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 입장해주신 분들께
이 글을 읽기 전에
qefx : 철학의 진입장벽과 유용성
탄트라 : 철학의 진입장벽과 무용성
을 한 번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왕이면
qefx : 철학에 대한 오해
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래 탄트라의 글을 읽고 글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 (시간도 아깝고 해서)
뭐 탄트라가 정면으로 제 글을 지칭하며 시비를 걸어왔으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탄트라는 논점회피의 오류를 범하며
그럴듯하고 공감갈 수 있지만 아무런 내용없는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으니
제가 그를 퇴치해야 할 의무를 느끼고 다시 탄트라에 대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탄트라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탄트라가 철학을 미친듯이 까도록
만든 사람도 저니까요. 이에 대한 분석은 저의 <탄트라 분석 1>을 한 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또 이 글을 읽는 분들의 가독성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중요한 논점을 목차형식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1. 탄트라의 철학을 향한 비판이 허공을 향해서 삿대질을 하고 있는 이유
2. 철학이란 도대체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3. 탄트라의 글 : 철학의 진입장벽과 무용성은 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글인가?
1. 탄트라의 철학을 향한 비판이 허공을 향해서 삿대질을 하고 있는 이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탄트라는 실질적인 우리들 모두의 철학을 비판하고 있는 게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낸 철학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탄트라가 비판하는 철학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철학자의 철학 = 물리법칙과 같은 법칙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도 위와 같은 주장을 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탄트라는 계속해서 마치 누군가 그런 주장을 했다는 듯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 증거를 대겠습니다.
★ 탄트라 (2013-10-02 22:04:03) (가입:2012-12-24 방문:370) 추천:0 / 반대:0 IP:182.210.***.104 문제는...
인간의 삶이라는게 얼마나 복잡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지못하는 사람이 기껏 몇십년 살아보고 인간계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게 문제겠지요...
노모야동님은 철학자의 이론이 상당히 복잡하다고 생각하겟지만...그것보다 더 복잡한게 인간의 삶입니다.
★ 탄트라 (2013-09-30 23:11:54) (가입:2012-12-24 방문:370) 추천:0 / 반대:0 IP:182.210.***.104 아... 패러다임 이론이 아니라 패러다임 법칙이었나요?
앞으로의 사회도 그런 패러다임체계에서 움직일것이라고 뭔가 증명됐나요?
저는 '반증이 불가능'하겟네요..ㅎㅎㅎ
<탄트라의 글 철학의 진입장벽과 무용성에서 발췌>
: 그리고, 철학의 유용성...
철학자들이 평등이란 개념을 만들었기에 우리가 지금 평등의 권리를 누리고 있다?...어이쿠...
철학자들이 신이란 개념을 만들면 신도 만들겠습니다...
이건 뭐..반박할 의지 자체를 꺽어 버리니 뭐 할말 없습니다.ㅎㅎ
위의 세 가지 글에서 보듯이 탄트라는 철학을 좋아하고 즐기는 우리들이 무슨 철학을 법칙처럼 숭배하고 그것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양 글을 써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와 몇몇 분들의 철학에 대한 관점을 정리해보죠.
제 글 <사람이 곧 개다에 대한 답장 -탄트라에게>
"진리는 없고 해석만이 존재한다."
철학으로도 인간의 본성을 알 수 없다면 진화론으로 인간의 본성을 알 수 없고, 진화론도 결국에는 철학과 같은 해석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저는 진작 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님은 철학자의 권위니 뭐니 딴소리를 하셨죠.
제 글 <철학의 진입장벽과 유용성>
철학은 현실적인 문제로부터 파생하는 것이고 그 문제를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철학을 하는 것이다.
문제 상황은 언제나 지배와 피지배의 상황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평등한 상황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설령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평등한 사회라 할지라도 그 평등한 사회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문제를 사유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 노모야동 (2013-10-02 19:52:36) (가입:2011-08-22 방문:1370) 추천:0 / 반대:0 IP:115.137.***.11 평등이 어떤 것인지 막연하게, 그리고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평등의 개념을 남에게 설명하고, 더 나아가 남들이 가진 평등의 개념까지 집대성해 "평등" 으로 인정받는 체계들을 분류하고 하나의 학문으로 만드는 과정에서는 철학자의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훈이아빠 <철학자의 인용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을 위하여>
세상을 보는 법을 칸트의 공식으로 헤겔의 공식으로 푸코나 데리다의 공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분명 이 공식이 세상을 가장 정확히 본다라는 확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매우 논리적이며 합리성과 설득력이 있는 공식입니다.
