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77710
[교육희망-설문조사] 10개 학교 1499명 대상... '학생 70% 북침' 결과와는 정반대
"묵과할 수 없다."
이 말은 지난 17일 박근혜 대통령이 "학생들의 70%가 6·25를 북침이라고 한다는 것은 우리 교육이 잘못된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면서 던진 경고다. 그러면서 "역사왜곡은 아이들이 가져야 할 애국심을 흔드는 일"이라고 학교와 교사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초강수 '북침' 발언 중계한 언론들... "우민화" 지적
대통령의 초강수 발언에 교육계는 바짝 긴장했다. 박 대통령의 호통에 따라 교육부는 대책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학생들의 상황을 잘 아는 교사들 사이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70% 북침설'의 근거가 된 <서울신문> 설문이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석연찮은 점이 있었기에 더 그랬다.
지난 11일 보도된 <서울신문>의 설문 조사(입시업체가 전자메일을 갖고 있는 고교생 506명 대상)의 질문문항은 '한국전쟁은 북침인가, 남침인가'였다. 이런 설문 결과를 진실로 믿은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진중권 동양대 교수 등 상당수의 지식인들은 "이것은 국어교육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생들이 '북침'이란 용어를 '북한의 침략'으로 오해했기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방송과 주요 일간지들은 <서울신문>의 설문 결과와 박 대통령의 '묵과할 수 없다'는 경고 발언만을 잇달아 보도했다. 이들 언론만 접한 국민과 대통령은 '학생 70% 북침설'을 진실로 굳게 믿게 되었다. '국민 우민화'가 완성되는 순간인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교육희망>이 '6·25 한국전쟁에 대한 서울지역 중고교생 의식조사'를 한 까닭은 이런 '우민화' 상황을 다소나마 깨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이번 조사는 최고 원인 제공자인 박 대통령을 위한 헌정 조사인 셈이다.
질문은 '6·25 한국전쟁은 누가 일으켰나' 이번 조사의 질문 내용은 '6·25 한국전쟁은 누가 일으켰다고 생각합니까?'였다. 이 질문은 2004년 5월 국가보훈처가 진행한 설문 내용과 같다.
조사는 19일 무작위로 뽑은 서울지역 10개 중고교에 다니는 학생 1499명을 대상으로 벌였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였다. 다만 이번 조사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면대면 단일 질문응답 방식으로 벌여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답변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질문 내용에 대한 일체의 부연설명을 하지 않은 채' 진행했다.
결과를 살펴보면, 89.4%의 학생(1341명)이 '북한이 한국전쟁을 일으켰다'(남침)고 답했다. '남한이 일으켰다'(북침)는 답변은 3.3%(49명)이었다. 7.3%(109명)의 학생들은 '러시아, 중국, 미국, 모르겠다' 등 기타 의견을 나타냈다.
이번 설문 결과는 "69.0%가 '북침'이라고 답했다"는 박 대통령 인용 결과와 전연 다르다. '남한의 북침' 답변은 3.3%였기 때문에 박 대통령 인용 설문은 21배 가량 수치가 더 높았던 것이다.
반면, 이번 결과는 국가보훈처가 2004년 5월 청소년(초등학교 5학년 이상 초중고생 대상)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호국·보훈의식 여론조사' 결과와는 편차가 크지 않았다. 당시 '6·25 전쟁을 누가 일으켰느냐'는 질문에 0.7%가 '남한'이라고 답했고, '북한'이라는 응답은 54.5%였다.
역사교사모임 "특정정파 시각으로 교육 개입하면 교육 무너져" 이성호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서울 배명중 교사)은 "잘못된 정보를 갖고 무섭게 대응한 대통령의 발언은 교사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면서 "이 같은 대통령의 대응이 역사교사들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감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언론만큼은 허황된 설문결과를 잘 알고 있었을 텐데도 대통령의 발언만을 집중보도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면서 "특정 정파의 시각으로 근거 없이 부풀려진 조사와 발언을 갖고 역사교육에 개입하려 한다면 교육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질문이 너무 유치해요." 이번 조사를 진행하는 설문지를 본 서울지역 교사들이 던진 말이다. 하지만 기자는 "'소 잡는 칼로 모기를 베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