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인턴 기자]스물두 살 정효용씨는 서울 ○○운수 소속 택시기사. 운전석 자동문이 천천히 내려오자 요즘 유행하는 점퍼 안에 숨겨져 있는 파란색 택시 기사복과 그의 앳된 얼굴이 처음 눈에 들어왔다. 지난 10월 29일 오전 2시, 새벽에도 사람들이 붐비는 불야성 영등포역 인근에서 정씨를 만났다. 정씨는 택시 운전을 시작한 지 두 달째 되는 신참 기사, 그의 전직(前職)은 다양했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다니다 학교는 그만뒀어요. 학교 그만두고 자동차 부속 판매, 자장면 배달부, 전단지 배포, 인테리어 공사, 레스토랑 서빙, 호빠(호스트바) 접대부 등 안해본 일 거의 없습니다. 운전 좋아해서 택시 시작했는데 해 보니까 이 일도 재미있네요.”
내가 앞자리에 앉아 함께 다녀보자고 부탁했다. 그는 “요즘 손님들 합승 택시 안 타요”라고 말하면서도 나를 막지는 않았다.
“지하(호스트바)에 있을 때 지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줄 몰랐어요. 택시 운전하면서 사람들 만나다 보니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있구나 느껴지더라고요. 사람들 얘기 들으면서 많이 배워요. 저 못 배웠잖아요. 택시 하면서 세상 공부 하는 거죠.”실제로 20대 택시기사들은 시작한 지 며칠 안 돼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정씨의 동료들은 “정씨같이 어린 기사가 두 달을 버틴 것 자체로 대단한 일”이라며 정씨를 추켜세웠다.
“폐암 말기 환자였던 손님이 병원 앞에서 탄 적이 있어요. 한 40대 초반쯤 되는 손님이었는데 얼굴만 봐도 아픈 사람인 걸 알겠더라고요. 자기 이제 두 달 더 살 수 있대요. 그 손님이 그랬어요. ‘젊은 기사분이네. 부럽소. 열심히 사는 모습이. 살 수 있을 때 최선을 다 해서 살아요. 그래야 죽기 전에 후회를 안 해. 안 해 본 일이 많은 건 후회되지 않아. 제대로 해 본 일이 없는 건 정말 후회돼. 힘들어도 참고 잘 해봐. 당신 젊잖아.’ 택시비 못 받겠더라고요. 끝내 돈 다 내고 내리면서 말 없이 택시 차창을 탁탁 때려주셨는데, 하루 종일 우울했어요. 내가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고요.”정씨의 현재 수입은 하루 12시간 운전에 월 130만원 남짓, 한 달 평균 300만~400만원을 벌던 방배동 호스트에게 만족할 만한 수입은 결코 아니었다.
“돈을 제일 많이 벌었던 데는 당연히 호빠죠. 열여덟 살 되던 2001년, 아는 형 민증(주민등록증) 들고 호빠 찾아가서 면접봤습니다. 지금은 망가졌지만 그 때는 ‘영계’라고, ‘사이즈(외모, 체격)’ 괜찮다고 돈 좀 벌었어요. 남들 밤새서 수능 공부할 때, 저는 밤새서 손님들이랑 옷벗기 게임 했어요. 돈이 많이 들어오기에 한동안 기분 좋았죠. 그런데 1년 지나고 돌아보니 통장에 남은 돈이 하나도, 아예 하나도 없더라고요. 들어오는 족족 마술에 걸린 것처럼 돈이 쏙쏙 빠져나갔어요. 제가 미쳤죠. 백화점 가서 카드 박박 긁고, 비싼 술 마시고, 친구들 앞에서 폼 잡고 돈 빌려주고. 1년 지나고 나니 남는 건 상한 몸뿐이었어요.”그는 호스트바에서 차마 눈 뜨고 못 볼 광경도 많이 봤다고 했다.
