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2때의 일이다.
학교 교과목중에 '독서'라는 특이한 과목이 있었다
음....잘 이해가 안가겠지만 분명히 '독서'라는 과목이 있었다
'수학'이나 '과학'처럼 교과서도 있는 과목이었으며,
당당하게 시간표에서도 무려 2단위라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놀라운 과목이었다....
독서를 담당하고 있던 선생님은 나이 60을 향해 달려가는 청록파의 마지막 후예,
오재철이라는 분이셨다...(이하 오선생님)
음....그런데 이 독서라는 과목이 워낙 공부할게 없다 보니깐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필기시험으로 볼수가 없었다...
(다 100점 나와버리니깐)
그래서 독서시험을 논술고사로 대체해서 치루곤 했었다
댑따 큰 원고지 한 장을 툭 던져주고선,
주어진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서술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계속 독서시험을 치루고 있던 중...
학생들 사이에선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오선생님께서 논술시험 채점을 할 때 학생들이 쓴 글의 내용은 전혀 보지를 않고,
글씨 모양만 보구 점수를 준다는 겄이었다...
(그러니깐 글씨를 잘쓰면 A를 주고, 졸라 못쓰면 F를 준다...이런식이라는...)
일리가 있는 주장이었다.
왜냐면 당시 우리학교의 2학년은 총 열다섯반, 한반에 53명씩이었으니깐
약....음...(53 X 15= ???)...
쨋든 많았다.
그 늙으시고 눈도 침침한 오선생님께서 그 많은 아이들의
시험지를 하나하나 읽어보구 점수를 준다는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의혹은 다른반의 김모군이,
논술시험때 애국가를 4절까지 쓰고선
A를 받았다는데서 아이들에게 확신으로 다가왔다.
오.선.생.은 글.씨.모.양.만.으.로 점.수.를 준.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드디어 아이들은 논술시험을 우습게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용은 상관이 없으니 글씨만 잘쓰면 점수는 따논 것이었는지라...
그렇게 시간은 흘러.....마침내 우리에게 다가온 논술시험 당일!
오선생은 우리들에게 원고지를 나누어 준후 칠판에 주제를 적어 나갔다.
주제는 "어머니" 였다
아이들은 열심히 글을 써내려갔다.
"메칸더, 메칸더, 메칸더 부이 랄라랄라랄라라라 공격개시......"
"난 내 삶의 끝을 본적이 있어.... 유 머슴 컴백홈...."
"사랑하는 순이에게... 순이야 뭐해? 난 지금 논술시험중이야. 보구싶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앞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모두 다 이딴 식이였다
모두들 글씨모양에만 혼을 불어넣어 쓰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잘 넘어가서 모두들 좋은 성적을 받을뻔 했다
같은반 개념없던 박군의 한마디만 아니였으면....
(본명 밝힌다.까짓거... 박형준이다)
그 바보가 시험이 끝나고 나가는 오선생님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선생님~ 점수 줄 때 글씨 모양만 보구 준다면서요?"
두둥~
드디어 일이 터졌다.
그 미친새키의 발언이 오선생님의 같잖은 자존심에 불을 질러 버린것이다.
그리하여 이 노령하신 오선생님은 그 많은 아이들의 시험지를
침침한 눈을 이끌고 하나하나 다 읽어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서 오선생님은 내용이 허접인 아이들에겐 가차없이 F를 때렸다
나또한 여기에 딱 걸려버렸었다
쨋거나 그래서 대다수의 아이들이 F를 먹어버리는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시험이 끝난 어느날, 독서 수업시간에 들어오신 오선생님께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인즉, 우리 학교 2학년들을 통털어 A를 받은 학생이 딱하나 있으며
그 학생이 바로 우리반이란 것이다!!
아이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오선생은 그 학생의 글을 읽으며 감동을 받아 울음을 터뜨렸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나: 선생님 그게 도대체 어떤 씹새키입니까 ?
오선생: 그 학생은 바로 윤경희라는 학생입니다
(남자다...난 남자고등학교 나왔다)
윤경희, 졸라 깜짝 놀란다 .
오선생: 윤경희학생... 이리 나오세요...
윤경희: 네...네...(주춤 주춤)
아이들의 야유를 한몸에 받으며 걸어나가는 윤경희..
오선생: 윤경희학생.. 학생의 글을 본인이 반 친구들에게 읽어주겠어요?
윤경희: 네? 저....꼭 읽어야 되나여? 목이 아파서....
오선생: 닦치고 읽으세요.
윤경희: 네...(삐질삐질...)
아이들은 모두 윤경희의 글에 귀를 기울이고 고요한 적막속에 윤경희는 글을 읽어 나갔다
윤경희: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다.
남들 다하는외식 몇번 한적이 없었다.
일터에 나가신 어머님이 집에 안계시면 언제나 라면을 혼자서 끓여먹었다.
반 아이들 뒤집어지기 시작한다.
윤경희의 글은 가수 G.O.D의 노래 '어머님께'의 가사였다
윤경희: 중학교 일학년때 도시락 까먹을 때 다같이 함께 모여
도시락 뚜껑을 열었는데 부잣집 아들녀석이 나에게 화를 냈었다.
반찬이 그게 뭐냐며 나에게 뭐라고 했었다.
창피해서 그만 눈물이 났다. 그러자 그녀석은 내가 운다며 놀려댔다.
참을 수 없어서얼굴로 날아간 내 주먹에
일터에 계시던 어머님은 또다시 학교에 불려오셨다.
얼굴이 뻘개져서 글을 읽고있는 윤경희는 아랑곳 하지 않고 아이들은
뒷자리에서 좌우로 손을 흔들며 코러스를 연발하였다
"야이야아아~"
오선생님은 다시한번 글을 읽을때의 감회가 되살아나는지 눈을 지긋이 감고 계셨다.
윤경희: 아버님 없이 마침내 우리는 해냈다.
마침내 조그만 식당을 하나 갖게 되었다.
그리 크진 않아지만 행복했었다.주름진 어머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어머니와 내 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식당이름을 지었다.
오선생: 저런 아버지가 돌아가셨나요?
윤경희는 차마 자신의 아버지를 죽일수는 없었는지 이렇게 대답했다.
윤경희: 아뇨...다..다른 나라에 일하러 가셨는데요.
오선생: 오호~ 다른나라? 사우디같은데서 작업하시나보죠?...
윤경희: 네...모..못본지..7년정..도 됐거든요....
오선생: 식당 이름이 뭔가요?
윤경희: 네? 아..저....경영식당이거든여... 어머니 이름이 영자구, 제 이름이 경희...
오선생님은 그 식당에 가서 많이 팔아주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으며
아이들은 거의 사색이 되어가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윤경희: 어머님은 어느새 깊이 잠이 들어 버리시고는 깨지 않으셨다. 다시는...
난 당신을 사랑했어요. 한번도 말은 못했지만...
사랑해요. 이젠 편히 쉬어요. 내가 없는 세상에서 영원토록...
오선생님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시며 말씀하신다.
오선생: 전 이대목에서 울어버렸답니다. 윤경희 학생.어머님이 돌아가셨나요?
윤경희: 네? 아뇨...그냥 그렇게 쓴건데여....살아계셔요...
오선생: 저런~ 글의 감동을 배가시키기 위해서
마지막을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 처럼 표현을 하다니,
뛰어난 문학적 재능입니다.
오선생은 흐르는 눈물을 닦고, 침을 튀겨가며 칭찬을 하셨다
결국 그 자식은 A를 받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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