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생물체는 안 친근한데 나는 좀 더 친근하니꽈 반말체를 쓴다(ㅂ니다굽신굽신)
대학에 갓 입학 했을 때 부산에 살던 나는 서울로 가게되어 자취방을 구해 살았다. 자취방 근처에는 편의점이 하나있었다. 한 가지 좋았던 건 알바생이 꽤나 예뻤다. 화장을 거의 하지않고 출근하는 것 같은데도 보면 볼수록 매력있는 얼굴. 한참 그녀에게 반해 그 편의점에 자주 갈 때의 일이었다.
나는 선배들이 놀자고 할 때 빼고는 거의 매일 7시쯤에 담배나 음료수를 사러갔다. 그쯤되면 알바가 항상 담배를 하나씩 다 꺼내면서 수량을 맞춰보는거 같았는데 사람도 별로 없었고 또 일에 열중하는 그녀를 느긋하게 볼 수도 있었다. 한 일주일 쯤 가다보니 그녀도 나를 알아보는 듯 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어서오세요, 얼마입니다, 안녕히가세요 말고는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나도 먼저 말을 걸기엔 애매해서 말을 걸지 않았지만 보름쯤 후부터 그녀의 안색이 점점 나빠지는것 같았다. 원래 얼굴이 꽤 흰 편이었지만 거의 창백한 수준으로 보였다. 하루는 그녀가 계산대 구석에 엎드려있었다. 많이 피곤한지 들어올때 나는 방울소리도 못 듣고 자는듯 했다. 일단 물건을 고르고 "저기요"하고 몇번을 불렀지만 못 듣길래 계산대에 노크를 했다. 그러자 그녀가 눈을 뜨고 부시시한 머리를 정리하며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하며 계산을 해주다 갑자기 휘청 거렸다. 나는 깜짝놀라 몸이 안좋은 것 아니냐 괜찮냐 캐물었다. 그러니 그녀가
"한달 넘게 매일 7시에 오시는 분 맞죠?"
라고 물었다. 나는 뜬금없이 왜 이런 질문을 하나 싶었지만 그렇다고 일단 대답을 했다.
그러자 나에게 시간이 있냐고 물었다. 내가 괜찮다고 말하자 그녀가 잠시만 시식대에 앉아있어 달라고 했다. 그녀는 커피 2개를 계산해 나를 하나 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1월 말쯤 부터 알바를 했는데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6시간을 일한다고 했다. 그녀는 일을 하면서 이상한 일이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상한 일이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일을 하고 집에가면 꼭 누구한테 두들겨 맞은것처럼 온몸이 욱신거리고 피곤하다고. 그녀가 처음 겪은 이상한 일은 정말 별거 아니라고 했다. 편의점 냉장고 뒤편이 음료수 재고를 보관해놓을 수 있게 되어있는데 그안에서 재고를 채울 때는 손님이 들어올 때 들리는 방울 소리가 계속 들렸다는 것. 그래서 어서오세요 하며 나가보면 문은 미동도 하지않은 상태.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근데 난 이것만 들어도 하기스가 필요했다. 이때 미리 사놓았어야 했는데..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 점장이 방울소리가 잘 안 들릴수도 있으니 센서를 달아서 손님이 계산대 앞에 서면 냉장고 안에 벨이 울리게 해놓았다고 한다. 편의점 안에서 분리수거를 하면 냄새가 계속 남아있어서 문을 열고 한 10분정도 환기를 하는데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는데 냉장고 안에서 띵동~ 띵동~ 하고 계속 대여섯번이 울리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cctv가 녹화되는 컴퓨터 근처에만 가면 한기가 오른다는 것이다. ( 그녀가 한기가 오른다 고 표현 했다.) 발 끝에서 부터 발목 종아리 순서대로 휘감으며 올라오는 것 같다고. 이 말 까지하고 그녀는 그래서 무섭다고 같이 있어 달라고 했다. 솔직히 여기까지 듣자 나는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도 나는 남자라고 같이 있어 주겠다 호기롭게 말하고 그녀는 계산대에 나는 시식대에 앉아 원거리 대화를 하며 퇴근 까지 기다렸다. 그녀는 그래도 얘기하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며. 생각하니 또 소름이 끼치는것 같다고 춥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잘 모르는 남녀가 무슨 대화를 길게 할까. 그녀도 나도 말주변이 없었던 지라 대화가 끊기고 말았다. 호기심 있는 척하며 두리번거려 어색함을 떨쳐 보려는 차에 나는 보고 말았다. 편의점 계산대로 들어가는 칸막이 밑이 비어있는 것을 알 것이다. 근데 이 편의점은 계산대 맞은 편이 바로 문이다. 그것도 마치 5분전에 닦은 것 같은 깨끗한 유리문. 그 유리문에 비치는 칸막이 아래에는 하반신이 놓여져있었다. 하얗게 질린 두 다리는 신난다는 듯이 마구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상반신은 그녀쪽으로 놓여진 채. 그녀가 또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고. 얘기했지만 대답도 하지 못했다. 시간은 10시 반. 30분이 남았는데 난 그걸 보고 거기 계속 있을 자신도 없었지만 그녀를 데리고 나갈 수도 없었다. 입이 발발 떨렸지만 그녀를 계산대에서 나오게 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해 일단 그녀에게 라면이라도 먹지 않겠냐고 묻자 그녀는 멈칫하더니 뭐가 먹고 싶냐고 물으며 계산대를 열고 나왔다. 그 순간에는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것은 너한테 보이기 위해 다시 나타났다는 마냥 내 시선이 닿는 그 곳에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마치 그 하반신에 눈이 달려 나를 응시하는 것처럼 나는 압도당했다. 너무 무서웠다. 그 순간 동안 내가 숨을 쉬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라면을 골라서 계산대로 향할 때 나는 그녀를 잡아 끌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왜 그러냐고 퇴근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그녀는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고 힘겹게 계산대를 다시 보자 그건 씻은 듯이 없어져 있었다. 계산대를 멍하게 보고 있는 나를 그녀가 가만히 응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들어가지 말고 그냥 있자고 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밖에서 그녀와 함께 10분을 멍히 보냈다. 곧 다음 근무자가 왔고 그 사람과 교대를 한 그녀가 나와서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무얼 본거냐고 물어왔다.
망설이다가 나는 본 것을 그대로 말했다. 그녀가 재차 거짓말이 아니냐 물어왔다. 그녀는 그녀가 본 것을 말해주었다. 그녀 또한 하반신을 보았다고 했다. 정확히는 계산대 그 밑 틈으로 나가려고 하는 듯한 모양의 ㄴ자로 휘어진 하반신을. 그리고 그것 역시 신나게 경련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찰나 내가 라면이라도 먹지 않겠냐 하자 마치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모양으로 희미해져 없어졌다고 한다. 그건 뭐였을 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그 날부로 그녀는 알바를 그만 두었고 나 역시도 그 편의점 근처로도 가지 않았다. 그녀와 몇 번 다시 이야기 해보았음에도 그녀는 전혀 짐작 가는 것이 없고 편의점의 문제 인 것 같다고 했다. 도대체 그건 무엇이엇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