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골수 지지자들은 언제나 새누리를 선택한다. 나라를 팔아 먹어도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더민주의 골수 지지자들은 당원으로서 당해서는 안될 꼴을 당해가면서까지도 더민주를 선택한다. 자신이 보수든 진보든 상관이 없다. 더민주가 보수든 진보든 무슨 정책을 가지고 있건 상관이 없다. 저 나라 팔아먹을 놈들, 친일 매국노의 후예들이자 공약도 하나도 안 지키는 사기꾼 집단인 새누리당으로부터, 유신의 후예, 스트롱맨의 딸 박근혜로부터 정권을 빼앗아 올 집단은 더민주 밖에 없다고 철석같이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정된 새누리 지지자 35%, 더민주 지지자 25%를 합쳐 보면 60%가 된다. 나머지 40%의 유권자들은 어디로 간 걸까? 이들 중 절반 정도는 아예 정치에 관심이 없어 투표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투표는 하는 사람들이 '부동층(浮動. 물위에 떠서 움직이는 계층)'으로 존재한다. 이 부동층은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에 실망하고 꼴보기도 싫은데 그렇다고 더민주를 지지하자니 영 신뢰가 가질 않아서 고민하는 계층이다. 이들은 더민주가 신뢰만 보여주면 선택을 아끼지 않을 집단이다. 이들의 선택을 받으면 이긴다. 그러나 신뢰가 없다. 그게 더민주의 최고의 문제였던 것이다.
(중략)
참여정부의 인재풀이 부족했던 것, 몇 가지 정책이 실패했던 것, 그런 흠결들은 이런 부동층에게는 실무적 무능으로 간주된다. 동의하기 힘들지만, 약간 부패하더라도 메인 스트림에 속한 사람들에게 국가 권력을 맡겨야 된다는 판단도 이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비슷한 이유다. 최소한 갑자기 망치지는 않을테니까 말이다. 사실과는 관계가 없다. 그들은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고, 그 인식은 조중동 등에 의해 강조되고 권장되며 유포된다. 저들은 위험한 집단이다. 언제 나라를 김정은에게 팔아먹을지도 모르는 집단이다. 이러면서 말이다. 정청래? 386 운동권 출신으로 탄핵 때문에 졸지에 의원 뱃지를 달게된 막말이나 할 줄 아는 정치인이라고 본다. 내가 아니라 이 부동층들이 그렇게 본다는 것이다. 이해찬? 왕년의 운동권 시절의 경력으로 그런 불안정한 386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총리라고 맡겨 놨더니 국회 본회의장에서 상대당에게 욕이나 하는 과격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속해 있는 정당을 어떻게 신뢰하겠느냐는 것이다. 거기다가 곳곳에 박혀있는 과격한 운동권 스타일 의원들이 한 둘이 아니다. 통일의 꽃이네 뭐네 하면서 북한까지 갔다온 임수경도 있다. 지금도 핵을 개발하네 미사일을 쏘네 그러면서 우릴 괴롭히는 북한하고 무슨 관계가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들에게 꼭 금뱃지를 줘야 했는가? 라고 묻고 있다. 그들의 시선이 옳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런 얄미운 부동층들이 현실사회에서 더민주를 그렇게 보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실무적 무능과 사상적 불안감. 이 두 가지가 부동층들로부터 더민주에 대한 신뢰를 거두어 버린 가장 큰 요인이었다는 지적, 부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중간의 부동층, 조중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이 사회의 허리를 감당하고 있으며 “난 정치는 잘 몰라”라고 뒤로 물러서는 척 하면서 선거 때만 되면 나와 새누리의 당선을 돕는 그 집단이 우리 사회 유권자 중에 최소한 20%는 된다. 인터넷과 SNS에서 진보적인 의제들을 목청높이 외치는 2~30만의 네티즌들은 이들에 비하면 모래알보다 작은 존재들이다. 참고로 우리 사회 총 유권자의 수는 4천만 명 정도이며, 부동층이 20%라면 8백만 명이다. 진보적 네티즌을 크게 잡아 40만이라고 잡아주면 유권자의 1%다. 이게 바로 더민주가 각종 선거에서 절대 이길 수 없는 마법같은 현실의 핵심이다.
