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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가 빅토르안이 되어 빙판위에 돌아왔다. 대한민국에서 퇴물급 취급받던 그는 이제 러시아인이 되어 올림픽에 출전했고, 동메달에 이어1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러시아 국기를 흔들고 시상대에서는 러시아 국가를 불렀으며, 그 모습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뭔가 기이해 보일 수도 있는 이 현상의 키워드는 ‘파벌’.
물론 한치의 반론 없이 모두가 그를 응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진정으로 파벌의 피해자인지, 혹시 수혜자는 아닌지, 국가대표 탈락의 진실이 오롯이 파벌 때문이었는지를 파헤치는 글과 기사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토르안을 향한 환호와 빙상연맹에 대한 질책은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왜 그럴까? 갑자기 대한민국 국민들이 진실을 외면한 매국노 집단이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다. 이 끓어오르는 감동과 분노의 근원지는 실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 있기 때문이다.
아사다 마오의 호화 연습환경과 김연아의 열악한 연습환경을 비교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폭력에 가까운 불합리한 처우에 시달렸던 박태환의 지난 현실을 조명한다. 권력의 개인을 향한 횡포. 그동안 김연경과 박태환에겐 ‘차라리 귀화하여 선수생활 하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이러한 비판적 시선은 대스타들 개인에서 끝나지 않는다. 안현수에게 양보를 종용했던 사건의 배경, 군면제와 뇌물이라는 전형적인 사회 비리가 부각되었고, 선수 폭행문제로 물러났던 코치가 다시 국가대표 코치를 하고 있는 기득권의 야비한 습성이 들춰지고, 여선수를 성추행했던 사건을 펼쳐보면 뿌리 뽑히기는커녕 여전히 만연한 여성억압의 현실이 드러난다. 온갖 폭압에 무릎 꿇고 기어야 기득권으로부터 떡고물이라도 얻을 수 있는 현사회의 더러운 면을 집약해 놓은 꼴이다.
선수들 훈련방식의 문제점도 부각 되고 있다. 안현수가 퇴물급 취급을 받게 되었을 때의 나이, 진선유가 실질적으로 빙상에서 물러났을 때의 나이를 비롯해 우수한 인재들이 20대 중반에 은퇴를 맞이하게 된다. 개인의 특질을 고려하지 않은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인한 탓이라고. 순발력 좋고 혈기 넘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는 어떻게든 버티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체력이 가능하지만, 나이와 함께 크고 작은 부상을 겪은 이후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이는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전반적인 교육문화와 맥락을 같이한다. 주어진 훈련방식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스포츠 훈련, 이미 유치원생 때 영어를 구사하며 극악의 교육체계와 경쟁에서 승리한 자만이 귀족 계층에 올라설 수 있는 사회. 안현수와 빙상파벌 부조리의 방점은 여기에 있다. 누가 피해자고 누가 수혜자인지 밝히는 것은 무의미하다. 인맥, 학연, 학벌주의, 파벌. 음절만 다른 동의어들. 과도한 경쟁과 개성을 고려하지 않는 편향적 사회가치들. 이러한 체제 속에서 태어나 성장하는 이들은 누구나 수혜자이며 동시에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삶을 사는 동안 소리 내어 지르지 못했던 절규가 빅토르안을 통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이 현상은 단순히 빅토르안을 감동실화의 주인공으로 만들고자 하는 낭만주의적 감성이 아니다. 안현수와 관련한 수많은 얘기들 중엔 과장도 있을 것이고 다소 오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현수현상이 기이할 정도로 커지는 이유는 우리 사회 안에 그 부조리한 진실이 산재하기 때문이고, 그것이 안현수를 출구로 뿜어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부정부패와 불합리한 폭압이 하나의 질서로 작용하는 것은 기득권이 그와 일체형이기 때문이다. 그 기득권의 정치적 형색은 보수우익으로 엮이고, 그곳의 수장은 현재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각하께서 문체부를 통해 대한빙상경기연맹의 부조리를 전면 감사하라고 명했다 한다. 빙상연맹은 “왜 나만 갖고 그래!!”하며 투덜대고 있을까? 우리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치적 show가 어떻게 시작하여 어떤 식으로 흘러 끝나는지 수 없이 체험했기 때문이다.
안현수현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동메달에 대한 인터뷰에서 빅토르안은 얘기한다. “동메달 따도 다들 좋아하던데요?” 하지만 이제 러시아인만 그렇지는 않다. 심석희선수는 은메달을 따고 울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유행어를 창조시킨 사회가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사회는 그러한 모양새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국가대표를 응원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달라졌다. 10대의 나이에 세계 2위를 하고도 ‘죄송하다’며 눈물을 보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분노했고, 메달권에 진입 못한 선수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며, 이규혁선수에 대한 찬사를 쏟아냈고, “괜찮아요 언니”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컬링은 시청자 인기 종목으로 떠올랐다. 메달 색깔과 순위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 더 이상 애국심으로 개인의 가치를 뭉개고 국위선양을 위해 1등만을 종용하는 사회분위기에 복속되기를 거부한다. 그렇게 케케묵은 쟁점인 네셔널리즘도 붕괴한다.
빅토르안이 시상대에서 러시아 국가를 부르며 기뻐하는 모습에 대한민국 국민이 함께 기뻐하는 것은 국가소속과 관계없이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한 청년이 국적을 바꿈으로서 다시 개인의 꿈을 꾸고 이루며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 그가 선택한 국가는 푸틴이 대통령으로 있는 러시아가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특질을 인정해주고 꿈을 펼칠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이 갖춰진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속한 국가에 연연하지 않고 그의 기쁨에 함께 환호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일종의 대리만족일지도 모르고, 지독하게도 풀리지 않는 사회변혁에 대한 갈망을 그를 통해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1등만이 가치 있고 1퍼센트만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건 열심히 하면 존중받고 행복할 수 있는 사회. 안현수는 세계 1인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했고, 빅토르안은 메달 색깔과 상관없이 행복하다 했다. 이렇게 철지난 쟁점들이 올림픽을 통해 다시금 불거진 게 안현수현상의 본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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