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왕성하게 폐인활동을 펼치고 있던 어느 꽃피는 봄날이었다.......
XX상가 오락실에 들어갔는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쇼킹 재팬 무삭제판같은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게 아닌가!!!!
글쎄 한 아가씨가........
격투게임의 대명사!
남성전용 게임! 철권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지적인 테트리스도 아니고..
깜찍한 바블바블도 아닌.. 그렇다고 1942도 아니었다.......
철권하는 여성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순수한 남자의 대명사인 나한테는 엄청난 파장이었다!
난 내눈을 믿을 수 없었다.
처음엔 머리 죨라리 긴 남자라고 생각했다......
혹은 쌩양아치...-_-
하지만 분명 여자였다!!!
갸날픈 목선.. 좁고 아담한 어깨..
섬세하고 부드럽게 꺾이..........
아,아니다!
더 이상 묘사하지 않겠다...!!
이러다 야설되겠다........-_-;;
여기에 야설을 올린다는 것은...
웃대사무처장님께
연속 뒤돌려차기로 귀싸대기 백만대 맞을만한
어처구니없는 플레이가 아니던가!-_-;;
아무튼... 어쨌거나 저쨌거나....
내 눈앞에서 철권을 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 여자였다!!!!
여자가 철권을 하다니..
여자가 철권을 한다는 것은...
남자가 팬티스타킹을 신고 앞구르기 하는 행위만큼이나
쇼킹하고 극히 보기 힘든 광경이 아니던가.......-_-;;
신기했다.
여자가 철권을......
철권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충격을 넘어서,
신선함마저 주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보니,
꽤 괜찮은 미모의 소유자이기까지 했다!!
칙칙한 오락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국지색이었다!
난 뒤에서 조용히 그녀의 플레이를 지켜보았다.
물론 막무가내로 눌러대는 수준이었다.
그녀의 초점흐린 눈빛과 언밸런스한 손짓에서...
그녀가 아무 생각없이 하는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_-;;
그녀는 두번 연달아 첫판에서 죽고는
약간 어두운 얼굴로 급히 오락실을 나가버렸다.
참 특이하면서 귀여움을 유발시키는 여자였다.......
그런데 집에 왔더니...
처음 본 그녀가 자꾸 아른거렸다.
워낙 인상 깊었다!!
철권하는 것도 특이해서 그렇지만,
꽤나 미인인지라....
으흐흐.... *-_-*
그 여자는 뭐하는 여자인지 몰라도,
그 뒤로 오락실에서 못봐도 거의 이틀에 한번꼴로 볼 수 있었다.
오락실에 오는 페이스를 봐선, 분명 폐인 페이스인데......-_-
하지만! 예쁜 그녀를 폐인으로 의심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결코 폐인 필이 아니었다!
그녀는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로 철권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락이란 게 하면 할수록 진전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언제나 1탄을 넘지 못했다.
그녀는 결코 단 한치의 발전도 없었다..
늘 1탄이었다...
난 처음 그녀가 일부로 못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줄 알았다....-_-;;
오! 놀라울 정도로 이 한결같은 실력!!-_-
아무튼......
난 그런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의 그녀를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몰래 나 혼자 가슴앓이하는 거지만...)
사랑을 하면 크게 달라지게 된다고 했던가!!
난 그녀를 좋아하게 되면서,
더 이상은 쾌쾌묵은 츄리닝차림으로 오락실을 다닐 수가 없었다.
예전에 한참 폐인 전성기 시절에는 심하다 싶음...
츄리닝 엉덩이부분이랑 허벅지부분에 밥풀이 붙어있을 때도 있었다.......-_-;;
하지만!! 철권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오락실을 갈때면 옷에 신경까지 쓰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에게 정말 놀라운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씻기 시작한 것이다!!
이 활화산열혈남아가 씻는다는 게 어디 그게 보통일인가!!
큰 마음먹고 머리도 감았으리라.......
잇~힝 *-_-*
폐인된 후 6개월만에 재회한 샴푸와 비누는
날 변함없이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 그래.. 이 자식.. 너 돌아올 줄 알았어..