“호빠 일할 때요? 얘기하기 창피한데…. 사실 그 때 재밌기도 했어요. 한창 야한 잡지, 야한 영화 볼 나이에 또래 여자애들이랑 옷벗기 게임도 하고, 왕게임(추첨을 통해 한 명의 ‘왕’을 뽑아 왕이 시키는 행위를 무조건 하는 게임) 하면서 술 마시고, 돈도 벌고, 처음엔 재밌었어요.(웃음)… 아니죠. 철이 없었죠.(한숨)”유혹하는 아주머니 가끔 있어운전 중 그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손님들 생각해서 택시 안에서는 절대 담배를 안 피운다는 정씨, 라이터 불빛에 살짝 비친 그의 얼굴에 후회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택시 안에 잠시 정적이 흐른 후에야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손님들 대부분 20대 여자들이었어요. 쳇, 또라이들…. 반은 대학생, 반은 우리 같은 화류계 아가씨들이에요. 웃긴 게, 호빠 온 대학생들 대부분은 자기가 명문대 출신이라고 말해요. 고등학생 데리고 놀면서도 있는 폼은 다 잡아요. 가방도 다 명품 메고 와요. 저 대학 다니는 애들 하나도 안 부러워요. 낮엔 폼 잡고, 밤엔 또라이 짓 하잖아요.”그가 계속 말을 이었다.
“술집 아가씨들은 자기가 당한 거 풀려고 쉬는 날이면 단체로 몰려와요. 룸 몇 개씩 잡고 ‘선수’(남자 접대부)들 괴롭히는데 돈 벌려면 시키는 짓 다 해야 돼요. 얼마나 더러운데요. 저는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아무리 돈 많이 준다고 해도 사람들 다 보는 데서 그 더러운 짓을 어떻게 해요. 아무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추태가 룸 안에서 다 벌어진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야. 내가 20만원 줄게. 팬티 내려봐. 팬티 내려서 한 번(자위) 해봐. 너 이 XX 내 말 안들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어!’제가 보기에 한 스물다섯쯤 된 여자였어요. 이미 술이 완전히 취해서 혀도 꼬인 상태였어요. 하여튼 이런 파트너 만나면 그날 밤 죽어나는 거예요. 일하면서 저도 바지까지는 내려봤는데, 차마 속옷은 못 내리겠더라고요. ‘누나 그냥 술이나 마셔요’ 했더니 욕을 마구 퍼붓더라고요. ‘이 X새끼. 나가! 재수없어!’ 이 짓을 어떻게 계속해요. ‘공사’(손님과 눈이 맞는 일) 잘 쳐서 ‘성공’해서 나간 애들 몇 명 있었는데, 하나도 안 부러웠어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싶었어요.”그는 “그 쪽 세계에서 이제는 깨끗이 손 털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택시 운전을 하는 요즘도 가끔씩 유혹의 손길이 뻗쳐온다고 고백했다.
“지금 택시 운전한 지 두 달 됐는데, 벌써 몇 번이나 아줌마들이 같이 술 먹자고 했어요.
‘기사 친구, 오늘 일당이 얼마니? 내가 오늘 일당 다 내줄게. 나랑 나이트 가서 술이나 마실래?’이 손님이 한 밤 11시쯤 탔는데, 술도 안 취했어요. 얼굴 보니 30대 초반쯤 되는 것 같던데, 목적지 도착할 때쯤 되니 조용히 말하더라고요. ‘저 일해야 돼서, 그냥 조심해서 집에 들어가세요’ 했죠.”그가 ‘손을 턴’ 이유는 분명했다.
“다시 쉽게 돈 버는 데로 빠지면 저 이제 인생 끝장나요.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제가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그거 하나는 확실히 알아요. 쉽게 들어온 돈은 어느 순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사라진다. 다신 안 해요. ‘밤일(업소일)’ 1년 만에 얼굴도 다 망가졌잖아요. 이젠 사이즈도 안 나오잖아요.(웃음)”그가 쓴웃음을 지을 때 저 멀리서 한 남자 손님이 손을 흔들었다.
