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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대의 새로운 가족형태>
'돌싱'
돌아온 싱글의 줄임말.
어쩐지 이혼남, 이혼녀란 말보단 돌아온 싱글 쪽이 달콤하게 들린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혼보단 순화된 단어이기 때문일까? 나는 내 주변 인물 중에 유일한 돌싱남인 연규를 쳐다봤다. 결혼 3년만에 합의이혼을 하고 돌아온 싱글이 된 그는 요즘 꽤 행복해보였다. 게다가 여유가 흘러 넘쳤다.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유부남이었을 땐, 아니, 총각 때에도 저렇진 않았던 것 같은데. 묘하게 분위기가 바뀌었다. 뭐야, 여자라도 생겼나?
나는 술을 한잔 더 권하면서 은근슬쩍 질문을 던졌다.
“너 이제 여자는 안 만나냐?”
“만나야지.”
녀석의 대답에 김이 팍 새버린다. 만나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교제사실을 숨길 이유가 없었으니까.
“차라리 부모님 댁으로 들어가는 건 어때? 솔로 생활 적응도 할 겸. 큰집에서 혼자 살기 외롭지 않냐?”
“실은.”
녀석은 답지 않게 말끝을 살짝 흐리면서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테이블을 들썩거리게 하기 충분했다.
“뭐?! 귀신하고 동거를 하고 있다고?!!!!!!”
차마 삼키지 못한 맥주가 턱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다섯명 중 유일하게 정신이 온전한 연규가 티슈를 뽑아 “어우 드러운놈”, 핀잔을 주며 턱을 훔쳐 주었다. 나는 얼떨떨하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하지만 보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아니, 고울수가 없었다.
연규녀석이 그런 나를 뚱하니 쳐다봤다.
“그렇게 이상하냐?”
“당연하지! 귀신하고 같이 살고 있다니, 이게 영화냐 현실이냐? 무슨 생각이냐 넌 도대체...”
“.....솔직히 말해도 되냐?”
이미 충격적 발언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해봤자 뭐가 더 충격적이랴 싶었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연규녀석이 쑥스러운 듯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이혼하고 외로웠거든. 집에 들어가기도 싫고, 사람 소리가 그리워서 텔레비전 밤새 켜놓고 그랬다. 꼭 술 마셔야 잠이 오고. 그 여자가 그리운 게 아니고 사람이 그립더라. 사람 소리가. 집에 가면 누가 기다리고 있는 그게. 그러다가 세달 전인가, 자고 있는데 무슨 소리가 나는 거야. 몸이 저리기도 하고.”
“가위에 눌린 거구만.”
“응. 처음에는 그냥 가위에 눌리는 느낌만 있었는데 점점 구체적으로 나타나더라고.”
“보이기도 하는 거야?”
“가끔.”
“..............”
“.............”
조금 긴 침묵이 이어졌다.
누군가의 입에서 “허, 씨발”하고 욕이 튀어나왔다.
“외로우면 애인을 만들어야지,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놈이 세상에 어딨냐?”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귀신을 보고 안보고, 이게 선택 가능하겠냐? 가위 눌리고 싶어서 눌리는 사람이 어딨겠어.”
“아니, 그걸 ‘동거’라고 받아들이는 거 말이야. 외롭다고 귀신이랑 같이 사는 놈이 제정신이냐? 어떻게 그렇게 속편하게 생각할 수가 있냐. 내 머리론 이해가 안 된다.”
“그렇게 나쁜 여자는 아니야.”
“허허. 꼴에 동거녀라고 편드냐?”
웃을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동거녀'란 말에 조금 웃음이 나왔다. 내가 웃음을 터뜨리자 나머지도 웃음을 참고 있었던건지 하하 웃어버렸다.
돌싱남 최연규가 현재 귀신하고 동거중이라니. 무서우면서도 충격적이고, 또 웃기기도 한 사건이었다.
웃겨서 웃긴 웃었는데 그 끝이 씁쓸했다. 나는 웃은 모양 그대로 일그러져서 굳어버린 입가를 손으로 문질렀다.
