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유인 여러분. 우선 저는 91년생입니다. 한밤중에 과제를 하다가 갑자기 든 생각이 있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읽는 분들에 따라 상당한 불쾌감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그 점은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본문은 편의상 반말로 하겠습니다. 본문 대화 내용 중에는 순화된 내용도 있습니다. 두서 없이 무작정 써내려가는 점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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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오늘. 2005년 6월 5일 일요일. 15살. 너와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지내 온. 말하자면 소꿉친구 같은 존재였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너와 나는 마치 연애 소설마냥, 서로의 감정을 모른 채 같이 생활해 왔다고 생각한다. 주위에서도 '사이 좋은 남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으니까. 중학생이었을 때는
어렴풋이 '너와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아...'라는 하찮은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그 날. 중학교 2학년. 너와 나는 둘이서 같이 등산을 갔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집 앞에는 30분 쯤이면 오를 수 있는 산이 있었으니까. 우리는 산을 올랐다. 아니 어쩌면 그 날 둘이
서 같이 산을 올랐다는 것 자체에서부터 인생의 길이 틀어졌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나는 너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었고, 너도 그것에 장단을 맞추어 웃어주었다.
그 웃음이 거짓으로 점칠된 가짜였다는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방 밝혀질 수 있었다. 산 정상에서 나는 고백은 아니지만 그것과 비슷한 무언가를 말했다. 너는 "조금만 시간을 줘"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나는 평생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오래 기다릴 각오 정도는 했다. 우리는 소꿉친구였고, 앞으로도 계속 같이 해 나갈 사이라면, 기다리는 것 쯤은 쉬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그렇게 한 달 조금 덜 되었을까. 여름방학 직전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우리가 다니던 중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교칙이 너무 빡세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은. 명문고 진학자는 그저 그런 숫자를 내놓는, 말 그대로 평범한 학교였다고 나는 기억한다. 그런 학교
에서, 너와 나는 같은 반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계속해서 너를 믿으며 대답을 할 때를 기다렸던 내가 바보였지. 결국 나는 너의 대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방학식 전날에 그 때의 일을 말하며 대답을 어쨌냐고 물었다.
그것이 비극이 시작이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널 좋게 생각한 적이 없어. 하루 종일 내 뒤만 졸졸 쫓아다니고, 공감할 수 없는 화제만 골라서 얘기하지. 네가 다른 사람들과 친숙하게 지내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확실히 말하
자면 너는 너무 내성적인 나머지, 사람 하나 제대로 사귈 수 없는 겁쟁이라는 거야. 그런 너랑 이때까지 잘도 다녔다니, 내가 다 대견스러울 정도네. 앞으로는 말 걸지 말아줘. 기분 나빠."
너는 대략 이런 말을 한 뒤, 다른 친구들과 함께 교문을 나갔다. 그 때 네가 나에게 보여준 표정과, 너의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 준 표정은 180도 달랐던 걸로 기억해. 그 날로 나는 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나는 방에 들어가 조금 울었다. 너의 말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실제로 나는 겁쟁이었다. 그 성격은 지금도 바뀌지 못한 채. 여태까지 게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날로 너와의 연락을 완전히 끊었다. 여름 방학이 한창이었고, 그 나이대의 학생들은 모두 어딘가에 놀러 가고 싶어 하겠지만(물론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억지로 떼를 써 단기 종합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속된 말로 '날 차 버린 너에게 엿 먹이기 위해서는' 공부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도 그렇고, 인터넷에서도 그렇고, TV에서 본 것도 그렇고. 이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부가 최고다. 그 때의 나는 그것을 철썩같이 믿었다. 그래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내 학년에는 약 37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었다. 그 일을 당하기 전까지. 나는 전교에서 중간까지밖에 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인간이었지만, 여름 방학을 기점으로 서서히 성적을 끌어오르기 시작했다.
