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장모님한테 전화 왔더라.”
그때 남편은 때 지난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나는 칼을 도마 위에 내려놓고 돌아섰다. 요란법석을 떨며 떠들어대고 있는 브라운관 속의 연예인들과 그 모습을 보며 킬킬 웃고 있는 남편의 옆얼굴이 보였다. 주말이라고 세수도 건너뛰고, 속옷만 입고 앉아선 내가 “식사해요”라고 부르길 기다리고 있다. 숨기지 않은, 아니 숨길 수 없는 뱃살과 까슬하게 돋아난 수염, 새집이 들어앉은 뒷머리. 아저씨가 된 청년과 그런 남편을 복잡하게 쳐다보는 아줌마. 우리 부부의 주말 아침 풍경이었다.
“누가 전화했다고?”
“장모님 말야. 외국에 나가 계신다 하지 않았어? 여쭤보니까 한국 오신지 좀 된 것 같더라고. 뭐야. 당신, 모르고 있었어?”
너무하네, 자기 엄마인데, 하는 뒷말이 이어졌다. 나는 치미는 현기증에 비틀거리며 식탁 의자에 주저앉았다.
“모르긴…… 당신한테 말한다는 걸 깜빡 하고 있었어.” “아무튼 주중에 한번 만나자고 하시더라.”
“……그래?”
나는 알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그램에 정신 팔린 남편은 물론 그것을 보지 못했다. 하얗게 질린 내 얼굴 역시 안중에도 없었다.
“나 배고파.”
애처럼 징징거리는 남편을 위해 다시 칼을 집어 들었다. 잘못 놀린 칼에 뭉그러져버린 두부를 냄비에 넣고 뚜껑을 덮었다. 부글거리는 뚜껑은 금세라도 뜨거운 국물을 토해내며 끓어 넘칠 것 같았다. 밥통 여는 소리를 듣고 남편이 식탁으로 와서 앉았다. 식사 하는 내내 그의 시선은 텔레비전에 꽂혀 있었다.
나는 밥을 떠 넣으며 벽에 걸린 액자를 바라봤다. 액자엔 새색시와 새신랑, 양가 부모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걸려 있었다. 여자는 내 옆에 서서 활짝 웃고 있었다. 일요일. 그 병원이 일요일 진료를 했던가. 아니, 진료를 한 대도 주말까지 출근할 리는 없겠지. 당장 쫓아 간다한들 여자를 만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초조하게 밥알을 씹어 넘겼다.
*
남편의 아이를 가졌을 때였다. 아직 남편이 아니고 연인이던 시절, 나는 그의 아이를 한번 품었고, 한번 잃었다. 남편한테는 알릴 수 없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다. 이미 뱃속에서 움직임을 멈추었던 아이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사산된 아이는 5개월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사고인가 보우.”
여자는 대걸레를 밀고 돌아다니다가 내 병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내 다리의 붕대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누가 뺑소니를 당해서 왔다더니 그게 새댁인가 보구만.”
그녀는 나를 측은한 눈으로 보며 가까이 다가왔다.
“이 병원 청소한지 10년이 다 돼 가는데도, 새댁 같은 환자만 보면 내 마음이 다 아파. 일부러 죽이러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새댁 같은 경우는……. 그래, 몸은 좀 어때요?”
오지랖 넓은 사람이 그러하듯, 여자도 쉼없이 떠들어대며 사생활을 캐물었다. 여자는 몇 마디 대답만으로도 내 상황을 읽어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쯔쯧. 결혼식은 언제야?”
“제가 피곤해서…….”
“아이구. 내가 너무 캐물었나?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안쓰럽기도 하고……내 딸 같아서 그래요.”
여자는 겸연쩍은 듯 말끝을 흐리며 돌아섰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불러 세웠다.
“아주머니,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3년이 흐른 지금, 나는 다시 경기도의 모 산부인과를 찾았다. 여자는 아직도 그곳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었다. 대걸레를 들고 복도를 누비는 뒷모습이 3년 전과 똑같았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웃고 있는 표정까지.
내 결혼식 날 여자는 곱게 화장한 얼굴로 꼭, 저렇게 활짝 웃었다. 한복자락을 휘날리며 택시에 올라타는 모습이 마지막이었는데.
걸레를 힘껏 미는 팔뚝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다. 나는 그 앞을 막아섰다.
“이러시면 곤란하죠.”
“어?”
“저희 신랑 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두번 다시 나타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요. 그때 드린 돈, 정말 수고비라고만 생각하셨던 거예요?”
내가 내민 봉투 속 돈은, 심부름센터에서 지불하는 금액의 배나 되는 액수였다. 단 하루 신부 어머니인 척 연기한 수고비로 그 돈을 줬을까.
입막음용이었다. 다시는 내 인생에 얼쩡거리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기도 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주머니잖아요. 저희 남편한테 전화해서 장모님 행세한 거. 시치미 떼지 마세요.”
“아니, 새댁. 갑자기 나타나선 무슨 헛소리야? 나는 새댁이 부탁한 대로 해줬을 뿐이잖아. 그러게, 엄마인 척 해달라는 게 영 찝찝하더라니. 불쌍해서 도와줬더니만 어디서 엄한 사람을 잡고 있어?”
