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이 아닌 과학이라면 연구결과물이 논문발표를 통하지 않고는 결과물에 대한 검증도 사회에 대한 기여도 제대로 되기 어렵다.
진료공부를 많이 했더라도 의사자격시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치료능력에 대한 검증도,치료기회도 제대로 되기 어려운데 연구도 마찬가지다.
치료능력에 대한 검증을 자격시험이 독점하듯이, 연구 결과물에 대한 타당성 검증도 저널 시스템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
진료공부를 많이 했더라도 자격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치료능력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듯이
(과학)연구를 많이 했더라도 결과물이 저널에 실리지 못했다면 그 연구 결과물은 가치가 없거나 오류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공식적인 진료기회가 자격시험을 통과한 자에게만 주어지듯이 (환자들도 무자격자에게는 시술을 거부하듯이)
저널 시스템의 독점적 권위로 인해 연구 결과물도 (거의) 저널에 등재된 것만이 다른 곳에 인용되어 세상에 반영될수 있다.
즉, 과학연구자의 일차적인 목표이자, 연구의 성과 정도를 판가름 하는 것은 논문발표이다.
논문발표를 위해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논문발표를 통해서만이 연구결과물이 인정되고 세상에 기여될 기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1. 주제발굴
논문발표를 위해서 일단 논문주제가 있어야 한다.
앞으로 전개되겠지만 논문으로 발표되기 까지의 과정은 길고 고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한 주제는 그런것들을 감수할 만큼 가치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연구 주제를 발굴하는데에는 주제의 가치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비용을 견줄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연구 주제의 발견은 대체로 어떤 크고 작은 우연한 영감들 에서 오겠지만
그 주제의 가치와 비용을 견주는 안목은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통한 내공에서 온다 할수 있다.
적합한 연구주제를 발견하는 것은 아마도 연구자에게 가장 어려우면서도 신중해야 하는 중요한 과정일 것이다.
물론 스스로가 교수가 아니라면 자의든 타의든 교수에게 의존해서 지도를 받아서 결정되어 진행될 것이다.
교수가 중요한 과정을 대신 해주고 연구에 대한 지원이나 학문적인 도움도 해 줄 것이니 좋은 점도 있지만
(물론 그 교수가 하고자 하는 연구주제가 가치있다고 했을 때)
자신은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지만 교수의 안목에서 그것이 아니면 연구를 진행할 기회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2. 관련공부
일단 어렵게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연구 주제를 발굴했으면 그것과 관련된 심화 공부를 해야 한다.
관련된 논문을 조사하고, 연구에 필요한 지식이나 자원을 파악하고, 이전에 이미 유사한 연구발표가 있는 것은 아닌지도 확인해야 한다.
관련공부가 깊어질수록 연구의 가치나 비용에 대한 판단은 좀더 명확해 질 것이고 연구 진행에서의 시행착오도 줄어들 것이다.
3. 연구계획
공부도 어느정도 되면 이제 본격적으로 연구 계획을 세워야 한다.
궁극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연구가설이 무엇인지 그를 위해 어떤 실험을 해야 하고 그에 따른 예측결과는 무었인지가
이 과정에서 최대한 명확히 규정되어야 하며 (이 단계에서도 그것이 막연하고 모호하고 피상적인 상태라면 주제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 연구를 어떻게 접근해서 진행할지, 무엇부터 시작할지 어떤 순서로 진행할지 등등..
실험 절차는 어떻게 세울지, 변수는 어떤것이 있을지..
등에 대해서 최소한의 윤각은 잡을 필요가 있다.
4. 데이터 확보
과학의 본질이자 알맹이는 데이터다.
모든 과학논문이 타당하다 할수는 없지만, 모든 과학논문에는 데이터가 있다고 말할수는 있다.
데이터를 바탕하지 않는 과학논문은 없고, 만약 있다면 그것은 사실 과학논문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객관적인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그 결론은 최소한의 보편성을 가질것으로 판단될수 있고
그래서 과학이 최소한의 신뢰와 권위를 얻을수 있는 것이다.