공부만 했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엄친아가 아니었다. 공부와 교우관계를 양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한때는 공부 따위 포기하고 친구들과 추억을 쌓을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방학식 전의 네 표정을 떠올리면 미
쳐버릴 것 같아 게속 공부에 매진했다. 성적은 올랐고, 그에 비례해 친구들과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2학기의 기말고사는 좋은 성적을 얻어낼 수 있었다. 전교 20등 안에는 들어갔다. 부모님은 기뻐했다. 그리고 그 날을 기점으로, 반 아이들의 따돌림이 시작됐다. 물론 타겟은 나였다. 반의 모두들이 나를
따돌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주모자가 내 성적향상을 싫어하는 녀석들과 '너'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날 괴롭히던 녀석들과 네가 즐겁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으니까. 너는 그 때 내 발목을 붙잡
을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오히려 그것은 역효과였다. 너는 내 의지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3학년이 되었다. 너와 나는 반이 갈라졌지만, 2학년 때 나를 괴롭히던 녀석들 중의 두 명이 나와 같은 반이 되었다. 괴롭힘은 여전했다. 그렇지만 내 성적은 게속 올랐다.
공부만 한 것이 아니었다. 글 쓰기를 좋아했던 나는, 여러 단체에서 주최하는 글쓰기 대회에 많이 참가했다. 그 중 하나는 우수상, 셋은 장려상을 탔다. 담임 선생님은 기뻐하셨다. 나도 기뻤다. 이걸로 너
를 골탕먹일 초석 쯤은 마련해 두었다.
결국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교 1등은 하지 못했지만(그것이 내 중학 생활에 있어서의 최대한의 목표였다.), 5등 안에는 들었다. 너와 나는 고등학교가 갈라졌다. 너는 평범한 공립대에, 나는 일 년에
수도권 명문대 진학생을 수십 명은 내놓는 명문고에.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에서의 생활은 바빴고, 어느 새 나는 너를 잊어버린 것 '같았다'.
고1. 여름 방학이 끝나고 고등학교 축제가 벌어지는 시기. 여름이 거의 끝나가고 가을이 시작되는 계절이었다.
인터넷에 이러는 것도 좀 그렇지만, 그 때 당시 나는 학교 내에서도 꽤나 알아주는 '기대의 신입생'이었다. 우선 공부를 잘 하게 되니까, 선생님들로부터의 신임은 금방 얻을 수 있었다. 나머지는 학생들이
나를 봐주는 평판. 나는 이것은 가면, 혹은 허세로 감춰버렸다. 사람들에게 먼저 친밀하게 다가선다. 오늘의 적도 내일의 친구로 만들어 버리는 이 방법은, 나를 금방 유명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남녀
구분없이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각설하고, 고등학교 축제날로.
그 때 당시 할 일이 없었던 나는 교내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 날은 비가 왔었다. 장마도 다 끝난 것 같았는데,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듯이 하늘은 엄청난 양의 비를 흩뿌렸다. 그런 날 네가 우리 학교
의 축제를 구경 온 것이다(같은 지역의 학교였기 때문에, 학교같의 암묵적인 룰인지 뭔지는 몰라도, 같은 학구내의 고등학교의 축제날이 똑같았다).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두 번 봤을 때, 나는 너라는 것을 확신했고, 다가가 말을 걸었다. 모든 것이 게획대로였다. 네가 축제에 온 것은 게획이 아니었지만, 조금 앞당겨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처음 인사를 걸었을 때, 너는 냉담한 방응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굴은 기억하고 있겠지만, 그런 일을 했으니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지. 말을 걸었던 때는 오후였고, 아직도 비가 내리
고 있었다.
그래도 너를 낚기 위해 열심히 뭔가를 말하고 있었을 때 쯤, 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같은 반의 여자애 세 명이 서 있었다. 그 세 명은 너를 힐끔 쳐다봤다. 아마 여자친구인가 뭔가로 착
각했겠지. 나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얘는 소꿉친구. 우리 학교 축제에 와 보고 싶다길래, 불렀어. 그뿐이야."
