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02년 가을쯤으로 기억합니다. 큰 처형 내외분과 아내가 동승 중이었고 춘천/홍천 근처의 고속도로 운행 중이었습니다.
아마 맞을 겁니다. 망할 놈의 기억력.
그때만 해도 저의 운전습관은 상황에 따라 돌변하는 몹시 나쁜 운전자였습니다.
과속을 일삼으면서도 안전이 위험한 상황이면 모범 운전자로 바뀌고 어쨌거나 제 목숨은 소중하니까요.
아무리 레이서처럼 운전한다고 해도 한 가지 특징은, 시야가 확보되지 않으면 절대 무모한 행동은 안 했습니다.
화창한 낮의 고속도로엔 과속하기에 충분히 한가로웠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쥐고 있는 핸들에 목숨 넷이 달려있기에 '모범 모드'였습니다.
그러다가 대형 유조차를 추월할 때였습니다.
1차선엔 흰색 옵티마 차량이 포진해 있었고 2차선엔 대형 유조차가 나란히 같은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2차선에서 큰 차량 뒤를 따라가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만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옵티마 차량은 정속운행을 해야 하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왜 하필 1차선에서 그 짓을 하는 것인지 심히 못마땅했습니다.
차라리 속도를 줄여 안전을 확보하려는 찰나 1차선 옵티마 차량과 2차선 대형 유조차가 서서히 간격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었다고 판단하여 대형 유조차를 추월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조차가 참 길기도 길더군요.
추월하는 순간에도 안전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추월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옵티마 차량을 붙게 된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시야 확보가 안되면 절대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기에 옵티마 차량 전방도 같이 주시를 했습니다.
앞에는 차량도 없고 나지막한 내리막길 직선주로라서 돌발변수도 찾기 힘들었습니다.
추월이 곧 끝나고 이제 2차선으로 차선변경만 하면 마무리가 되는데...
이런 개@%&&*#$ 놈의 옵티마 차량이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나 보아왔던 슬로우 컷이 머릿속을 지나가더군요.
차량을 멈추기엔 이미 늦었고 우측 꽁무니엔 대형 유조차가 달려오고 있고 배산임수 사면초가가 따로 없었습니다.
갈 곳이 없었고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진짜 하늘이 노랗고 아찔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보이는 한 줄기 빛은 있었습니다.
중앙분리대 울타리와 급정거한 옵티마 차량의 왼쪽 공간이었습니다.
충분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다행스럽게 사이드미러도 스치지 않고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대견한 게 2차선으로 방향을 틀었으면 아마 이 글을 쓰고 있을 수가 없었을 테지요.
비슷한 상황의 움짤이 있길래 제 경험담을 한 번 써봤습니다.
움짤 출처는 중국 사이트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배 째세요. ㅠㅠ
뱀 발.
도대체 옵티마 차량은 왜 급정거를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일단 위험에서 벗어나 갓길에 차를 세우고 돌아봤습니다.
휴게소 진입로를 지나쳐서 그랬더군요.
멈춰선 1차선에서 유유히 90도로 꺾어 휴게소 진출로로 역주행 했더랍니다.
살인충동이 왜 일어나는지 알았습니다. 옵티마! 너 왜 그랬니?
동승자가 손윗사람이니 제가 흥분하는 것보다 오히려 별것 아닌 양 담대한 척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 들어 쫓아가서 멱살을 잡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온종일 옵티마 욕 거리를 제 귀가 들어야만 했습니다.
여러분 꼭 안전운행하세요.
안전거리 / 과속금지 / 차선유지
25년 무사고 운전자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