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글
두번째 글
중학교 2학년 때
집 가까이에 뒷산이 있어서 자주 올라갔음.
왕따는 아니였지만 좀 어른스러웠던 편이라 또래들과 안놀고 혼자 산에 산책가는걸 즐김.
해발 200m도 채 안되는 산이라 두시간이면 정상.
그 날도 학교 마치고 특별히 할 일이 없어 혼자 산에 올라갔는데...
오르는 입구부터 징 치는 소리와 태평소 소리, 꽹가리 소리가 멀리서 들렸음.
산 밑에 점집이 몇 개 있었고
몇 안되는 약수터에 초가 타다가 남은 자국이 예전부터 보여서
그냥 '굿하는 날인가보다' 하고 무시하고 산에 계속 오름.
산은 그닥 가파르지 않았지만
정상 부근만큼은 50m 정도 뾰족한 암벽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처음 가는 사람은 절대 장비 없이는 못오르고,
보이는 쪽 말고 암벽 뒤쪽 갈라진 틈을
손과 발로 후킹 잘해야 간신히 올라갈 정도.
그런데 그 날따라 왠지 암벽을 타고 정상까지 가기가 좀 망설여졌음.
새소리도 안나고 벌레소리도 없고
왠지 기분이 나지 않았음.
30분쯤 잔재주를 써가며 암벽 정상으로 올라갔는데...
그 때 정말 보지 말아야 할 장면을 목격하게 됨.
무당옷을 입은 남자 한 명이 머리에서부터 피를 펑펑 쏟아내며 부들부들 떨고 서있었음.
암벽 정상이라 밑으로 뛰어내릴 수도 없고
어떻하더라도 그 피투성이 남자에게서 피할 방법이 없었음.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맛보며 입을 딱 벌리고 서있었는데
그 사람이 신음소리 비슷하게
"나 실패했다.실패했어.아아아. 실패했다."
이 소리만 100번 넘게 반복해서 읊조림.
마치 영화 주온에서 머리 피투성이된 귀신?이 자기 머리를 주체 못하고 기괴하게 흔들흔들 거리는 딱 그 모습.
나는 비명지르고 기절 직전까지 갔었는데
이 상황이 장시간 계속 되니까 오히려 정신이 조금씩 돌아옴.
그래서
"아저씨 왜 그러시는데요?"
이빨을 딱딱 마주치며 덜덜 떨면서 물어봄.
대꾸없이 "실패했다." 100번 더 반복.
피를 얼마나 오래 흘렸는지 거의 피딱정이가 생길 정도.
사정하듯이 몇 번 더 물어봄. "아저씨 왜 그러시는데요?"
그러자 드디어 딴 곳을 쳐다보던 시선이 나에게로 맞춰졌고
나도 제대로 쳐다볼 수 있게 되었는데
머리 정수리 쪽이 이미 깊게 파여져서 하얀색 뼈가 보였음.
나에게 하는 말이
"니가 대신해주면 안되겠니?"
"예?"
"나 실패해서 죽을려고 여기 아래로 뛰어내렸는데 잘 안죽더라. 나 좀 죽여줄 수 없을까?"
내가 살려면 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들었음.
그와 동시에 왠지 친한척 달래보면 뭔가 수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도 듬.
그래서 애써 태연한척
"아저씨, 뭘 실패하셨는데요?" 이랬더니 하는 말이
"아아아. 내가 묶어뒀어야 하는데 잘못해서 풀려났다. 이제 다 죽게 생겼다."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난 후 추론해보니
귀신을 자기 실수로 풀려나게 해서 자책감과 공포감에 자살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여겨짐.)
"아저씨. 저하고 그냥 내려가면 안되요?" 그랬더니
"그게 다시 나한테 오면 사람 더 다친다. 그냥 내가 죽어버리는게 낫다." 이런 알 수 없는 선문답으로 대꾸.
도망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사람을 원하는대로 밀어버릴 수도 없고...
겁이 나서 심장마비로 죽을 지경인데
그 사람도 이미 과다출혈로 죽기 일보직전.
색동무당옷이 피를 머금지 못해 암벽바위로 줄줄 흐르고 있었음.
그 때 언뜻 내 주머니에 작은 성냥갑이 있다는걸 깨달음.(자질구레한 것들 모으던 습관)
죽을 지경에 이르면 머리가 어찌 그리 빨리 돌아가던지...
"아저씨. 저 이 성냥 드리고 갈테니까 아저씨가 알아서 하시면 안될까요?"
정말 간절하게 그 사람이 *알 아 서 해주길 간절히 빌면서 말했음.
내 말에 대꾸없이 다시 '실패했다. 아아아' 반복.
한시간 쯤 피투성이 사람앞에서 이 상황을 반복하고 서 있으니 조금 대범해지기 시작.
"아저씨. 저 엄마가 빨리 오라고 했어요. 저 이제 가야해요." 간절한 짜증 시전.
"성냥 여기에 두고 갈테니 어저씨가 알아서 하세요." 하고 등돌려서 내려 가기 시작.
처음 봤을 때보다 그 때가 더 떨렸음.
한발씩 한발씩 덜덜덜 떨면서 암벽을 간신히 내려옴.
내려오자마자 뛰어가아하는데 너무 긴장해서인지 발이 안떨어짐.
거의 기다시피 조금씩 조금씩 그 암벽 쪽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는데
세상에서 처음듣는 엄청난 비명소리가 남.
"끼이이이이이"
그 소리 나자마자 뒤를 돌아볼 정신도 없이 미친듯이 질주해서 하산.
그 때 도망치던 속도가 어느 정도였냐면
내리막길 급경사를 발 한번 딛고 다시 다음발 내딛을 때까지
공중에서 점프상태로 수십초 머물렀던거 같음.
꽤 많이 그 장소에서 벗어났다고 생각들었는데
그 때
타는 냄새가 남.
실제로 타는 냄새가 아닌
머리 앞, 미간에서 느껴지는 아주 짙은 타는 냄새. 머리가 아플 정도로 타는 그 냄새.
이상한 비명소리도 인가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 들렸음.
집에 와서부터는 거의 기억이 안남.
내 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기절하다시피 덜덜 떨다가
잠들었는지 기절했는지 그 다음날로 시간이 점프.
그 이후로
그 장면이 떠올려질 때마다
그 날의 그 냄새?가 머리로 느껴짐.
잊혀질만하면 그 냄새가 나고 그 날의 기억이 떠오름.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 냄새가 날 때 주위를 살펴보면
개가 치어 죽었거나 고양이 시체가 어느 구석에 말라붙어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전에 사람이 죽었던 적이 있는 곳이라는거...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이야기 안하고 잘 살아온 것이 용하다고 스스로 생각함.
가위도 안눌리고
귀신을 직접 보는 것도 아니고
단지 냄새만 맡는 거니까
충분히 익숙해져서 참고 살만함.
글 쓰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 사건 이후의 정신적 충격 때문에
잠재의식 속에서 그 공포가 가끔 냄새로 발현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아니면
그 무당의 어떤 능력이 나에게로 전이가 되었나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고,
혹시
그 무당이 묶어두지 못한 무언가가 나에게 붙었나 싶기도 하고...
그 날 그 무당은 죽었을까?
죽었다면 뛰어내렸을까? 내가 준 성냥을 사용했을까?
처음으로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풀면서
이제서야 그게 궁금해지는건 또 무슨 심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