라고 말했다. 그제야 너희들은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짓고
"OO(제 이름)아. 시간 있으면 잠깐..."
"알았어."
나는 너희들을 따라갔다. 복도 끝에 다다라서 돌아보니, 너는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네 옆에는 같은 교복은 입은 여학생 한 명도 서 있었다. 어딘가에서 숨어서 보고 있었겠지.
그리고 나는 빈 교실에서 고백을 받았다.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 아이는 "평소에도 성실하고 모두들에게 친절한 너를 보고 좋은 느낌을 받아서..." 랬다.
진짜 내 모습. 내가 뭣 때문에 살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는 주제에.
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결국 그 아이의 고백을 승낙했다. 지금 와서는 상당히 미안한 말이지만, 그 아이는 '버리는 카드'였다. 지금 보고 있다면 정말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선아야, 너는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그 때의 나는 일종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생각해. 너의 고백을 받아들인 것도, 내 소꿉친구를 가지고 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어. 정말로 미안해.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나와 선아는 사귀기 시작했다. 주위에는 비밀로 했다. 너는 나를 진심으로 좋아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좋아하는 척 했다.
축제가 끝나고 얼마 후, 내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소꿉친구인 너였다.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아낸 거야?"
"그냥, 네가 다니는 학교에 친구들이 있어서. 묻다 보니 이렇게 알아냈지 뭐."
그리고 우리는 삼십 분 가까이 대화했던 걸로 기억한다. 유일하게 그 때 옛날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였지만.
그리고 그 대화의 날 이후로부터, 나는 너를 공략하기 위한 포석 깔기에 돌입했다. 1학년의 2학기. 과장되게 말해서 전교에서 나를 모르는 학생들과 선생님은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내 번호를 알려 준 학
생을 만나는 것 쯤은 금방이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앞으로 내가 부탁하는 게 있으면 그 아이에게 연락을 취해 줘."라고 부탁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소꿉친구에게 내가 얼마나 잘난 놈이 되었나 번호를 알려준 그 녀석이 소꿉친구에게 알려주는 것 뿐. 그것 뿐이었다.
그 짓을 2학년 여름방학 전까지 천천히 진행했다. 전화 통화도 꽤 했던걸로 기억한다. 대부분의 통화는 너에게서부터 걸려 온 것이었다. 나도 가끔 전화를 걸었다. 너를 안달나게 해야 하니까.
그리고 고2의 여름 방학이 왔다.
방학 한 달 중 약 2주를 보충수업에 할애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방학 첫날부터 평소와 같은 시각에 일어났다. 준비를 끝내고 식사를 하고 있는데, 집의 초인종이 올렸다. 부모님은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
셨고, 집에는 나 혼자였다. 문구멍으로 누구인지 확인한 순간, 나는 걷잡을 수 없는 환희에 사로잡혔다. 너였다.
드디어 미끼를 물어 주었구나. 계획이 한 단계 오른 기분이 들었다.
나는 문을 열어 너를 맞이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우리 둘 사이처럼. 나는 너를 친근하게 대접했다. 너도 나를 친근하게 대했다. 우리는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이다.
...라고 너만 생각했겠지.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로스트 패러디같지만 생각나는 게 이것밖에 없네요).
학교에 가기 전, 나는 이 생활을 계속하면 3학년 때는 전교 회장 자리를 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너는 어린애마냥 기뻐했다. 분명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게 하나 늘었다고(ex/ "내 소꿉친구 OO말인
데, 걔는...) 좋아했겠지. 지금 생각하면 참 고소하다.
여름 방학때는 너와 같이 어딘가에 많이 놀러갔다고 생각한다. 원래 나는 애인이 있었지만(축제 때의 선아), 나는 거리낌없이 너와 어울렸다. 바닷가에서 불꽃놀이도 봤다. 첫 키스도 너였다. 솔직히 말해
토할 것 같았다. 계획만 아니었다면 그자리에서 다음날 아침 해를 못 보게 했을지도 몰랐다.