데이터는 주로 직접적인 실험이나 조사를 통해서 얻는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수준의 전문지식은 물론이고, 상당한 수준의 시간적인 정신적인 금전적인 비용까지 소모된다.
흔히 사용되고 있는 일반적인 데이터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해당 데이터 확보에 선행 연구자나 연구그룹으로 부터 협조를 얻을수 있다면
연구진행에서 대단한 비용을 절감할수 있게 된다.
5. 데이터 분석
데이터가 일정수준 이상으로 확보가 되었다면 분석을 해야 한다.
분석 자체는 따분하고 기계적인 것일수 있는데
분석 방법의 틀을 구상하고 만드는데에는 전문적인 지식과 신중하고 엄격함을 요한다.
분석방법은 기술적인 오류는 물론이고 접근상의 오류도 최소화 되게끔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6. 예측결과 도출
가장 불확실한 단계라 할수 있다.
즉, 분석 결과가 가설에 따라 예측했던 대로 나와야 한다.
해당 주제를 위한 연구에 이미 많은 비용이 지불된 상태이기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분석결과가 예측결과와 일치하지 않으면 상당히 곤란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그러하다.
분석결과가 예측결과와 처음부터 딱 맞아 떨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래서 어느정도 맞아 떨어지기만해도 사실상 성공이라 할수 있다.
예측과 결과에 오차가 있으면 분석방법이나 때로는 데이터 확보 방법에 문제가 없었는지
나아가 가설에 문제가 없엇는지를 검토한다.
그리고 분석을 다른 방법으로 한다거나, 필요하다면 데이터를 추가 또는 다른 방법으로 다시 확보할수도 있다.
이도저도 될 가능성이 없어지면 가설이라도 바꿔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이야기는 내용도 복잡해지고 통계 방법이나 과정도 구질구질해지며 재미도 없어진다.
그래도 어쩔수 없다. 그마져도 안되면 큰 비용이 소모되었음에도 그냥 헛짓꺼리 삽질을 한게 된다.
7. 논문작성
분석이든 데이터든 가설이든 어떻게 어떻게 수습해서 대략 내용이 정리가 되었다고 치면 이제 대망의 논문작성 단계이다.
논문에도 기본적인 양식이란 것이 있다.
대다수 저널에 통하는 양식이 있고, 해당 저널에만 통하는 양식이 있다.
대다수 저널에 통하는 양식은 몇편만 쓰면 대략 파악이 되지만, 해당 저널만의 양식은 매번 꼼꼼히 확인해서 반영해야 한다.
연구결과물과는 별개로 양식이 틀리면 분명히 감점이다.
논문의 공통양식도 사실 유념해야 한다. 왜 그렇게 틀이 잡혔는지 말이다.
어쩌다가 그렇게 틀이 잡혔을 것이고, 어느순간 대다수 관련 전문가들이 그 양식에 익숙해 졋기 때문에
그 양식의 섭리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있다.
그것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관련자들에게는 읽기가 쉬워질 것이고, 그렇게 될수록 내용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가능성이 크다.
즉, 연구자체 만큼은 아니지만 그것을 포장하는 논문작성 요령도 충분히 중요하다.
특히 연구절차나 결과만큼이나 소개글에 신경을 써야 한다.
소개글에서 연구의 동기와 가치에 설득력을 얻지 못하면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식이 되어)
연구가 비록 성공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 결과물이나 결론의 가치는 별로 와닫기 어렵다.
그렇게 논문의 초안이 완성되면 그걸로 끝이 아니다.
논문작성은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초안은 자체 검토를 통한 수정작업을 거쳐 최종본이 만들어 지는데 지루하고 지난한 과정이다.
읽을때 마다 수정할 곳이 보인다. 수정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 지는 곳에 비하면 차라리 그것이 더 나은지도 모른다.
최종본은 그렇게 수정, 재수정, 최종, 최종1 진짜최종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서 완성된다.
8. 논문투고
논문 최종본이 완성되면 이제 저널에 투고해야 한다.
연구주제와 결과물에 대한 처음의 외부와의 접촉이다.
