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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혹은 대중성은 틀림없이 질적인 속성이 아니라 양적인 척도이다. 팝을 질적인 속성으로 파악하는데서 인식의 모순적 왜곡이 발생하게 되며 이 역설적 지점에서 키치와 아방가르드의 사생아가 태어난다. 이는 음악에서 록이 팝과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나, 뮤지컬, 연극, 인디음악 등 주류가 되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문화가 주류 문화에 대한 지향과 주류 문화에 대한 비판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하는 과정에서 결국 주류 문화에 자신을 내어주며 키치의 원본이 되어줌으로써 현상적으로 주류문화를 먹여 살리게 되는 현상에서 고스란히 예시된다.
그러나 주류 문화는, 그 자신의 생산과 소비가 자본의 논리로 좌우되는 특성을 강하게 나타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비주류 문화를 이렇게 소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자본 논리의 틀 바깥 혹은 기저에 있는 요소들을 최대한 동원한다. 때문에 비주류가 자본을 타고 주류로 편입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다만 주류의 문법으로 새롭게 태어난 비주류의 키치들만 자본화되어 생산되고 소비된다. 뮤지컬 소재 영화의 꾸준한 흥행이 뮤지컬 매체의 주류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뮤지컬 소재 영화의 투자 및 제작 그리고 연이은 흥행으로 이어지며 뮤지컬판을 영화판의 시나리오 수급처로 전락시킨다던지, 연극판 출신 배우들의 성공적 영화 데뷔가 연극판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연극배우들 및 영화제작자들이 서로를 자본의 논리로 재단하도록 만듬으로써 연극판 자체를 영화판에 종속된 인력사무소로 전락시키던지 하는 식으로, 이러한 자본외적 요소, 혹은 전-자본적 요소를 수급함에 있어 자본의 논리의 적용범위가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판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그 안으로 그러한 요소들이 스스로 끌려들어오도록 만들게 된다.
이러한 현상의 근원적 생리를 실증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오로지 모험적인 자본을 통해서만 가능할 뿐더러, 여기에 당위적 가치판단을 부여하는 시도는 사실상 존재감이 희미한 인기 없는 스포츠 종목을 마라톤 대신 올림픽 폐막 종목으로 올려달라고 억지를 쓰는 것만큼이나 기반이 부실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다만 분명하게 짚어낼 수 있는 것은 자본력이 돈을 벌기 위해 반드시 공수해야만 하는 비-자본적 혹은 전-자본적 요소를 정작 끌어올 때 철저히 자본 바깥에 소외시키는 태도를 취한다는 점이다. 자본의 의인화라는 분석의 형식적 결함이 으레 이르게 되는 음모론이라는 함정을 피하기 위해 주체성을 잠시 가리고 이 현상을 바라볼 때, 문화자본 흐름의 생리에 대한 준-객관적인 생리학적 분석을 위한 실마리가 드러난다.
이 맥락에서의 "생리학"은 비단 어떤 생명현상에 대한 유비라기보다도 이 접근방식이 이학적이라는 점을 특징짓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단순히 가벼운 일상어적 전용일 뿐, 결국 물리학이나 경제학과도 별반 다르지 않으며, 이학적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현상의 본질이 이학적인 것으로 판단되어서가 아니라 이학적 방법론에 있어 실용적 가치가 있는 결론만이 유의미하며 또 지향되기 때문이다. 실로, 여기에서 유의미와 지향성은 선후관계나 인과관계, 혹은 포함관계와 같은 편향적 방향성을 가지는 관계가 아니라 변증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하며, 그 변증성은 키치와 아방가르드, 주류와 비주류, 자본과 비-자본의 변증성과 정확히 동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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