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텔은 아니고 그보다는 좀 큰 원룸에 살고 있는 취준생입니다.
혼자 지내기 적적해서 강사모에서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해왔습니다.
단모수술(꼬리 짧아지게 하는 수술)부터 해서 이것저것 예방접종도 다 해놨고
딱 봐도 돈을 굉장히 많이 들인 티가 나는 새끼 강아지인데 왜 이 가격에 팔았지? 싶더군요.
물론 저야 좋았습니다. 귀여운 새끼 강아지를 싼 값에 데려왔으니까요.
어쨌든 입양해온 것이니, 전 주인을 잊고 절 진짜 주인으로 받아들이게 하도록
정말정말 잘해주었습니다.
전 주인은 목줄도 하고 개집에서 키웠는데 전 처음 몇 주 간은
24시간 내내 강아지와 함께하고 먹는 것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목줄 같은 건 아예 안했습니다.
처음엔 많이 불안해하더니, 나중엔 저를 그렇게 따르게 되더군요. 뿌듯했습니다.
나중엔 밥보다도 저를 더 좋아하는 수준까지 되었습니다.
먹을거를 줘도 제가 곁에 없으면 안 먹고 저를 졸졸 따라옵니다.
제가 옆에 있어야 안심하고 밥을 먹을 정도입니다.
많이 귀여웠죠. 저도 많이 이뻐해줬구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몸이 좀 아팠습니다.
공부하다가 머리가 지끈 거려서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10시 16분 정도? 였을 겁니다 아마.
그래서 잠을 자는데 갑자기 강아지가 캉캉 거리며 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침대에서 항상 제 옆에서 자는 앤데, 뜬금없이 혼자 화장실 앞까지 가서
그 어두컴컴한 화장실에다 대고 계속 캉캉 짖고 있더군요.
머리가 아픈 데다가 잠도 깨서 짜증이 났던 저는
초비야 왜 그래 짖지마~ (강아지 이름이 초비입니다. 처음에 갈색 푸들이라
초코로 지으려고 했는데 초코라는 이름은 흔해서 초코비로 했다가 나중엔 그냥 줄여서
초비로 불렀습니다.) 라고 한 마디 하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얘가 그날따라 신경질나게 계속 아무도 없고 어두워서 아무 것도 안 보이는
화장실에다 대고 캉캉 대면서 짖더라구요.
신경질 나서 소리도 지르고 궁디 팡팡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또 화장실을 보고 캉캉 짖더라구요.
너무 화가 나서 그냥 화장실 안에다 넣어버리고 문 닫고
그리고 침대에 쓰러졌습니다. 그 다음엔 조용했고 침대에 쓰러지자마자
전 잠이 들었습니다.
자명종이 울리고 7시 30분 쯤 깨어난 저는 졸린 눈을 비비며
씻기 위해 화장실에 갔습니다.
화장실 문을 열자 초비가 힘이 없는 모습으로 끙끙대며 나오더군요.
그제야 어제 화장실에 넣고 문 닫고 그냥 잠들었던 사실이 기억났습니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완전 깜깜한 어둠 속 화장실에 갇혀서
몇 시간을 보냈을 초비를 생각하니 눈 앞이 아찔하더군요.
순간 너무 미안해져서 초비야 미안해~ 하면서 쓰다듬어주고 달래는데
애가 끙끙대는 게 좀 이상한 겁니다.
그래서 보니까 앞발 한 쪽이 완전 너덜너덜해져 있는 겁니다. 흔한 비속어로
완전 씹.창이 나 있었어요...
그래서 너무 놀라서 애를 안고 당장 동물병원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때 어제 강아지가 화장실에 대고 계속 캉캉 거렸던 게 생각났어요.
혹시 화장실에서 큰 벌레나 가능성은 적지만 뱀이라도 본 것은 아닌지,
그래서 그런 생물체들에게 공격 당해서 이렇게 다리를 다친 것은 아닌지
혹시 독이라도 있어서 중독된 것은 아닌지
오만 생각이 다 들더라구요. 왜 그때 화장실에 내가 화장실에다가
강아지를 집어넣고 문을 닫고 그대로 잠들었는지 참...
그래서 동물병원에 가서 수의사 선생님께 진찰을 받았는데
다행히 독 같은 건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자초지종을 설명 드리고 아무래도 화장실에서
뭔가 다른 것에게 물려서 다리에 이렇게 큰 상처가 난 것 같다 라고
이야기 했더니
수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그게 아니라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로 자신의 다리를 물어 뜯었다고 하더라구요...
아니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는다한들 강아지가 자해를 하나요? 물었는데
사실 자기도 믿기 힘들답니다. 강아지 이빨에 털 같은 것이 낑겨있고
다친 다리에 강아지의 침이 상당히 많이 묻어 있어서 알게 되셨다고 하더라구요.
