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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과 함께 사라진 그녀를 찾아라 |
▣ 글 이수영 기자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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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설계사로 일하던 미모의 40대 여인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김모(42·여)씨가 서울 강남의 한 특급호텔에 투숙한 것은 2004년 5월 6일. 하지만 이날을 끝으로 김 여인은 완벽하게 세상에서 지워졌다. 김 여인의 가족으로부터 실종신고를 접수받은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그녀가 살해됐을 것이란 정황 증거가 쏟아져 나왔다. 특히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내연남 A씨의 자백은 결정적이었다. “김 여인을 살해한 뒤 시신을 한강에 버렸다”는 그의 실토로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그러나 결정적 증거가 될 김 여인의 시신이 나오지 않자 수사팀과 A씨의 지루한 싸움이 시작됐다. ‘제2의 추격자’를 자처한 수사팀을 따돌린 A씨는 누구일까. 또 임신 5개월의 몸으로 사라진 김 여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 의문을 추적했다. 김 여인의 행방을 찾기 위해 4년 전 그가 마지막으로 머문 호텔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A씨와 함께 호텔에 들어간 것은 밝혀졌지만 나온 사실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방에서 몇 가지 이상한 점도 발견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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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건을 담당한 동작경찰서에 따르면 욕조에서 넘쳐흐른 물로 호텔방 안 카펫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욕조 안에 젖은 수건 여러 장이 담겨 있었다. 욕실 바닥에는 A씨의 것으로 확인된 구두 발자국도 찍혀 있었다. 머물던 호텔방에 흥건한 물과 수건 경찰 관계자는 “이 같은 흔적들로 미뤄 A씨가 욕실에서 수건과 물을 이용, ‘무언가를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안양 어린이 살해사건 범인처럼 욕실에서 시신을 처리했는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 수사를 벌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의 욕실은 혈흔은커녕 머리카락 하나 없이 깨끗했다. 호텔 CCT V에 A씨가 시신을 운반하는 모습이 찍혔을까 기대했지만 화면 분석 결과도 건질 것이 없었다. 그동안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의 집중 조사를 받던 A씨의 태도도 변했다. 그는 한때 담당 경찰관에게 “김 여인을 죽인 뒤 한강에 버렸다”는 결정적 자백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바꿨다. 그는 “호텔에서 김 여인과 헤어졌고 그 뒤 만나지 못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검찰은 시신 등 유력한 증거가 나오지 않자 A씨가 혐의를 벗어날 방법을 찾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여인 행적과 관련, A씨의 ‘모르쇠’는 4년 째 계속되고 있다. 경찰에서만 13번, 검찰에서 4번. 무려 17번의 소환조사를 받는 동안 A씨의 주장은 한결같았다. “생사람 잡는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A씨. 하지만 지금까지 수사결과를 보면 그가 김 여인을 해칠 동기와 정황은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교수 출신 벤처사업가 A씨는 모 지방대 강단에 서던 1998년 김 여인과 처음 만났다. 김 여인은 남편과 갈라선 뒤 혼자살고 있었고 A씨는 유부남이었다. 명백한 불륜인 두 사람의 만남은 은밀하게 이어졌고 마침내 2004년 초 김 여인이 A씨 아이를 임신하자 갈등이 시작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 여인은 A씨에게 “당신 아이를 가졌으니 외국에 나가 함께 살자”고 했다. 그러자 A씨는 “합법적으로 출국하면 본처나 회사 사람들이 찾아올지 모른다. 여권을 위조해 중국으로 밀항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김 여인과 중국으로 떠나기로 한 날은 5월 7일. 김 여인이 실종된 바로 다음날이었다. A씨가 “외국으로 가기 전 좋은 곳에서 자보자”며 김 여인을 특급호텔로 데려간 사실도 경찰조사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A씨는 중국에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난해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A씨가 출국 예정 다음날인 5월 8일 지인들과 골프약속을 잡은 사실을 밝혀냈다. A씨의 치밀한 속임수는 끝이 없었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짐을 중국에 미리 보내겠다”며 김 여인의 옷과 소지품이 든 여행가방 4개를 받았지만 이삿짐센터에 맡긴 뒤 찾아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조사를 받는 동안 직접 참고인들을 찾아다니며 수사 상황을 확인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주길 간접적으로 요청하기까지 했다. 결정적으로 검찰은 A씨가 김 여인에게 중국에서 쓸 생활비 조로 받은 3천만원을 고스란히 빼돌린 사실을 확인했다. 살인과 관련된 증거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A씨를 붙잡을 유일한 혐의점이었다. 결국 검찰은 지난달 29일 A씨를 살인이 아닌 사기혐의로 구속했다. A씨가 김 여인을 언제, 어떻게 죽였다는 것을 증명할 구체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A씨가 살인사건에 연루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1999년 의붓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적이 있다. A씨는 의붓어머니를 자신의 차 뒷좌석에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급브레이크를 연달아 밟아 의붓어머니가 조수석에 머리를 부딪치게 한 뒤 그대로 방치했다. 내연남과 중국밀항 하루 전 실종 A씨는 “추돌사고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진술했지만 목뼈와 척수가 부러져 생명이 위독한 어머니를 차 안에 놔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상당했다. 특히 검찰은 A씨가 같은 해 숨진 아버지의 유산을 놓고 의붓어머니는 물론 배다른 형제들과도 다툼을 벌인 사실에 주목했다. 이 같은 명백한 살해동기 탓에 A씨는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2년 만에 가까스로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대법원은 당시도 증거가 부족하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던 것. 김 여인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시신이나 명백한 살해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A씨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시신 없는 살인사건에서 법원은 무죄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주목할 사실은 검찰에서 실시한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다. 검찰은 A씨에게 “김 여인을 죽였느냐” “김 여인의 시신을 한강에 버렸느냐”고 물었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말한 A씨의 주장은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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