으이구~ 이 자식.. 잘 생각했어..!! "
난 그렇게 점점 나날이 변화해갔고..
폐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깔끔해져만 갔다........
날이 갈수록 철권 그녀에 대한 애정은 날로 커져만 갔다!
애정을 넘어서 아주 끈적끈적한 애증수준까지 치다르고 있었다........
다시 돌리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있었다...
이미 엎질러진 야구르트였다...
한번 엎질러진 유산균은 다시 담을 수 없으리라........-_-
그렇게 말 한마디 못걸고 가슴앓이만 죽어라 하던 어느날.....
이런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 늦은 밤.....
나 또한 철권의 골수팬인지라, 철권에 혼을 빼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옆에 2인용자리에 턱 앉더니 나한테 주저없이 이었다.
난 늘 누군가 이렇게 나한테 도전해오면 이상하게 흥분이 됐다.
누굴까하고 옆을 슬쩍 바라보았다......
아..아니!!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나한테 이은 사람이 바로 다름아닌 그녀였던 것이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거라 예상은 해왔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올줄이야..!!
늘 그녀와의 상상을 꿈꾸곤 했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 상상 】-그녀와의 프로젝트 *********************
1. 어느 날씨 좋은 날 내가 지적이고 중후한 모습으로 철권을 하고 있다.
2. 그녀가 100원을 넣고, 나한테 도전한다.
3. 예상대로 난 엄청난 실력차로 첫째판을 이긴다.
4. 그녀는 앙증맞은 표정과 어조로 한판만 봐달라고 내 팔을 붙잡고 애원한다.
" 한판만 봐주시면 안되염~!!? 어우야~ *^0^* "
5. 난 그녀의 자존심이 상하지않게
아주 접전을 하는 것처럼 플레이를 이끌어줘서 둘째판을 져준다음 그녀의 환심을 산다.
6. 난 일부로 세째판마저 져준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한다.아주 매력적인 어조로...
"저의 실력으론 도저히 아가씨를 이길 수 없군요.. 후훗~ " 이라고 말하며
자상하고 배려심 깊은 남자라는 걸 보여줘서, 그녀를 무아지경에 빠트린다.
특히... 후훗~ 에서 잘해야된다.....-_-
7. 그리고 난 주저없이 그녀와 아름다운 미래를 설계한다.........
오랜만에 외쳐본다!! 웁스~!! +_+
이것이 나의 늘 상상해온 그녀와의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건 정말 나에겐 놓칠 수 없는 천재일우였다!!
그녀와 첫째판 대결을 펼쳤다!
역시 예상대로 프로젝트 3번이 맞아 들어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4번도 적중했다!!
그녀는 날 보며 한판만 봐달라고 말했다.
" 아저씨..!! 한판만 봐주세요~ "
결코 아저씨가 아닌 난 순간 아주 일시적으로 마음이 상했지만...
뭐, 그래도 프로젝트가 맞아 들어가니 기쁨이 더했다!-_-
난 그녀에게 분위기있는 중저음의 베이스톤으로 멘트를 던졌다.
" 네.. 봐드릴께요! 후훗~ "
물론 당시 갓 20살이 된 나로선.....
" 나 아저씨 아닌데... " 라는 멘트를
먼저 날리고 싶었지만........-_-;;
어느새!!
이제 프로젝트 마지막 7번까진 얼마 안남은 상태였다!!!!
내가 그녀에게 마음좋게 져주기만 하면 됐다.
참고로 내 캐릭터는 프로레스링을 구사하는 타이거마스크 킹 이었고,
그녀의 캐릭터는 태권도를 구사하는 태권청년 화랑 이었다......
난 무작정 봐주면 안 될 것 같아,
접전을 벌이다가 져주는 컨셉을 택했다.
그래야 그녀도 재미를 느끼고, 자존심도 안 상하고 기도 살고....
난 현명했다!! *-_-*
난 그녀를 몇대 툭툭 친 후 계속 맞아줬다.
아주 리얼하게...
내 캐릭터 킹은 거의 에너지가 바닥 나있었고,
그녀의 캐릭터 화랑은 에너지가 반도 넘게 남아 있었다.
