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이순신장군에 대해 알아보려한다.이것은 일종의 가정일 뿐이며
사실이 아니고 다른 어떠한 의도도 없음을 미리 밝히는 바이며 나역시 가장 존경하는 위인중하나임을 밝혀두는바이다.
그의 많은 업적들을 다 밝히기엔 너무 무리가 있으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충무공 이순신...지금부터 우리는 그의 마지막 죽음에 대해 알아보려한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말라."라는 말로도 더 유명한 그의 죽음.
1958년 54세때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그는 숨을 거둔다.
그것이 그의 기록의 마지막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하나의 의문을 가진다.그전에 노량해전에 관해 알아보자.
11월 18일 저녁 6시경에는 무수한 왜선들이 노량에 집결하였으며, 그 척수는 무려 500여 척에 달하고 있었음. 이순신 함대는 왜선에 불을 지렀고 관음포로 물러선 왜선들은 최후의 발악을 하기 시작함. 전투 중 이순신 장군은 왜군의 층각선을 공격하여 그 중 1명을 사살함. 그들의 층각선이 공격당하는 것을 본 왜군들은 진린의 전선을 그냥 버린 채 층각선을 구출하려 함. 진린은 그 틈에 급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으며,이순신과 진인은 다시 합력하여 포를 발사하여 왜선을 불사르고 깨뜨림.이때 날아든 총탄은 이순신 장군을 쓰러뜨리고 맘. 곁의 회와 완은 울음을 참고 시체를 배 안으로 옮기고 그대로 독전기를 흔들면서 전투에 임하함. 때문에 어느누구도 알지 못했음. 이렇게 전투를 계속하는 동안, 그 날 12시경까지 200여 척의 왜선이 격파되었으며, 적의 사상자 수는 헤아릴 수 없었음.
드디어 본론이다.그의 죽음은 아주 단순한 의문을 남긴다.
윗글을 간단히하면 이순신함대가 왜선을 격파하는 중 왜구들을 격침당하던중 그들의 머리라고 할수있는 층각선(장군이 탄배)가 공격당하자 그것을 구하기위해 왜구가 공격하던 총탄에 맞았다라고 적혀있다.
윗글로 미루어보면 노량해전은 이순신장군이 지휘하면서 거의 승기를 잡았던 전투였고 적의 수뇌부만을 처치하면 끝나는 전투였다.
그시절 왜구가 가지고 있던 조총의 사정거리는 약 50미터정도돼었다고한다.
조총에 맞으려면 약 50미터 가까이 접근해야 가능하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장군이....전투의 가장뒤에서 모든 배들을 지휘하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가 그것도 승기를 잡은 전투에서 위험한 적함에 그렇게 가까이 접근했다는 말인가?
그것은 말이되지않는다.장군이 타고 있는 배의 주변부에는 항상 장군을 보호하기위해 사방에서
호위하는 배들이 있으며 이 배들은 전투가 일어나면 장군의 배와함께하며 그를 보호하도록되어있고 어떤상황에서도 장군의 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죽지 않을수도 있었다.아니,그는 죽.어.야 했던것일지도 모른다.
무슨 말인가?그럼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은 원균이다.그는 이순신을 시기해 그를 모함하여 죽이려하였다고한다.그는
본관 원주(原州). 자 평중(平仲). 무과에 급제, 조산만호(造山萬戶)와 부령부사(富寧府使)를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로서, 왜군이 침입하자 전함 ·무기를 버리고 1만여 수군을 해산시킨 뒤 전함 3척을 이끌고 왜군을 피하였다.
라고 하는 바와 같이 그는 굉장히 비겁하고 야비한 악의 인물로서 나온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이순신을 시기한 것만은 아니었다.그의 원망과 시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생각한다.
이것은 유명한 한산도 대첩의 그림이다.
한산도 대첩은 전라좌수군 24척, 전라우수군 25척, 원균의 경상우수군 7척이 합동하여 왜구를 무찔렀다라고 하는 유명한 전투이다.
여기서 원균은 왜구가 들어오자 전라도의 이순신에게 원군을 청하여 왜구를 무찔렀다라고 하지만 이상하다.원균의 경상우수군이 7척이라니?치열한 전투에서 모두 파괴되어버린것을까?
이곳에서 먼저일어난 원균과 왜구의 전투가 있었다면 그의 병력도 숫자에 포함이 돼어야한다.
하지만 그렇지않다.그것은 이순신이 원군으로 온것이 아니라 원균이 원군으로 왔었던 것이다.
이순신은 해전도중 왜구를 한산도까지 밀어넣었고 그 싸움을 안 원균이 지원을 보내왔던것이다.7척뿐이라고 하지만 한산도까지 쫓긴 왜구는 이미 힘을 잃었고 그 숫자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원균의 생각이었을 것이나,그렇지 않으면........
아시다시피 각 도에는 그곳을 통치하기위한 사람들이 있고 원균역시 그곳의 책임자이다.
헌데 이순신은 그런 그에게 아무런 통보도 연락도 없이 왜구를 이끌고 왔던것이고 급하게 이를 안 원균이 부랴부랴 지원을 보내느라 그랬던것일수도 있다.
이 사건으로 원균은 이순신을 좋지 않게 본다.아무리 전투 상황이 급박할지라도 아니면 겨우 전투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이순신장군을 모함해서 죽을수도 있게까지 한것일까? 자신이 쫓기는 전투도 아닌 적을 쫓는 전투에있어서 전투하는 곳의 수령에게 아무런 통보도 없었다는 것은 그를 무시하는 행동이며 그의 명예에 먹칠하는 행위였다.
그는 이 전투인해 조정에서 무능하다는 책망과 좌천까지 되었다.
그래서 이순신은 왜 죽어야만 했었던 것인가...
이순신은 많은 공적을 거두었지만 원균과의 관계에서만큼은 약점을 보였다.
아무리 대단한 공적을 거둔 장수라고 하지만 원균처럼 그를 탐탐치않게 여기는 조정의 관료들이있을지도 모른다.그들이 이것을 꼬투리잡는다면 충분히 이순신은 모함에 빠질 가능성이 있었다.그래서 그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했던 것이다.
위에서도 밝힌바있지만 이것은 단순한 가설일 뿐이고.사실이라는 증거는 없다.
물론 이순신은 우리나라역사상 가장 훌륭한 위인들중 한명이라는 사실에 변함은 없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