“퇴마사.......아니, 무당 불러서 굿이라도 한판 열어야 되는 거 아니냐. 별거하기 전에 제수씨도 그랬다며, 그 집 기분 나쁘다고. 집 나가고 싶은 핑계도 가지가지라고, 그때 네가 그랬잖아. 사실은 그 귀신이 제수씰 쫓아낸 거 아냐? 경쟁자 제거.”
“무슨 굿을 해. 나는 쫓아내고 싶지 않아. 귀신도 얼마나 외로우면 그러겠냐."
"그놈의 외로움 타령."
"사람이 그리워서 주위를 맴돈다고 생각해봐. 10년, 20년....어쩌면 몇십년씩. 게다가 사람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데. 얼마나 외롭고 슬프겠어.”
죽음이 남의 일은 아닌지라 이승을 떠도는 귀신의 상황을 상상할 수는 있었지만, 좋게 생각해줘도 ‘측은하다’ 정도지 연규녀석처럼 같이 살기로 인정하거나 그럴 수는 없었다. 게다가 녀석의 말투는 묘하게 거슬렸다. 귀신을 두둔하고 감싸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술자리 농담이라도 하는 건가 싶었지만, 연규의 전에 없이 진지한 태도를 보곤 심각한 사건이라 직감했다.
이혼의 충격 때문인가. 왜 저러는 걸까. 외로움으로 공감대를 형성했다쳐도......이해되지 않는다.
“정신차려, 인마.”
우리는 입을 모아 충고했다.
“정신차려, 최연규.”
하지만 별 소용은 없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연규는 친구들 모임에 참여하는 횟수가 점점 뜨문뜨문해졌다.
자기 상황을 이해 못하고 뜯어 말리는 친구들을 피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우리의 걱정대로 귀신에 홀려서 사람들과 멀어지고 있는 걸까.
이유야 어찌됐든, 녀석은 우리를 피하고 있었고 우리는 녀석의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다.
다시 연락을 한 건 거의 일년만이었다.
일년동안 얼굴을 못보고 지냈기 때문에, 나는 연규의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나갔다.
카페에 앉아있는 녀석의 얼굴은 수척해져 있었다. 원래 살집이 있었기 때문에 살이 빠졌다고 해봤자 남들 보기엔 딱 보기 좋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녀석을 알고 지낸 시간동안 저렇게 눈에 띄는 체중변화를 겪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 걱정됐다. 심지어 이혼을 겪으면서도 몸집은 그대로였는데.
내가 앞자리에 앉자마자 연규가 고개를 돌렸다. 다행이도 살이 빠진 것 외엔 건강해 보였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는 형식적인 인사 몇마디가 오고갔다.
"점심 먹었어? 아직이면 내가 살게, 먹고 싶은 걸로 골라."
공짜 밥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카페에 있는 메뉴 중에 끼니로 할만한건 밀가루 종류밖에 없었다.
우리는 파스타를 시키고 묵묵히 접시를 비워갔다. 거의 다 먹었을 즈음 나는 시계를 확인하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평소대로라면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새삼 연규의 차림새를 살펴보니 깔끔하게 차려입긴 했지만 출근한 사람의 복장은 아니었다. 주말이라면 모를까 오늘은 평일이었다. 평일, 점심시간이 지나간 오후에 어울리는 회사원의 복장은 아니었다. 게다가 녀석이 다니는 회사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이렇게 업무시간에 빠져나와 친구나 만나고 있을 시간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물론 녀석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이라는 전제하였지만.
연규는 말 꺼내기 쑥스럽다는 듯이 찻잔의 끄트머리를 살짝살짝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기다림 끝에 녀석이 꺼낸 말은 내 머릿속까지 멍하게 만들었다.
“나, 그 여자랑 결혼할까 싶어.”
여전히 만나는 여자, 아니 ‘살아있는 여자’가 없는 녀석이었다. 그러니 그 여자란 그 귀신이 분명했다.
나는 얻어먹은 밥이 역류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가 와줬으면 해."
저런 말을 들었을 땐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될까.
나는 어색하게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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