위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분명히 "철학은 문제를 사유하기 위해서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다" 라고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탄트라는 "철학자들이 평등이란 개념을 만들었기에 우리가 지금 평등의 권리를 누리고 있다?...어이쿠..." 라고 저를 비아냥거리고 있지요.
저는 철학자들이 평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우리가 평등을 누리고 있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평등이 없는 상황에서 철학이 우리가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평등이라는 개념을 제시할 수 있다고 쓰고 있죠.
탄트라는 언젠가 저의 독해력이 딸린다고 말한 적이 있지요. 제 독해력은 물론 부족합니다.
하지만 저는 탄트라에게 묻고 싶습니다. 탄트라 너는 한국어능력이 딸려서 내 글을 이해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네가 보기 싫은 것은 억지로 안 보려고
하는 것인가?
이렇게 탄트라는 자기 멋대로 철학을 정의하고 남의 글을 읽고 가상의 적을 만들어 사실 혼자 싸우고 있던 겁니다.
2. 철학이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1. 철학은 오늘날의 문제에 써먹을 수 있을만큼 유용해야 한다.
2. 철학은 존재론, 인식론, 논리학, 윤리학의 분석을 갖추어야 한다.
즉 우리에게 유용한 개념 중에서 존재론, 인식론 등의 분석을 갖춘 것이 철학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 인간의 사명이다."
이 글은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분석(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와 윤리학적 분석(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완벽하게 증명된 것 아니죠. 그래도 일단 분석의 형식은 갖춘 겁니다.
그런데 이 글은 철학이 아닙니다. 왜냐면 아무런 쓸모가 없기 떄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봐야 우리 삶을
실질적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원칙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실현할 지도 알 수 없죠.
다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김태희는 참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럽다. 김태희 보러가야징~"
이 글은 유용합니다. 김태희를 보고 우리는 기쁨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글에는 존재론과 윤리학이 없습니다.
귀엽다, 깜찍하다, 사랑스럽다는 우리가 머리 속에 표상하는 단순한 관념일 뿐이고, 그 관념과 실체가 일치하는지에 대한 분석도 없죠
그리고 김태희를 보러가는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윤리적 당위도 옳고 그름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철학을 분류해 놓으면 큰 장점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개똥철학과 철학적 사고를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탄트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탄트라 <사람이 곧 개다....>
대학교 철학과 갓 졸업한 25살의 철학자와...철학과를 나오지 않았지만, 철학을 포함함 수많은 인문학적 교양을 쌓은 40대의 중년과...
평생 동양철학을 개인적으로 연구한 60대의 할아버지...누가 철학자인가요? 저는 이 세명다 철학자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 글만 떄놓고 보면 탄트라가 철학은 철학자만 한다는 권위를 깨고 철학을 모두의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굉장히 긍정적인 글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쓴 탄트라의 의도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 글은 탄트라가 저의 꺼지라는 말에 빡쳐서 쓴 글입니다. 이 글은 사실 제가
철학을 엄밀하게 분류하려는 시도를 탄트라가 못마땅하게 여겨 나온 글인 것이죠.
하지만 저는 분명하게 제 글 <철학의 진입장벽과 유용성>에 쓰고 있습니다. 철학의 진입장벽은 아주 낮고, 그것은 공유할 수 있는 개념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 떄 가장 좋은 파트너가 철학자라고
여기서 논증해보죠. 철학과를 갓 졸업한 25살의 철학자, 동양철학을 개인적으로 연구한 60대 할아버지든 방에 갇혀서 자기 혼자 철학을 하면 무슨 소용인가요? 동양철학을 어떤 할아버지가 개인적으로 연구하는데 아무런 철학자와 접점도 없이 그걸 연구할까요? 탄트라의 말대로라면 그럴겁니다.
탄트라의 글 <철학은 누구나 하는 겁니다>를 살펴보죠.
"철학자들이 진리와 선(善)을 얘기하고 있을 때...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을 얘기했고, 자본주의를 만들었습니다. 그냥 인간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로부터 출발한 겁니다."
