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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69739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6
    조회수 : 826
    IP : 221.155.***.186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4/10/26 20:41:28
    http://todayhumor.com/?lovestory_69739 모바일
    [BGM] 새벽녘 밤을 밝히는 시 - 쉰 아홉번째 이야기



    1.gif

    나희덕, 그곳이 멀지 않다



    사람 밖에서 살던 사람도 
    숨을 거둘 때는 
    비로소 사람 속으로 돌아온다 

    새도 죽을 때는 
    새 속으로 가서 뼈를 눕히리라 

    새들의 지저귐을 따라 
    아무리 마음을 뼏어보아도 
    마지막 날개를 접는 데까지 가지 못했다 

    어느 겨울 아침 
    상처도 없이 숲길에 떨어진 
    새 한 마리 

    넓은 후박나무 잎으로 
    나는 그 작은 성지를 덜어주었다








    2.gif

    김사인, 풍경의 깊이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3.gif

    조태일, 노을



    저 노을 좀 봐
    저 노을 좀 봐

    사람들은 누구나
    해질녘이면 노을 하나씩
    머리에 이고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서성거린다

    쌀쌀한 바람 속에서 싸리나무도
    노을 한 폭씩 머리에 이고
    흔들거린다

    저 노을 좀 봐
    저 노을 좀 봐

    누가 서녘 하늘에 불을 붙였나
    그래도 이승이 그리워
    저승 가다가 불을 지폈나

    이것 좀 봐
    이것 좀 봐

    내 가슴 서편 쪽에도
    불이 붙었다







    4.gif

    황지우,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 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 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알을 넣어 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5.gif

    이규리, 결혼식




    하얀 드레스 자락이 조마조마 먼지를 끌고 간다

    구두 안에 웅크린 발등도 조마조마 꼼지락거리겠다

    신부, 먼데서 온 신부

    먼지보다 더 작게 웃을락 말락

    소름 돋은 팔이 가늘고 착잡하다

    하얗게 펼쳐 놓은 길, 꿈길

    슬쩍 당기면 헝클어질 광목 깔개가

    문득 실크로드 같다

    천 년 전 사막을 횡단하던 대상들, 오늘 정장으로 모여

    삼삼오오 술렁이는데

    저 행진 끝이 나면

    인연은 무엇을 흥정할 것인가

    일생이 서로 건네고 받아야 할 교역이라는 듯

    지금, 꽉 끼는 구두 참으며 간다

    물빛 아래 보송보송한 먼지. 축가 날리는 속으로

    인조 속눈썹 깜빡이며 어린 낙타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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