고2 겨울방학식 때는 글쓰기 백일장에서 대상을 받았다. 가을에 쓴 백일장 투고글이 당선된 것이다.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는 건 나에게 엄청난 쾌감을 선사했다. 이 일을 너에게 얘기하자 너는 자기 일처
럼 기뻐했다. 죽어버리라 그래. 너는 내 발끝에도 미칠 수 없어.
고3.
드디어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해가 다가왔다. 2010수능. 수시로도 수도권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는 내신 성적이었지만, 나는 정시를 택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는 너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싶었다.
나는 학생회장이 되었다. 1학년 때부터 쌓아 온 인맥은 나에게 있어 최강의 아군이었다. 그런 인맥이 내 계획을 위한 가짜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리고 부모님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 이사를 가자. 부모님 직장도 그쪽이 가까우니, 일석이조다. 라는 식으로. 부모님은 처음에는 반대하셨지만, 3달 간 집요하게
설득하자 결국 인정해 주셨다. 격려도 받았다. 우리 아들은 하면 되는 아이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우리는 아들을 믿는다.
나는 이 말을 너에게서 듣고 싶었다.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둘째였다. 나는 너로부터 신뢰를 받고 싶었다.
... 그런데 그건 아니었잖아? 너는 어떻게 10년 가까이 쌓아 온 관계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는 거야?
기초작업을 끝낸 직후, 나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부에 매진했다. 너에게 연락하는 것도 점점 뜸하게 했다. 그렇지만 너는 점점 만나자는 요청을 많이 했다. 분명 내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으니까, 된장녀 마냥(물리적을 원하는 것이 아닌, 유명인을 가지고 싶어하는 심리) 나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겠지. 소용 없었다. 지금 너와 나의 차이를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름 방학때는 가능한 한 너와 적게 만났다. 그리고 여름 방학이 거의 다 끝나갈 때, 문자로 '나. 서울에 있는 대학을 노리고 있어.'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게 권총의 방아쇠같은 역할을 했다. 너는 혼란에 빠진 것 같았다. 곧 그 때의 번호를 가르쳐 준 친구로부터 네가 공부에 열중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코웃음이 나왔다. 이제 와서 네가 어떻게 나
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수능날이 왔다. 나는 평소 치던 모의고사처럼 덤덤하게 문제를 풀어갔다.
수능이 끝나고, 시험관으로부터 핸드폰을 받아 전원을 켠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1분도 채 안 되는 간격으로
-수능 어땠어?
-나 망친 것 같아 ㅠㅠ
-답장이 없네. 무슨 일 있어?
-OO아. 연락 좀 빨리 해 줘. 궁금하단 말이야 ㅋㅋㅋ
따위의 구역질 나는 애교로 뒤덮인 문자가 와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늦게 켰어. 나는 평소대로 나온 것 같아. 그래도 불안하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라고 보냈다. 마지막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성적표가 나온 날. 내 심장은 미친듯이 뛰었다.
올1등급. 남들이 말하는 '대학 자유이용권'이었다. 나는 담임과 상담해 수도권의 유명한 대학. 그 중에서도 엄청난 지위와 재력을 얻을 수 있게 해 주는 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취미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
다. 애초에 그 사건 이후로 내가 제대로 된 취미를 얻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있다고 하면 독서와 음악 감상 정도일까.
원서를 넣은 대학교 발표가 하나하나 발표되기 시작했다. 역시나라고 해야 하나, 가나다군 전부 합격했다. 친구들(이라고 부를 자격이 있는지 궁금해진다)은 축하해줬다. 나도 웃음으로 답했다.
그리고 새해가 찾아왔다. 너와 나는 아파트 복도에서(우리들은 같은 동에 살고 있었다) 악수를 했다. 나에게는 영원한 이별을 고하는 악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이별이 아닌, 두고두고 괴롭
혀주는 잠시간의 이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지금(6월 5일 현재도)도 만나자고 하면 너는 주인을 본 새끼 강아지마냥 달려오겠지.