난 열심히 하는 척하다 죽어줄려고 뒤로 막 도망다니는 척했다.
그러면 순진한 그녀는 막 날 기어히 죽이겠다고
필사적으로 쫒아오며 공격을 시도했다.
" 허허허~ 이런이런! 역시 화랑은 당해낼 수가 없단 말이야~
화랑 이 녀석! 이런 저돌적인 청년같으니! 허허허허~ "
후훗~ 깜찍한 것........
그러던 그때였다!!!
그녀가 회심의 돌려차기를 시도했다!
난 좀 더 있다가 극적으로 져줄려고,
그녀의 이번 돌려차기를 막으려 했다!
그..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이게 왠 오락실측의 농간이란 말인가.....!!!
순간 그녀앞에서조차 제길슨!!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내 실수란 말인가!
아님 오락기가 고장이란 말인가..!!
프로레스링을 구사하는 내 캐릭터 킹이...
돌려차기를 하려는 그녀의 캐릭터 화랑을 순간적으로 덥썩 붙잡더니!!!
그 빌어먹을 연속필살기에 바로 들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평소 하려고 하려고 해도 죽어도 안 되던 그 필살기가......
한치의 오차없이 정확하게 들어가고 있었다.......
내 캐릭터 킹의 필살기는...
잡고 돌리기, 져먼스플렉스,연속 방아찍기,똥꼬찍기..... 그외에 다수........
쉴새없이 가해지는 연속기였다........
한마디로 킹 그가 평소 열심히 수련해온 기술들을
유감없이 마음껏 펼치는 기회의 장 같은 필살기였다.........-_-;;;
꽃미남 화랑이 이겨내기엔 너무 가혹한 강행군이었다!
킹의 연속 방아찍기에 화랑의 항문은 망신창이가 됐으리라..........
킹은 그녀의 캐릭터 화랑을
무슨 마네킹 농락하듯 들었다 놨다하고 있었다.......-_-;;
나와 그녀는 그저 멍하니..
그 빌어먹을 놈의 필살기를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표정은 싸늘해져 갔고...
그녀의 캐릭터 화랑또한 그렇게 싸늘히 식어갔다...
난 인정사정없는 킹을 말려보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 야~ 킹!! 이제 그만해~!!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너 이새끼! 이게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
그렇다......
킹은 다른 캐릭터와는 달리
한번 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도베르만같은 녀석이었다............-_-;;;
알고보니....
오락기 기계의 고장이 아니라........
우연이었지만...
그토록 바라던 기술이 처음 성공한 그 희열탓이었을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손은 멈추지 않고 연신 버튼을 눌러대고 있었던 것이다....... -_-;;
그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아주 어두운 얼굴로 오락실을 홀연히 나가버렸다...
쓸쓸한 그녀의 뒷모습...
난 도저히 그녀를 잡을 수 없었다...
변명하기엔...
내 필살기가 너무 섬세했으리라......-_-;;;
그렇게 평소 하고 싶어도 못했던 그 킹의 필살기....
난 그녀를 상대로 처음 성공했다...
그런데..
왜 하필 그녀란 말인가...!!-_-;;
그녀는 떠났고......
내 캐릭터 킹은 승리의 포즈 화려한 세레모니를 취하고 있었다....
씨바 킹!! !! 좋~ 단다!! T 0 T
난 킹을 잠시 비난한 후 전원을 꺼버렸다....
하긴.. 킹이 무슨 죄겠는가...!!
난 순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기술이 우연히 성공하자
그 희열에 무의식중에 내 손이 계속 버튼을 누르며 필살기를 이어갔다는 걸...
그렇다!!
난 은연중에.....
사랑을 버리고 필살기를 택한 것이었다...... -_-;;
내 이 빌어먹을 손을 잘라버리고 싶었다......
" 손... 이자식..... 이 잔인한 자식~!!! "
아~~!! 그깟 필살기가
정녕 사랑하는 그녀보다 중요하단 말이더냐?!!
난 그날 이후 그녀를 봐도 그저 말한마디 못걸고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폐인 가슴에 폈던 한떨기 꽃은 그렇게 시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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