굉장히 드문 케이스지만, 주인이 계속 강아지에게 무관심 할 때
주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자해를 하는 경우가 있긴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제 이야기를 듣더니 아마 강아지가 분리불안증 같다고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강아지랑 24시간 같이 있고 그러면 강아지가 주인에 대한
의존도가 심하게 높아져서 주인이 없어지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겁니다.
강아지를 위해서라도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강아지와 떨어져 있도록 하고
그걸 강아지에게 훈련시키라 하더군요.
그런데 좀 희한했습니다. 그렇게 24시간 같이 있던 건 처음 몇 주간 뿐이고
그 뒤로 몇 달은 저 혼자 밖에 나가기도 하고, 하루는 제가 아침 7시에 나가서
늦으면 밤 11시에 와서 그 시간까지 강아지가 혼자 있던 적도 있습니다.
물론 취준생이다보니 잘 안나가지만, 아주 가끔은 나가거든요.
그때도 멀쩡했는데 그 화장실에 갇힌 몇 시간만 자해를 했다는 것이 좀 의아했습니다.
아마 갇혔다는 것에 대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걸까요...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은 또 있었습니다.
보통 제가 강아지를 혼자 놔두고 나가면서 문을 닫으면
안에서 엄청나게 낑낑 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제가 나가서 그런 거겠지요. 엄청 낑낑대고 문 벅벅 긁고 난리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날 밤 화장실에 가뒀을 때는 정말 아무런 소리도 없이
조용했어요. 문 벅벅은 물론이고 끙끙 거리는 소리 하나 없었습니다.
그 뒤로 강아지는 화장실 안에는 절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좀 화가 나더군요. 힘들게 화장실에다가 대소변 보도록
배변훈련 시켜놨는데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제가 화장실에 가둬뒀으니, 제 잘못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로 애가 화장실에는 트라우마가 걸려서
절대 들어오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데
뭔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뭔가해서 봤더니 빗이었습니다.
순간 갑자기 뭔가 등 뒤가 쎄~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말로 뭐라 형용하기 힘든 그런...
일단 그 빗이 전혀 떨어질 이유도 없고, 제가 세수할 때는
전혀 제 손이 닿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욱 웃긴 건, 제가 빗들을 머그컵 안에다가 넣어놨는데
컵 자체가 엎어지면서 빗 전체가 와르르 쏟아지는 건 말이 되어도
컵 안에 들어있는 빗 중 하나만 툭 떨어진다는 것이 말이 안되거든요.
뭔가 좀 오싹했지만 싱그럽고 활발한 느낌의 아침 시간대고,
밖에서도 사람들 소리가 들려오기에 그렇게 크게 무섭고 그렇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좀 께름직한 건 어쩔 수 없어서
문을 열고 초비를 불렀습니다.
원래는 제 곁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앤데 제가 화장실만 가면
다른 곳에 가있는 초비입니다.
제가 부르자 초비가 와서 좋다고 헥헥대며 꼬리를 흔들기는 하는데
뭔가 불안한 듯한 눈초리에다 화장실 안으로는 절대 들어오지 못하는 겁니다.
좀 오싹해진 저는 초비를 안고 화장실에 데려와서
문을 닫고 초비를 옆에다 놓고 세수를 했습니다.
그렇게 세수를 다 하고 이제 초비를 데리고 나가려는데
애가 좀 이상한 겁니다.
다가가보니 부들부들 덜덜덜 심하게 떨고 있더라구요.
들어서 안으려고 하니 애 팔다리가 마치 경직된 것마냥
딱딱하게 굳어있더군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초비야 대체 왜 그래 하면서 초비를 바라보니
잘 들여다보니 애가 저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더라구요. (개는 흰자가 잘 안 보여서
어디를 보는지 잘 구분이 안돼요.)
그래서 초비가 어디보는 지를 자세히 보니
거울 위치를 빤히 보면서 온몸이 경직된 채 부들부들 덜덜덜 떨고 있더라구요.
초비가 대체 화장실에서 무엇을 본 것인지...
집에 혼자 두고 껌껌할 때 들어왔을 때도 한 번도 그런 적 없던 애가
화장실에 갇혔던 그 몇 시간 만큼은 왜 자해를 한 것인지
평소엔 혼자 두면 깽깽 거리고 문 벅벅 긁고 난리도 아닌데 왜 그날 밤
화장실에 넣었을 때엔 쥐 죽은 듯 조용하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는지...
뜬금없이 빗 하나가 왜 컵에서 툭 떨어졌는지.
평소 저만 바라보고 앵겨붙는 초비는 왜 화장실 안에서
덜덜 떨며 제가 아닌 거울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든 의문은 해결이 되지 않은 채,
아직도 초비는 화장실에는 절대 들어오지 않습니다.
초비는 그날 밤 대체 그 어두운 데서
화장실의 무엇을 보고 캉캉 짖었던 걸까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