그리고 서울로의 이사가 며칠 앞으로 다가온 날, 나는 너에게 연락을 했다. 나오라고, 할 말이 있다고.
근처 공원에서 만난 너는 굉장히 꾸몄다. 남들이 보면 예쁘다고 생각할 만큼.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만큼 나는 너에게 역정을 느꼈다.
너는 힐끗 봐도 알 정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분명 내가 고백이라도 할 걸로 보이겠지.
"할 말이 뭔데?"
"이번에 넣은 대학 원서 말인데..."
"응."
"전부 붙었어."
"... 축하해."
너는 웃었다고 기억한다. 나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계속 말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이사를 가."
"...뭐?"
이번에는 표정이 반대로 변했다. 이렇게 표정이 변화부쌍한 가죽 가면도 있던가?
"그래서 말인데, 너한테 꼭 해야 할 말이 있어."
"어?"
"나 사실 너를..."
여기까지만 말하고 뜸을 들였다. 너는 두 눈을 꼭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한동안 침묵.
"..."나는 침묵했다.
그런데 갑자기 네가 나한테 달려들더니 그대로 날 껴안았다.
"말 안해도 다 알아. 기뻐."
네가 울면서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이건 어딘가의 초콜렛 파이 광고인가?
거기서 내 참을성은 한계를 뛰어넘었다.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없었던 떨림이었다.
"어디서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고 하는 거야..."
"어?"
나는 너를 거칠게 밀쳐냈다. 너무 세게 밀쳐낸 탓일까, 너는 비틀거리다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모습마저 우스꽝스러웠다.
"너... 기억 못 하지?"
"... 기억 못 하다니, 뭐를? 왜 그런 표정을 지어? OO. 갑자기 무서워 진 것 같아."
"... 모른다고?"
그 이후로는 홍수 때의 둑이 터진 것 같이 여태까지의 일을 말할 수 있었다. 5년 전의 그 날, 나로서는 회복할 수 없는 심한 굴욕을 당한 것. 그때부터 마음을 고쳐먹은 것. 가면을 쓰고 살아온 것. 너를
가지고 논 것. 너는 내 발 끝에도 미칠 수 없다는 것. 이건 전부 계획이었다는 것. 너는 장난감이었다는 것.
그렇게 말하고 나니 속이 후련해진 나와는 달리, 너는 얼굴이고 뭐고 시뻘겋게 물들인 채, 여태까지 본 적 없었던(그 사건 때의 얼굴보다도 더 심했다)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때 생각했다.
아, 아무리 소꿉친구라지만 이건 아니다. 아 아이는 단순히 나를 분노의 대상으로 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것 아니었겠는가. 나는 너에게 조소를 날렸다.
"이제 더이상 만날 일은 없다. 잘있어라 낙오자야."
며칠 후 나는 이사했고, 대학교에도 진학했다.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캠퍼스 라이프를 누리고 있다.
혹시나 해서 적어보지만, 오유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때의 소꿉 친구에게.
5년 전의 일.
그게 너로서는 아무리 장난이라도 했어도, 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나는 내 또래의 학생들이 하는 치졸한 복수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좀 더 치밀한, 인생에 두고두고 후회하게 할 수 있는 복수를
원했어. 나는 그것을 성공시켰고, 너를 망가뜨렸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원했던 거야. 5년 전에 내가 경험한 충격을 너도 맛보기를 원해. 어쩌면 그 충격이 그 때의 내가 받은 충격의 몇 배가 될지도 모르지
만. 그런데 말야, 조상님들이 남기신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어.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아직 스무 살. 창창한 나이인데, 앞으로도 네 입 간수 잘 했으면 좋겠다. 남에게 마음의 상처를 줬다간 어떤 꼴을 당할 지 모르니까 말이야.
참고로 연락하려고 해 봤자 아무 소용 없을 거야. 이사하면서 내가 알고 있던 녀석들과도 모두 연을 끊었거든. 슬프지만, 이 모든 게 '너를 위해서' 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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