김종인의 그림
김종인은 모종의 그림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뭔지 알기 힘들었지만, 아마도 그 그림을 대략 설명하고 문재인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을 것이다. 그 그림은 마치 알파고와 이세돌이 반상에 돌을 놓듯이 하나하나 현실 세계에 놓여가기 시작했다. 문재인이 이에 대해 사전 동의 했을까? 아니면 그냥 묵인하는 걸까? 아니면 당권을 줬다 뺏기 미안해서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그림은 모종의 일관된 맥락이 있다. 그 하나는 중간 부동층이 기존의 더민주에 가지고 있던 불안감을 제거하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실무적 무능? 사상적 불안감? 이를 제거하기 위한 조치는 바로 386 운동권 출신이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가진 후보들을 쳐내는 작업이다. 정청래는 하필 그 이미지가 가장 강력했던 사람일 뿐이다. 지지자들에게는 속시원함을 주었겠지만 부동층들의 이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그 특유의 막말을 연상해 보면 왜 그가 그런 이미지의 대표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참여정부 출신들도 쳐냄을 당한다. 문희상, 유인태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개인적으로는 존경하는 두 분이며, 순순히 웃으며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는 점은 적어 두자. 그러나 김종인의 그림에 그 두 사람이 설 자리는 없었다(이 글을 완성한 뒤에 문희상 의원은 구제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내부적 반발이 극심했거나, 대체할 인물이 없었겠지). 그리고 그런 이미지의 최고 좌장인 이해찬을 쳐내기에 이른다. 이 대목에서 실제로 큰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이해찬은 더민주의 불안요소를 쳐낸다는 의미에 한가지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 대상이기도 했다. 바로 두 번째 맥락. 문재인의 앞길에 잠재적인 위험요소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이 김종인의 공천을 친노패권주의 척결이라는 관점에서 분석을 시도하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왜냐면 똑같은 친노 중에서도 어떤 친노는 쳐내고 어떤 친노는 남겼기 때문이다. 종잡을 수 없는 기준처럼 보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정청래를 쳐낸 자리에 손혜원을 공천하는 모습을 보고 확실한 맥락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는 더민주의 이미지를 바꾸는 공천이며 동시에 '친문공천'이었던 것이다. 친노 중에서도 문재인과의 거리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비문과 친문이 존재한다. 비문은 쳐내고 친문은 전진배치했다. 한 명 한 명 분석해 보면 이런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나마 의미있는 머리수를 가지고 있던 정세균계도 대거 탈락되었다. 아마도 문재인 이후를 지켜보고 있을 것 같은 박원순의 사람들도 대거 탈락했다. 이건 대놓고 걸림돌 치우는 작업이며, 박원순에게는 이번 말고 다음에 나오라는 명시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반면 문재인이 당대표 시절 영입했던 대부분의 사람들, 문재인 키드(Kids)라고 볼 수 있는 후보들은 전진배치 되었다. 쉽게 정리하자면 문재인의 대선 가도에 걸림돌이 될 소지가 있는 자들은 쳐내고, 그 길을 도와줄 동력을 대신 채워 넣었다는 것이다. 이 그림의 끝에 이해찬이 있었다. 이해찬은 문재인이 비서실장 하던 시절에 이미 총리를 했던 사람이다. 문재인보다 배분이 더 높다. 그런 사람이 당내에 잔류하고 있을 때, 그를 중심으로 형성된 세력은 문재인의 대선 가도에 분명히 방해가 된다. 그러나 문재인의 손으로 그를 쳐낼 수는 없다. 이건 서열의 문제이며 도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종인의 그림에 있는 차기 대권은 문재인의 것이었다. 김종인은 자신의 손에 묻은 피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결코 '옳고 그름'으로 나뉘지 않는다. 옳고 그름으로 나뉘는 것은 신뢰와 협잡, 유능과 무능, 정직과 거짓 등이다. 보수와 진보는 선택일 뿐이다. 나는 당연히 더민주의 우측이동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나마 원내 제1야당이 진보의 깃발을 버리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과반은 아니더라도 굉장한 의석을 보유한 더민주가 진보의 깃발을 들고 있는 것은 사기에 가까운 일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서 더민주를 지지하던 수많은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문제가 된다. 그들은 더민주를 왜 지지했을까? 