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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식, 꽃 피기 위해 오는 별
한낮의 소음 속에서도 아른아른 빛 뒤에서 걸어오는 발소리
밤이 되면 숨어있던 발자국들이 제 얼굴을 꿈꾸듯 꽃핀다. 별
이 별엔 하루에도 수 천 톤씩 우주먼지가 쌓인다는데
빛에 실려 오기 위해 아주아주 작아져서
꽃 피기 위해 이 별에 오는 거다
그러므로
꽃만 꽃이 아니다
너도 나도 꽃이다
여기가 거기인 줄도 모르고 천국을 갈구하는 사람들 속에서
단박에 꽃인줄 알아본 너와 나
서로 다른 별에서 왔을 우리가
마주선 꽃인 동안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가슴 속 그 기적 같은 향기를 길어
세상을 온통, 물들여놓고 가자
도종환,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몹시도 괴로웠다
어깨 위에 별들이 뜨고
그 별이 다 질때까지 마음이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게만 느껴지는 날에는
내가 그에게 처음 했던 말들을 생각했다
내가 그와 끝까지 함께하리라
마음먹던 밤
돌아오면서 발걸음마다 심었던
맹세들을 떠올렸다
그 날의 내 기도를 들어준 별들과
저녁하늘을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사랑도 다 모르면서 미움을 더 아는듯이
쏟아버린 내 마음이 어리석어 괴로웠다
이정하, 호두
숨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무리 껍질이 단단하다고 해도
여기 이대로 웅크리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하지만 어찌하랴
누가 와서 두드려 주기 전까지는
누가 와서 깨뜨려 주기 전까지는
나 여기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그대여
여기 와서 나를 좀 꺼내주렴
정호승, 철길에 앉아
철길에 앉아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철길에 앉아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멀리 기차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기차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코스모스가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기차가 눈 안에 들어왔다
지평선을 뚫고 성난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기차는 곧 나를 덮칠 것 같았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낮달이 놀란 얼굴을 하고 해바라기가 고개를 흔들며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 싶었다
류석우, 여백
잘 있냐고
건강하냐고
그렇게만 적는다
나머지 여백엔
총총히 내맘음을 적으니
네 마음으로 보이거든 읽어라
써도 써도 끝없는 사연을
어찌 글자 몇개로 그려낼 수 있으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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