여자는 가시를 숨기지 않았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가까운 병실에서 구경꾼이 쏟아져 나왔다.
“아주머니가 아니면, 그럼 누구란 거예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천애고아라고 결혼식장에 같이 서 줄 사람 없다고 눈물바람 하더니만, 것도 거짓말 아니야?”
“뭐라구요?”
“어려서 죽었다던 애미도 사실은 살아있던 거 아니냐구. 괘씸한 딸년 혼쭐 내주려고 나타났는가보지!”
주중에 한번 만나자고 하시던데, 라던 남편의 목소리가 머리를 스쳤다. 그래. 이 여자는 남편에게 직접 만나자고 할 정도로 간이 크지 않다. 그렇담……전화를 건 사람은.
여자는 고래고래 소리쳤다. 억울한 자신을 도와달라는 듯이. 구경꾼이 복도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병원밖으로 나와서도 여자의 목소리가 귓전에 메아리쳤다.
“죽었다던 네 애미가 나타났는가보지!”
*
기다린 지 10분 만에 남편이 나타났다. 얼굴이나 체형보다도 낯익은 셔츠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직접 고르고, 입히고, 벗어 놓은 것을 세탁해 곱게 다린 그 셔츠였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별 탈 없이 순탄했다. 순종적인 그의 성격 덕분이었다. 결혼 전부터 내가 요구한 것은 단 한가지, 말 잘 듣는 남편이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남편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는 싫은 기색 없이 내가 입혀주는 옷을 입고, 차려주는 밥을 먹었으며, 예약해준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맡겼다. 당신은 너무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해, 라고 투정 부릴 때도 가끔 있지만.
“장모님하고는 통화했어?”
“만나고 왔어, 오늘.”
“그래? 난 또…….”
“왜?”
“아까 전화 하셨길래 오늘 저녁에라도 뵙자고 했거든. 뭐 좋아하셔?”
“응?”
“장모님 말야. 결혼식 때 뵙고 여태까지 한번도 못 뵀는데 맛있는 식사라도 사드려야지.”
“나중에 얘기해. 배고프다.”
“외국에 계셨으니까 한식으로 할까? 어느 나라에 계셨다고 했지?”
“나 배고프다니까.”
그는 조련된 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심기 불편한 내 표정을 보고는 얌전히 메뉴판으로 시선을 내렸다.
“여보. 화장실 갔다 와야지.”
“어?”
“손. 씻어야지.”
“어, 응. 깜빡했다. 금방 씻고 올게.”
남편은 메뉴판을 내려놓고 허둥지둥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맞은편 자리로 손을 뻗어서 남편의 외투를 가져와 핸드폰을 꺼냈다. 수신목록을 열자마자 ‘장모님’이라고 저장되어 있는 이름이 보였다. 곁눈질로 화장실 있는 쪽을 확인했다. 남편은 평소 내가 가르친 대로 손가락 하나 하나, 손톱 틈새까지 꼼꼼하게 씻고 있을 터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신호음이 흘렀다.
“누구야, 당신.”
엄마일 리가 없다.
“누구냐고, 너.”
그날,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채로 타들어가던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아무리 엄마라고해도, 아무리 그 여자라고 해도 그 불 속에 살았을 리가 없어.
상대방은 전화를 받고도 한참 말이 없었다. 내 감정이 잦아들길 기다린 것처럼.
‘잘 지냈니? 우리 딸…….’
“……!!!!”
기억이 끊겼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놀란 종업원의 얼굴과 달려오는 남편이 보였다. 핸드폰은 산산조각 난 채로 나뒹굴고 있었다.
*
내 첫 가출은 열셋,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그 즈음이었다. 열셋, 열넷. 막 사춘기가 시작되고 머리가 굵어진다던 그 나이. 거리를 헤매던 나는 머리채를 잡혀 집으로 끌려왔다. 인구수가 적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우리 딸 못 보았냐고 수소문 하면 언젠가 잡히고 말 가출이었다.
첫 가출은 하루만에 실패했다. 엄마는 사흘 동안 나를 방안에 가뒀다. 가출의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하고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밤늦은 외출이 보통의 외출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네 아빠는 말을 참 잘 들었는데. 너는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어.”
내가 누굴 닮았는지는 엄마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누가 봐도 닮은 우리였다. 닮다 못해 빼다 박은 얼굴, 얼굴의 점 위치까지 비슷했다. 직접적으로 엄마가 그 사실을 입에 담은 적은 없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넌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라고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엔 묘한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엄마는 특히 잠든 내 얼굴을 쓰다듬는 걸 좋아했다. 자다 깨어보면 입 꼬리를 끌어 올리고 있는 엄마 얼굴이 보였다. 어렸을 땐 그저 엄마가 나를 좋아해서, 사랑해서 쓰다듬어 주는 걸로만 알았다. 나를 사랑해서 웃는 줄만 알았다. 허옇게 분칠 한 얼굴로, 새빨갛게 칠한 입술로 헤죽헤죽 웃는 것이 내가 예뻐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총 다섯 번의 가출을 시도했다. 옆 마을에서 다른 도시로, 가출 범위가 점점 넓어졌지만 모두 실패에 그쳤다. 다섯 번의 실패 끝에 깨달았다. 어디에도 숨을 수 없다는 걸. 엄마가 살아 있는 한, 그 여자한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당신, 정말 병원에 안가도 되겠어? 괜찮아?”