비록 진보정당은 아니더라도 더민주는 최소한의 '진보적 가치'를 손에 들고 서 있는 대형 정당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뛰어 들어온 김종인이라는 전두환 꼬붕(사실 이 표현은 모함에 가깝지만)이 더민주를 보수정당으로 바꾸고 있으니 억울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들이 화내는 것이 이해가 간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우리 사회의 진보는 5%다. 이건 현실이다. “정치는 현실을 반영하지만 현실을 선도할 의무도 있다”는 말을 떠올려 보더라도 더민주가 진보정당이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실제로 더민주의 지지자들 상당수는 진보라기 보다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보수이며, 정치에 기대하는 것 역시 진보적 가치라기 보다는 신뢰할 수 있고 부패하지 않은, 그저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수준의 정치를 원할 뿐이다. 심지어 애국이나, 경제발전, 성장, 부국강병 등의 보수적 가치를 선호하는 더민주 지지자들도 많다. 자신을 스스로 더민주의 지지자라고 생각했던 분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진보적 가치를 얼마나 원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해 보신 적 있냐고 말이다. 비록 소수지만 분명히 진보의 깃발을 든 정당들이 있는데 왜 더민주에 남아 있냐고 말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가 힘들다면 당신은 진보적 가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에 대한 증오 때문에 그저 카운터 파트를 지지한 것 뿐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더민주의 보수화를 좋아해도 되고, 지지해도 된다. 당신들 주변에는 중도 부동층이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하게 될 것이다. 더민주의 진보성이 미약하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좌클릭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참에 아예 진보정당으로 옮기는 것이 장기적으로 맘 편한 일이 될 것이며 사회적으로도 그게 옳다고 권해 드리고 싶다. 변화는 항상 개인에게 선택을 강요하기 마련이다. 더민주의 지지자들에게는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만약 이 글에 담겨 있는 믿기 힘든 분석이 사실로 드러나고 더민주가 성큼성큼 우측으로 걸어가 버린다면, 차라리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떠나 보낼 생각이다. 아니 그게 맞다. 새누리와 박근혜 정권에게는 더 이상 합리성과 정직을 찾아보기 힘든 상태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에게는 극우 수구 부패 거짓말쟁이 정당의 위치를 주는 것이 맞다. 차라리 더민주가 새로운 합리적 보수로 탄생해서 그나마 합리적인 보수 정권을 창출해 내길 기원하는 것이 속이 편하다. 그게 김종인의 뜻이며, 그렇게 탄생한 정권은 또 하나의 보수정권이 되겠지만, 최소한 박근혜보다는 훨씬 나을 것 아니겠는가? 원한다면, 또 필요하다면 내 소중한 한 표도 아낌없이 주겠다. 그리고 스스로가 진보적 스탠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은 합리적 보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한 명이라도 더 진보적인 마인드를 갖출 수 있도록 설득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비록 그 끝을 기약할 수 없는 머나먼 미래가 될 지언정, 진보정당이 정권을 잡게 되는 그 날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합리적 보수와 진보가 뒤섞여서 무능하고 부패한 극우 정권을 물리치기 위해 혼전을 벌이는 이 상황, 참으로 기괴한 광경이었다. 그보다는 깔끔하게, 보수와 진보로 갈려 논쟁을 벌이자. 그 쪽이 훨씬 더 아름답지 않겠는가? 부디 이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이번 총선판이 이런 장대한 변화의 시작이 되길 빌어마지 않는다. 김종인 어르신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 현실화 되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어르신, 화이팅!! 뱀발 그래도 비례 2번은 너무 하셨어요. 창피하게 그게 뭡니까. 그걸로 사람들이 뭐라 한다고 당무거부까지 하는 건 더 창피합니다. 삐지지 마시고 빨랑 돌아오세요. 끝.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 편집 : 딴지일보 챙타쿠
이 글 읽어보셨나요? 김종인이 어떻게 더민주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전 이 분석에 공감합니다.
걍 붙여왔으니 원 글에서 읽으시는 게 나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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