고할 건 이 시대 양식이랑 이 시대 양식 중심으로. 그리고 참고할만한 거 이거랑 이거 정도로 생각하면 됨.
그래픽:아, 이거? ㅇㅋ. 뭔지 대충 감 옴. 작업 들어감. 아 그런데 이거 추가해도 됨? 어울릴 것 같은데.
기획:하지마라. 너만 어울린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마라.
그래픽:ㅇㅇ... 그냥 까라는대로 까겠음.
기획:다됨?
그래픽:ㅇㅇ 다됨. 여기염.
기획:ㅇㅋ. 그런데 이거랑 이거 좀 수정해야 할 것 같은데. 조금 안어울린다....가 아니라 이새퀴 넣지말라니까 그러네?
그래픽:뭐임마 어울리잖아.
기획:안돼. 빼.
그래픽:ㅇㅇ.... 빼드림.
명확한 목표물을 던져주면 제작하는 족족 구상도와 비슷한 결과물이 나옵니다. 하지만...
기획:헤이, 이번 목표는 이거임.
그래픽:크기는여?
기획:거기 써져 있잖아. 아무튼 만들어 와봐.
그래픽:참고할만한거 그런 거 없고?
기획:이번 컨셉 맞춰서 만들어오면 됨.
그래픽:뭔가 불안한데.... ㅇㅇ 아무튼 알겠음.
그래픽:다됐음. 와보셈.
기획:야, 이거 좀 이상한데.
그래픽:니가 만들래서 만들었는데 뭐가.
기획:아 그러니까... 아무튼 마음에 안든다. 다시 만들어와봐.
그래픽:야 니가 동굴이라며.
기획:아니 그 동굴 말고. 그런 거 있잖아. 고대 유적 동굴.
그래픽:그래서 뭐 넝쿨이나 나무뿌리라도 잡아넣으라고?
기획:ㅇㅇ.
그래픽:아오 ㅆ.... 다시 해옴.
그래픽:자, 변경.
기획:아 이게 아닌데...
그래픽:뭐임마?
기획:아무튼 이거 아님. 이런거 보여줘도 까일테니까 다시 만들어오셈.
그래픽:야이시발롬아.
이처럼 그래픽 파트에서부터 명확한 기획이 없다면 삽을 풉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할 기획서가 뒤엎어지는 케이스를 고려하지 않았죠.
물논 제대로 된 기획자라면 그 엎어질 여지가 없도록 수정 다 하고 난 뒤에 작업 들어갑니다.
기획:야....
그래픽:아 ㅆ, 님 작업하는데 시간 걸린다고 이야기 했잖슴. 좀 있다가 다시 찾아오셈.
기획:그게 아니라... 이거 엎어졌음.
그래픽:?!?!
기획:위에서 바꾸라고 해서 원형던전으로 바꿈.
그래픽:그럼?
기획:기존 컨셉대로 다시 만들어오셈.
그래픽:야이 시발롬이?!?!
농담같죠? 물론 비약 심하고 대충대충 쓰긴 했지만 그렇게 농담같은 건 아님.
이런 상황의 반복이 게임 제작 시간을 연장시키고, 예산과 인력을 낭비합니다.
처음부터 기획서 하나가 멀쩡했다면 안벌어졌을 삽질이 무수히 반복되는거죠.
하긴, 어떤 아저씨처럼 회사 내에서 갑오브갑의 위치라면 시키면 뭐 밑바닥 계층이 뭐가 어떻게 굴러가던 상관 없는 입장이라면 밑이 죽어나도 자기 알 바 아니죠. 그냥 원하는 거 내놓으라고 찌르면 갈려가면서 삽푸면서 내놓을테니까요.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