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어제 축구 봤어? 이명주 잘하더라. 근데 걔가 도대체 누구야?"
이명주(23, 포항)는 우즈베키스탄전이 낳은 최고의 스타가 됐다. 이명주는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7차전 홈경기에서 선발로 출전, 중원을 종횡무진 누비며 1-0 승리에 공헌했다. A매치 데뷔전이지만 인상적인 경기력을 뽐내며 경기 MVP도 거머쥐었다.
이명주는 당연하게도 우즈베키스탄전 내내 실시간 검색어를 오르락 내리락 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데뷔한 후부터 우즈베키스탄전에 나서기 전까지 이명주를 검색한 사람보다 우즈베키스탄전이 열린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이명주를 검색한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만큼 이명주의 활약은 뛰어났고, 또 눈에 띄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베테랑 김남일이 부상으로 명단에서 제외된 상황에서 낯선 선수가 활기찬 플레이로 씩씩하게 경기를 치른 것만으로도 눈에 띌만한데 활약도 도드라졌다. 중원을 책임지고 공격적으로 폭넓게 움직이며 2선에서 침투까지 훌륭하게 소화한 이명주의 움직임은 경기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감탄할 만한 것이었다.
이명주라는 선수가 '갑툭튀'했을리는 만무하다.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던 미당 서정주의 시처럼, 이명주를 키운 것은 K리그 클래식이었다. 아마 이날 경기를 지켜본 K리그 클래식 팬들이라면 이명주의 활약에 "역시나!"하며 무릎을 탁 치지 않았을까. 패기 넘치는 신인선수 이명주의 모습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날 우즈베키스탄전 선발 명단에 그의 이름이 포함됐을 때 기대감에 흥분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만약 당신이 이명주의 선발 출전 소식에 흥분한 K리그 클래식 팬이라면, 이명주를 모르는 친구들을 위해 들려줄 이야기는 꽤 많을 것이다. 우선 선수 인생에 단 한 번뿐인 K리그 신인왕을 차지한 선수라는 부분에서 시작해보자.
2012시즌 프로 무대에 데뷔해 35경기 출전 5골 6도움을 기록하며 맹위를 떨친 이명주는 기자단 투표 116표 중 104표를 획득하며 89.7%의 압도적 지지율로 신인왕을 거머쥔 신성이었다. 눈에 띄는 신인들이 많지 않았던 지난 시즌, 포항이 리그 3위에 오르고 FA컵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헌한 선수 중 한 명이 바로 이명주였다.
사실 이명주는 올림픽 대표팀에 잠깐 선발된 것 외에 국가대표와 거리가 멀었다. 청소년 시절에는 중앙 수비수로 뛰면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영남대 시절 포지션 변경으로 미드필더에서 뛰면서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명주의 성공시대는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리그에서 이명주가 얼마나 좋은 모습을 보였는지 설명하다보면 이야기는 자연히 K리그 클래식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축구는 여전히 인기 스포츠다. 최강희호 부진이라는 위기상황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더 많은 대중의 관심이 축구에 쏠렸고, 우즈베키스탄전이 열린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5만 699명의 관중이 빗줄기를 뚫고 응원전을 펼쳤다. 지난 2010년 10월 12일 열린 일본과 친선경기(6만 2503명) 이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 5만 명 이상의 관중이 모인 것도 처음이다.
하지만 K리그 클래식은 다르다. 같은 축구지만 A매치에 비하면 찬밥 신세다. 리그 최고의 흥행보증수표인 '슈퍼매치'를 비롯, 다양한 이야기거리를 가지고 있고 김남일-설기현-이천수 등 2002 월드컵 스타들의 귀환으로 스토리라인이 풍성해졌지만, 여전히 K리그 클래식 팬들은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중계도 없고 관심갖는 이도 적다. 몇몇 구단을 제외하고는, 특히 지방 구단일수록 관중수는 기껏해야 몇 천 단위에 머무른다.
같은 축구팬이라고 해도 K리그 클래식 팬들은 '비주류' 취급을 받는다. 밤을 새워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로빈 반 페르시와 루이스 수아레스의 플레이에 열광하는 이들에게 K리그 클래식은 수준 낮은 리그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해를 거듭할 수록 수준도 높아지고 재미도 높아져가지만, 자국 리그에 대한 관심은 턱없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이명주는 최강희 감독의 새로운 시도다. 리그에서 뼈가 굵은 최 감독은 선수들의 기량을 믿고 있다. 충분히 해볼만한 실력이 있고, 대표팀에서 충분히 제 몫을 해낼만한 기량이 있다고 봤다. 이동국을 비롯, 국내파 선수들을 꾸준히 기용하면서 최 감독이 증명하고자 했던 부분이다.
문제는 K리그 클래식서 좋은 활약을 보인 선수라도 A매치라는 무대의 중압감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데 있다. 이명주 같은 선수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짱 두둑한 이 어린 선수는 자신의 A매치 데뷔전에서 활약을 펼치고도 대표팀과 소속팀이 크게 다를 것 없었다는 '심장 튼튼한' 소감을 남겼다. 맞는 말이다. 필드 위에서 뛰는 이상, 동료 아니면 모두 적이고 그 적을 무너뜨리기 위해 90분간 심장 터지도록 뛰는 것은 모두 똑같기 때문이다.
기성용도, 구자철도 그 시작은 K리그였다. 이명주의 시작도 K리그다. 이제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축구스타가 태어날 것이고, 그들의 요람은 K리그가 될 것이다. 클래식과 챌린지를 불문하고 우리가 K리그에 더 큰 자부심을 가져야할 이유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이명주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대답하라. 이명주는 신인왕 출신의 K리그 클래식 선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