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아라를 그냥 깔아뭉개며 즐기는 사람들에게[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그렇다. 또 티아라 이야기이다. 나는 티아라의 미래를 예측할 입장은 아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여기엔 내가 알 수 없고, 아마 지금은 아무도 모를 수 있는 변수들이 수많은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티아라의 위치에 대해서는 쉽게 말할 수 있다. 최근 몇 시간 동안 티아라는 한국 대중에게 왕따돌로 자리를 잡았고, 이는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듯하다. 그런데 이 왕따돌이라는 이름은 양면적이다. 첫 번째로, 이는 티아라 멤버들이 막내 멤버 한 명을 왕따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두 번째 의미는 앞으로 티아라가 집중적인 왕따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두 번째의 의미는 앞으로 한 동안 점점 커질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내가 운 나쁘게 티아라와 계약을 맺은 광고주라면 더 이상 이미지 손상을 입기 전에 어떻게든 광고를 중단하고 계약을 깰 것이다. 만약 내가 아이돌 그룹을 거느린 회사를 책임지고 있다면 어떻게든 티아라와 거리를 두고 멤버들에게도 그들과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지금 티아라와 광수 사장의 전략은 티아라 내부에 일어난 일은 다른 그룹에서도 흔해빠진 일이고 별게 아니며 모두 왕따 당한 멤버의 책임이라고 밀어 붙이는 것이다. 이 주장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K-Pop 전체에 끼치는 악영향이 엄청나다. 당연히 공멸하기 전에 티아라를 대상으로 한 따돌림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차가운 사업적 결정일 것이고, 아무도 뭐랄 수 있는 게 아니다. 멤버들에 대한 개인적인 교우 관계도 줄어들거나 끊어질 텐데, 그 친구가 같은 업종의 종사자라면 이미지의 피해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미 온갖 소문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미치고 있다. 그들이 자기를 지킨다고 해서 기회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마찬가지로 나는 인터넷에서 가해지는 티아라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도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 그건 부당한 일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팬들이 떠나는 것 역시 막을 수 없다. 연예인들에 대한 사랑과 충성은 강요되는 것이 아니니까. 마찬가지로 나는 그들이 지금까지 방영되었던 티아라 관련 자료들에서 캡처를 따와서 ‘화영 왕따 증거’로 재구성하는 것에 대해서도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 어차피 티아라 쪽에서 정보를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정보를 찾아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모두 이야기꾼이고, 그런 식의 재구성은 이야기꾼의 당연한 본능에 기인한다. 물론 그것들 모두가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모두가 상상력에 바탕을 둔 허구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특히 그 찹쌀떡 소동은 의도가 어찌되었건 당사자의 사과가 필요하다. 일본에서만도 매년 수많은 노인과 어린이들이 찹쌀떡을 먹다 질식해 죽는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먹다가 그러는 것이다. 남의 입에 그것을 쑤셔 넣는 것은 입에 장전된 총의 총구를 박는 것과 같다. 하지만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꼼꼼하게 생각해보자. 이런 공격이 모두 과연 정당한 분노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 이런 공격을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미 무너져서 아무나 건드려도 된다고 믿어지는 사람들을 그냥 깔아뭉개며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이런 의심은 정당하다. 소동이 터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허위임이 분명한 조작된 정보들이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퍼지고 있는 중이다. 예를 들어 모 멤버의 SNS 왕따 고백이라고 돌아다니던 파일은 조작된 것이었다. 티아라 백댄서나 연습생이라 자칭한 사람들이 올린 글이 진짜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앞으로 이런 조작들은 계속 늘어날 것인데, 한 번 이 조작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지 상상해보라. 과연 그것이 진실을 밝히려는 과정인가? 그냥 때려도 되는 사람을 한 번 더 때리는 장난일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것은 일반적인 왕따와 다를 게 뭔가. 상당수의 왕따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이 그렇게 당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주관만을 보면 여기서 ‘정당한 가해’를 구별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생각해보라. 과연 ‘정당한 왕따’가 있는가? 여기서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티아라의 타자화이다. 물론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해도 끔찍한 일이 일어난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인터넷 저편에 앉아 있는 사람들보다 특별히 악해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를 할 수 없다. 다시 시발점이 된 ‘의지’ 어쩌구 트윗들을 검토해보자. “의지의 차이^^ 우리 모두 의지를 갖고 파이팅!!!!!” 혹은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의지가 사람을 만들 수도 있는 건데..에휴 안타깝다” 같은 글들을 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 박정희 시대를 거치며 교장 자리에 오른 선생들이 지루함과 일사병으로 아이들이 픽픽 쓰러져 가는 동안 조회 시간 때 웅얼거리던 이야기와 전혀 다를 게 없다.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허약해 빠진 엄살쟁이의 귀에 이런 ‘하면 된다’의 메시지를 마구 쑤셔 박아도 된다는 생각이 과연 이 나라에서 그렇게 드문가? 정말 그런가? 이 트윗들이 끔찍한 건 이들이 이 나라에 자연스럽게 퍼져 있는 ‘상식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이 트윗들에서 멤버들은 거의 모범생처럼 행동하고 있다. 물론 나는 상종하기 싫은 모범생들이다. 여기에 섞여 있는 왕따의 태도만 해도 그렇다. 통계를 믿는다면, 인터넷 뒤에서 티아라를 비난하는 팬들도 여기에 대해 무죄는 아니다. 지난 2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을 왕따하거나 방관했던 학생들이 졸업하자마자 바람과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나는 운 좋게 그런 문화가 없는 시기에 아슬아슬 학교를 다녔으니 어설프게나마 무죄를 주장할 수 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10년 뒤, 20년 뒤에 학교를 다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도 나는 무죄였을까? 무죄였다면 희생자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유죄인 동시에 희생자였을까?모든 나쁜 일들이 그렇듯, 티아라 사건도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다. 아마 주변 아이돌 멤버들 몇 명은 이 소동으로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렸을 것이다. 아마 그들 중 몇 명은 잠시라도 자신과 서로의 잘못을 돌이켜볼 것이다. 그럴 생각이 없는 멤버들에게도 억지로 그러라는 압박이 떨어지겠지. 이들 덕택에 미래가 조금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품는다고 낙천주의가 지나친 것이 될까? 우린 학습 능력이 있는 유인원이 아닌가? 우리가 그런 것도 못할 정도로 형편없는가?하지만 이런 교훈을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티아라를 괴물로 타자화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에게서 우리와 유사점을 찾고, 왜 그들과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자성의 과정이며, 생각 없는 키보드 워리어들이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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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entermedia.co.kr/news/news_view.html?idx=1590&page=1&bc=&mc=&find=&sch_d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