일단 해당 연구주제와 최대한 맞는 저널을 찾아서 투고해야 개재될 가능성이 크다.
(참조논문이 실린 저널들을 참고하면 된다.)
또한 가급적이면 좋은 저널에 개재되면 좋을 것이다.
물건에도 좋은 물건이 있고 덜 좋은 물건이 있듯이 저널에도 등급이란 것이 있다.
해당 저널에 실린 논문이 다른 논문들에 많이 인용되는 저널이 대체로 좋은 저널이다. (대체로 impact factor로 판단된다.)
연구결과가 많이 인용되어야 많이 전파될수 있고 많이 기여될수 있다.
그래서 논문투고는 이왕이면 좋은 저널에서부터 시작한다.
연구자체에 비한다면 논문투고는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일단 해당저널에 양식에 맞추는 시간적인 정신적인 비용이 들지만 대부분의 저널은 투고에서의 금전적인 비용은 들지 않는다.
거절 당하더라도 논문 그 자체는 오롯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다른 저널에 다시 투고할수 있다.
다만,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적인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리고 때로는 시기이 중요한 주제의 연구도 있기 때문에 저널 선택에 그래도 어느정도 신중은 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시간 아끼려고 동시에 여러 저널에 논문을 투고하면 큰일 난다.;;;)
9. 심사통과
연구자는 심사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좌절과 희열을 느낀다.
좌절은 물론 논문이 저널에서 거부당했을때의 감정이고 희열은 물론 통과했을때의 감정이다.
저널마다 다르지만 제출 논문에 대한 저널의 심사는 대체로 4단계이다.
첫번째 단계는 저널 편집위원회에서의 초기심사이다.
이 심사는 논문연구의 주제나 결과에 대한 전반적인 가치를 판단하는 단계이다.
좋은 저널일수록 가치판단 수준에 대한 기준은 엄격하다.
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전문가 집단의 검토조차 받지 못하고 거부 통보가 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기간이 일주일 내외로 그렇게 길지 않다는 것이다.
초기심사를 통과하면 편집위원회는 해당 논문을 3명 내외의 전문가에게 검토를 의뢰한다.
만약 의뢰받은 전문가가 검토를 거절하면 편집위원회는 논문 검토 중지하고 거부통보하다.
그래도 그나마 검토단계까지라도 간다면 최소한의 성취는 한 셈이다.
일단 자기 연구 결과물을 전문가 집단에서 시간을 들여 주의를 두었으며,
검토가 통과하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거부를 하더라도 검토 결과물을 주기 때문에
그 보석과도 같은 검토 결과물을 바탕으로 논문 내용을 보강해서 논문의 질을 향상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검토 결과물을 보는 것은 너무나 괴롭다. 일단 거부 통보 자체가 아프고, 비판 내용이기 때문에 또 한번 아픈데, 그런 상태에서 검토 내용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무척이나 피곤하다..)
이 검토단계는 논문 심사단계중에서 시간도 가장 많이 걸리는 가장 핵심적인 단계라 할수 있다.
여기서 통과하면 그 논문은 논문개재로 연결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진다.
정말 기쁘게도 검토에서 통과하게 되면 개정작업에 들어간다.
즉, 검토 단계에서 전문가들이 지적한 크고 작은 수정사항을 논문에 반영하는 단계이다.
개정과정은 최대한 성의있게만 대응하면 대체로 통과될 것이고 논문은 저널개재에 최종승인이 된다.
저널마다 다르겠지만 최초 논문투고에서 최종승인까지 수개월 내지 반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물론 한번 투고에 승인까지 갔을때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별로 없고, 논문 투고에서 최종승인까지에는
수많은 거부통보를 받으면서 다시 (좀더 낮은) 다른 저널에 투고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1년이상 걸리기도 한다.
10. 논문 개재
그렇게 해서 드디어 논문 한편이 저널에 개재가 된다.
연구자에게는 실적물 하나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의 이러한 노력이나 인내도 충분히 어렵지만
정말 어려운 것은 어쩌면 결국에도 논문개재에 실패해서 지금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이나 비용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과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을때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그러고 있었나 하는 공허함을 감내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