“어서오세요!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일산 정발산역이요.”“네 네 알겠습니다. 안전벨트 좀 매 주십시오.”“근데 기사! 너무 어려 보이네! 몇 살이야?”“하하 고맙습니다! 술 좋게 드셨나 봐요.”“요즘 장사가 정말 안돼요”일산으로 가자는 취객이 택시에 오르자 그가 힘차게 가속기 페달을 밟는 게 느껴졌다. 자유로를 질주하는 택시 안으로 차가운 강바람이 스몄다. 질주하는 택시 안에서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새벽에 이렇게 장거리 가는 손님 만나면 기분 참 좋아요. 요즘 장사가 정말 안돼요. 저는 나이도 어리고 아직 결혼도 안 해서 크게 힘든 줄 모르겠는데, 가정 있는 선배들은 생활이 말이 아니더라고요. 택시하면 돈 못 번다고 남들이 그러기에 저도 다른 일 찾으려고 애 많이 썼죠. 근데 몇 년 전 재수없게 전과가 생겨버렸어요. 친구들 싸움할 때 옆에 가만히 서 있다가 경찰한테 잡혔는데 ‘혐오감 조성’도 폭력이라고 벌금 맞고 전과 맞았어요. 그 후로 몇몇 사람들이 저 보고 쓰레기라고 하대요. 어디 가서 일자리 구하려고 해도 다들 그냥 웃어요. 쓰레기 취급이죠. 고등학교 중퇴한 전과 1범이 일할 수 있는 곳이 서울에 그리 많지가 않아요. 뭐 그러려니 합니다. 사실 쓰레기 생활 했죠 뭐.”그는 스스로 ‘쓰레기 생활’을 했었다고 말했다. 열여덟 살 소년의 일상이 ‘쓰레기’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돈 무서운 줄 몰랐어요. 지금도 어리지만, 지금보다 더 어릴 때 집도 어려운데 집에 손 벌리기는 싫고, 내가 갖고 싶은 건 많고, 어떻게 빨리 돈을 벌까 고민하다가 친구랑 찾은 곳이 호스트바였어요. 사람 망치는 제일 빠른 길이 뭔지 아세요? 제일 빨리 돈 벌고 싶은 마음이에요. 돈 벌어서 (화류계) 뜬다고 했던 친구들, 제대로 사는 꼴을 못 봤어요.”정씨의 부모는 정씨가 일곱살 때 이혼했다. 정씨는 그 후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아빠는 요즘 수입이 없는 것 같아요. 중국집 주방장이셨는데, 사정이 생겨서 일 그만두고 요즘은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면서 일 알아보시나 봐요. 엄마는 종종 만나요. 엄마는 저 볼 때마다 찡그린 표정 짓고 제 머리만 쓰다듬으세요. ‘아픈 데 없니, 밥 잘 먹니’ 아까 물어봤던 거 묻고 또 묻고 그래요. 왜 엄마들 다 그러잖아요.”정씨는 스물두 살 또래의 친구들이 “대학을 다니며, 미팅도 하고, 영어 학원도 다니는 걸 안다”고 말했다.
“가끔 대학생 손님들 택시 타면 부러울 때도 있어요. 그래도 대학은 갈 생각 없어요. 요즘 대학 나와서 돈 버는 사람 있나요. 아니, 취직이나 제대로 하나요. 나중에 자식한테 창피하면 안 되니까 고등학교 졸업장은 검정고시 봐서 따려고요. TV 보면 길바닥에서 시작해서 차근차근 올라가 성공한 사람들 많잖아요. 저도 돈 좀 더 생기면, 작은 돈 투자해서 작은 가게부터 시작하려고요. 돈 많이 벌고 싶어요.”그에게 꿈이 있었다.
“그래요. 저 실수했어요. 누가 그러던데 사람은 누구나 다 실수를 하고 산대요. 저 못 배웠어요. 폭력 전과도 있어요. 사랑도 못 받고 자랐어요. 그래도 사람 아닙니까. 저도 실수할 수 있어요. 돈 무서운 줄 모르고 또라이 짓 하며 살았어요. 이젠 아니에요. 열심히 살려고요. 돈 좀 벌면 오토바이 가게 하나 차리고 싶어요. 저 오토바이 좀 만질 줄 알거든요. 오토바이 가게 차려서 남한테 해 안 끼치고 남 부럽지 않게 살고 싶어요. 이제 저 보고 쓰레기라고 하지 마세요. 쓰레기가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것 봤나요.”“손님! 손님 정발산역 다 왔습니다. 손님! 손님!”그가 잠이 든 취객을 흔들어 깨웠다. 손님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요금을 받는 그의 모습에서 ‘쓰레기 냄새’는 맡아볼 수 없었다. “교통방송 리포터의 발랄한 목소리를 듣는 일이 하루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며 활짝 웃는 정씨, 그의 택시가 다시 자유로를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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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 오랜만에 야후에서 좋은기사 읽어서 오유에도 올려봅니다..
제가 자주 가는 술집에 어느 손님이 이런걸 써놨더라구요. 이 기사 보니까 그게 생각나네요
"세상이 아무리 x같아도 정직하게만살면된다. 잔대가리 굴려봐야 잔돈밖에 못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