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 게시판 |
베스트 |
|
유머 |
|
이야기 |
|
이슈 |
|
생활 |
|
취미 |
|
학술 |
|
방송연예 |
|
방송프로그램 |
|
디지털 |
|
스포츠 |
|
야구팀 |
|
게임1 |
|
게임2 |
|
기타 |
|
운영 |
|
임시게시판 |
|
[ 아내의 방문 ]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지 어느덧 반년이 흘렀다.
사십구재까지는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갔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보험회사와의 문제로 골머리를 썩다가 겨우 수습이 될 즈음에는, 아내의 친정 식구들이 상속을 받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잦은 결근으로 인해 퇴사 압박을 가해오는 회사와도 갈등을 맺었다. 아내의 빈자리를 괴로워할 틈도 없이 몇 개월의 시간이 사라져버렸다. 더구나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가면 20개월이 조금 넘은 아들 녀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숨막히는 현실 덕분에 눈물 조차 나오지 않았다. 모든게 말라붙어버린 것처럼. 가슴은 터질 듯 괴로웠지만 어쩐 일인지 눈가에 만져지는 건 찡그린 주름밖에 없었다.
나는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들을 재우고 자유시간이 오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시원한 맥주 한 캔이었다. 나는 원래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이었는데도, 주량이 점점 늘어났다. 어느날은 술을 마시느라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놀아달라 보채는 아이를 내버려두고 쪽잠을 자기도 여러번이었다.
그런 아빠를 벌주기 위함이었을까.
아들이 칭얼대며 며칠을 보채더니 기어코 열이 40도에 육박하고 말았다.
응급실에 달려가 장염과 폐렴이 한꺼번에 왔단 진단을 받았다. 일주일을 입원을 했다 집에 돌아와보니 집이 쓰레기장이나 다름없었다. 나뒹구는 술병들과 쓰레기, 20개월된 아기가 살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아들을 며칠동안 어머니에게 맡겨두고 집을 정리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돌아다녔다.
집에 돌아온 아들은 며칠 만에 보는 애비라고, 내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날부터였다.
아내가, 우리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니, 아들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들이 아팠던 걸 아는건지, 요 며칠 어머니 집에 가있었던 걸 아는건지,
아내는 곤히 자고 있는 아들 옆에 웅크리고 앉아선 밤새도록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 옆에 웅크리고 있는 아내의 형상을 보곤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이렇게까지 죽어서도 찾아온 아내에 대한 애잔한 마음에 그녀가 안쓰러웠다.
죽어서까지 아이를 걱정하며 찾아오는 아내를 보며 술을 끊기로 했다.
드디어 정신을 차린 것이다.
아내의 소리 없는 방문은 벌써 두 달째 이어지고 있었다.
몇 번 말을 걸어보긴 했지만 아무것도 안 들리는 것 같았다.
가만히 자는 아이를 응시하고 있다가, 아기가 보채거나 내가 방에 들어가면 쓱 사라져버리는 거였다.
입원했던 이후로 아들은 계속 잔병치레를 해왔다. 고열과 설사증세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병원에서도 정밀검사를 해보자는 말을 할 뿐, 이렇다할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않았다.
도대체 왜 병이 낫질 않는 걸까.
시름시름 앓아가는 아들을 보면,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아내도 나와 같은 마음일테지. 그래서 우리 주변을 떠나질 못하는 거겠지.
죽어서까지 편치 못할 걸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팠다.
대학 병원에 검사 날짜를 예약하고 온 날에도 아내는 소리없이 나타나 아들 옆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나는 아내 때문에 매일 밤을 새다시피 하고 있었지만, 아이가 퇴원한 뒤로 술은 입에도 안대었다.
어쩌면 내가 술에 취해 쓰러졌던 숱한 밤에도 아내가 찾아왔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술에 취해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테지. 아내는 날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술에 대한 갈증이 싹 사라졌다.
검사를 위해 입원하기 전날, 나는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조금 뒤, 나는 손에 힘이 풀려서 전화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내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마자, 어머니가 버럭 언성을 높였던 것이다.
“니 정신 나갔노?
아가 보고 싶어 왔는지, 데려갈라꼬 왔는지, 니가 우에 아노?”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