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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69075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7
    조회수 : 1154
    IP : 183.97.***.159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4/09/28 11:18:47
    http://todayhumor.com/?lovestory_69075 모바일
    [BGM] 새벽녘 밤을 밝히는 시 - 서른 네 번째 이야기



    1.gif

    문정희, 비망록




    남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2.gif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 피워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때는

    가만히

    네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3.gif

    백은하, 풀밭




    몸이 힘든 건 참아도

    마음이 힘든 건 참지 말라 하더라

     

    머리로 참아야 하는 건 견뎌도

    가슴에서 우는 건 누르지 말라 하더라

     

    착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게 때로 독이라고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독이 된다 하더라

     

    오히려 정직한 편이 당장은 힘들어도

    서로에게 유익이라 하더라

     

    가슴에 깊은 호수가 생기기 전에

    끝도 볼 수 없는 우물이 생기기 전에

    마음에 비가 오거든 그대로

    감추지 말고 투닥투닥, 첨벙첨벙,

    시끄럽도록 내버려두고

    희로애락 비켜가려 하지 말고

    제발 웃는 척 좀 그만 해라, 하더라

     

    너 있는 그대로 아름다우니

    화내는 것도 우는 것도 짜증내는 것도 아름다우니

    제발 착한 척 좀 그만 해라, 하더라







    4.gif

    유희경, 꿈속에서


    잠든 것들이 거리로 나갔다

    긴 소매들은 소매를 접었다

     

    입김이 남아 있는 창문

    불이 꺼지지 않는 들판

    날아오르는 바람과

    걸어 다니는 발자국들

     

    가슴만 한 신음을 낳고

    누군가 밤새 울었다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안겨 있는 나를 보았다

    하얗게 빛이 났다

    나머지는 어두웠으므로

     

    비명 같은 내가

    빈 종이 되었다







    5.gif

    김이강, 서울, 또는 잠시




    채식주의자처럼

    맨발일 때가 좋지

     

    광화문에서 내렸고

    서대문까지 걸었다

    이렇게 문을 사이로 걸어도

    성의 윤곽은 알 수 없는 일

    한 언어를 터득하기 위해

    사람들이 살다가 죽을까

     

    당신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목구멍에 침묵을 걸었는데

    그런 건 위로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모든 것이 순조롭게 끝나는

    상한 맛이 나는 영화였다

     

    인사동을 돌아서 천변으로 걸었다

    오래전엔 여기 어디쯤에서

    술에 취한 김수영이 밤거리를 건넜을까

    조금 더 걸어가면

    이상이 차렸다던 이상한 다방이 있을 것이다

     

    극장에서부터 우연히 앞서 걷던 여학생 둘이서 열띤 토론을 한다

    이 영화는 던져놓은 미끼를 회수하지 않았어. 정말이라니까.

    급하게 판을 접었지, . 급하게 접었다니까. 제작비가 부족했을까.

    그게 스타일일 거야. , 그런가. 그렇다니까. 신경증일 수도 있어. 일종의,

    , 그런가.

     

    안녕, 아가씨들

    당신들의 치아 사이로 바람이 조율되고 있구나

     

    퇴근 행렬이 길어진다

    남산으로 가서 돈가스를 먹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친구의 집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 멸종해버릴 것이다

     

    내 신발이 엄청나게 자라고 있다

    돈가스를 먹지 못했다

    자전거도 없는데 내 친구의 집은 너무 멀기 때문에

     

    걸었던 길들을 접어서

     

    가방 속에 넣었다

    가방을 어깨에 걸었다

     

    걸었던 마음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일

    당신의 윤곽이란 이런 것일까

     

    신발이 필요해

    당신에겐 정말로 신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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