이 글을 보면 탄트라는 아담스미스가 인간의 본성을 직관하고 그냥 뿅 자본주의의 기초가 되는 사상을 만든 것인양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 전에 아담스미스가 얼마나 많은 경제학자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받고 그들의 사상을 학습했는지는 개무시하고 있죠. 스미스는 흄의 열렬한 팬이자
그를 스승으로 여기던 사람이었죠. 그 외에도 그에게 영향을 준 허치슨, 기번, 프랭클린, 마키아벨리, 홉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사실 탄트라는 철학만을 타겟으로 삼아 비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는 학문이 축척되고 계승되며 떄론 혁신되기도 하며 발전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주 교만하고 우매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자신의 논리가 옮다는 것을 끝까지 우기고 싶어서 그런 걸까요?
3. 탄트라의 글 : 철학의 진입장벽과 무용성은 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글인가?
탄트라는 자신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경제학 원론을 모른다 하더라도, 경제에 대한 자신의 일관된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이고, 그 생각으로 경제학자와 당당하게 토론하는게 불가능합니까?
경제학을 모르는 진중권이 신자유주의를 주장하는 보수진영의 경제학자앞에서 침묵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보수주의 경제학자의 권위를 인정해야 할까요? 상식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 글을 보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진중권이 신자유주의와 싸우면서 경제학적 측면에서 싸웁니까? 진중권은 신자유주의와 싸우면서 신자유주의의 정치철학적 문제를 가지고 신자유주의와 싸우고 있는 겁니다. 신자유주의는 경제학이기 이전에 하나의 정치철학이자 이데올로기이며 사조거든요. 신자유주의는 영미가 선진국에 유리한 시장경제 헤게모니를 건설하기 위해서 만든 정치철학 이념입니다. 신자유주의를 실시했을 떄 물가는 낮아지고 국가간의 무역수지는 개선되며 기술혁신은 가속화된다. 이런 게 신자유주의의 경제학적 주장입니다. 진중권이 직관적인 판단만으로 이런 걸 반박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떄 진중권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경제학자들을 소환해서 신자유주의자들의 경제학적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반박해야 합니다. 진중권이 경제학에 대해 문외한이면 그럴 수도 없겠죠.
탄트라는 또 말합니다.
<현상을 제각기 '해석'한다해도...
나와 다른 길은 틀렸다라고 생각하는거야 말로 오만이죠...
저는 뇌과학을 신뢰하고, 정신분석을 좋아하지만...그 묘심화라는 분의 생각또한 존중합니다.>
저는 애초에 탄트라의 주장이 무조건 틀렸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탄트라가 뉴턴역학과 진화론은 절대적이라기에
그게 아니라고 했을 뿐이지, 철학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저도 마찬가집니다. 단지 저는 제 철학에 대한 해석이
탄트라에 대한 해석보다 훨씬 도움이 되고 철학하는 사람들에게 활기를 준다는 거죠. 작금의 학문체계가 절대적이라서
그걸 사람들이 신봉합니까? 다만 그게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라서 그런 것이죠.
제가 포퍼와 쿤의 주장을 불러 들여 탄트라를 반박한 것도, 그들의 주장이 탄트라의 주장을 공박하기에 좋았을 뿐입니다.
저는 그들의 시선을 불러온 것에 불과하죠. 진중권이 신자유주의와 싸울 떄 반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을 불러 오는 것처럼요.
그걸 철학자의 권위를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탄트라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 아니꼬우면 포퍼나 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면 될텐데요.
탄트라는 아마 포퍼나 쿤을 잘 모르나 봅니다. 잘 모르니까 반박할 수도 없고, 그러니까 신경질은 나고 결국 권위적이라고 매도하기에 이른거죠.
저는 도대체 탄트라가 왜 저 글을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도발하고 씹기 위한 의도외에는 아무런 의도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사람들이 공감갈만한 그럴듯한 내용들을 끼워넣은 것이 탄트라의 재주라면 재주겠죠.
결론
철학에 진입장벽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철학을 더 유익하게 만듭니다.
철학자를 따라 철학적 사고를 익히는 것, 이것은 아주 기쁘고 즐겁고
자기 생각을 강화하는 데 필요수적인 일입니다.
무엇을 모르면서 거기에 대해서 당당하게 토론하는 게 가능할까요?
저라면 담담히 물러나 공부하고 다시 도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