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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부재
어쩌다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맨드라미 나팔꽃 봉숭아 같은 것
철마다 피곤
소리없이 져 버렸다
차운 한겨울에도
외롭게 햇살은
청석 섬돌 위에서
낮잠을 졸다 갔다
할일없이 세월은 흘러만 가고
꿈결같이 사람들은
살다 죽었다
박희준, 하늘냄새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여림, 계단의 끝은 벼랑이었다
전화는 언제나 불통이었다
사람들은 늘 나를 배경으로 지나가고
어두워진 하늘에는 대형 네온이 달처럼 황망했었다
비상구마다 환하게 잠궈진 고립이 눈이 부셨고
나의 탈출은 그때마다 목발을 짚고 서 있었다
살아있는 날들이 징그러웠다
어디서나 계단의 끝은 벼랑이었고
목발을 쥔 나의 손은 수전증을 앓았다
장현수, 혼자있어도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마음을 다 보여줄 수 없어
가끔 가슴이 아프다
그리움을 마음으로 전하고 돌아서면
또 다른 그리움이 앞을
이슬처럼 눈물처럼 막아선다
멀리있어 그리운 것을
지금 인연으로 어쩔 수 없다면
지금 이 순간 같은 하늘 같은 공간에
마음을 나누고 정을 나누었던 순간처럼
그렇게 서로에게 물들어
서로의 마음을 가슴에 묻고
늘 그자리 그곳에서 바위처럼 나무처럼
그렇게 태양빛에 바닷물이 마르는 그날까지
내 사랑은
혼자있을때도 울지않았으면 좋겠다
이세룡, 산토끼를 위하여
별들이 얼마나 추울까
걱정하는 너의 목소리가
소리 없이 들리는 거야
그래도 눈이 내리면
네 마음에 기별 없는
내 사랑 마음이
바보같이 쌓이는 거야
이 겨울 밤
그래도 자꾸 눈이 내리면
나는 찬 손으로
떨어진 별 하나를 주워들고
뜨겁게 뜨겁게 입 맞추는 거야
눈이 내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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