남편이 물수건을 만들어 와선 내 머리맡에 앉았다. 젖은 손이, 그 서늘한 감촉이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날도 엄마는 자는 내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엄마 빨리 와, 했다. 엄마가 밤에 화장을 했다는 건 외출을 한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그날도 그럴 거라고 여겼다.
잠시 후 엄마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날 같으면 다시 잠들었을 테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잠이 달아나버렸다. 나는 호기심에 엄마를 따라 집밖으로 나갔다. 조용한 시골동네였기 때문에 해만 기울어도 나다니는 사람이 드물었다. 밖으로 나온 나는 겁이 덜컥 났다. 어두웠다. 내 방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불빛만이 전부였다.
엄마를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밤길을 내달렸다. 그때 뒷산으로 올라가는 누군가가 보였다. 나는 엄마아, 하며 뒤따라 올라갔다. 그리곤 길을 잃어 한참을 헤맸다.
웅크려 앉아 울다가 문득 앞을 보니, 머리를 산발 한 엄마가 서 있었다. 두 눈은 하얗게 뒤집어져 있었고, 입술은 고무줄을 늘려놓은 것처럼 길게 찢어져 있었다. 찢어진 입술 사이로 검은 안개가 쉼 없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바로 등 뒤에서 수풀을 헤집으며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엄마가 짐승처럼 네 발로 뛰어오고 있었다. 하얗게 분칠 한 얼굴이 어둠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곤 그대로 정신을 놓아 버렸고, 비탈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깨어나니 엄마가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를 간호하고 있었다. 방안 가득 향냄새가 떠돌았다. 굴러 떨어지면서 다친 다리가 다 나을 때 까지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몇 달을 다리를 절며 돌아다녔다.
엄마는 그날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일들이 꿈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밤, 엄마는 자는 나를 깨워 앉혔다. 내 턱을 틀어쥐곤 얼굴을 문질렀다. 정신이 들고서야 엄마가 나한테 화장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꺼낸 것은 새빨간, 갓 잡은 동물의 피처럼 새빨간 립스틱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뒷산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도망치려고 해도 엄마는 내 팔을 잡은 손을 풀지 않았다. 나는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엄마가 하는 양을 지켜봐야만 했다. 엄마는 하얗게 까뒤집힌 눈으로 어두운 산을 돌아다니며 중얼 거렸다.
그 다음해에, 동네에 사는 길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를 데리고 다니며 이것저것을 알려주었다. 어떻게 하면 위험한 길을 지나갈 수 있는지, 어디에 가면 먹이를 먹을 수 있는지.
그것을 보고 깨달았다. 엄마의 행동을. 엄마가 왜 나를 자기처럼 화장시키고 산으로 데려가는지를. 엄마는 나한테 보여주고 있었던 거였다. 고양이가 어린 새끼에게 먹이 찾는 법을 알려주었던 것처럼. 나한테도…….
*
카페는 한산했다. 내 자리엔 입도 대지 않은 커피가 식어가고 있었다. 나는 초조함을 느끼며 카페로 들어서는 손님들을 세심히 훑어보았다. 남편의 핸드폰이 고장 나자, 회사로 전화가 걸려왔다. 집전화로도, 내 핸드폰으로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오직 남편을 통해서만 전화를 걸었다. 그게 내 약점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나는 별 수 없이 만나겠노라고 약속했다.
한 무리의 손님들이 빠져나간 직후였다. 한 손님이 들어왔다. 젊은 남자였다. 나는 중년의 여자를 찾고 있었으므로, 곧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약속한 시간이 20분이나 지났다. 어쩌면 나타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저 나를 골려주려는 속셈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밖에 나와 있는 사이에 남편의 회사로 찾아가 그를 만난다던지…….
“아니……살아있을 리가 없어.”
그래. 살아 있을 리 없다.
내 눈으로 직접 불타는 모습을 봤으니까.
불길은 혀를 날름거리며 집을 송두리째 집어 삼켰다. 전소되기까지 채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 안에는 엄마도 있었다. 제 아무리 엄마라고 해도 불길만은 뚫고 나올 수 없는지, 기다란 팔을 허우적거렸다. 나는 얼어붙은 채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날,
집이 불타던 날, 엄마는 배를 어루만지며 웃었다. 내 머리맡에 앉아서, 새빨갛게 칠한 입술을 길게 찢으며.
“네 동생이 태어날 거야.”
나는 가위에 눌린 것처럼 꼼짝 못하고 누워서 웃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전에도 엄마는 몇 번인가 그렇게 웃으며 배를 어루만졌었다. 달이 차고 배가 불러서 태어난 것은 새카만 덩어리였다. 지옥에서 끌어올린 찌꺼기처럼 검고, 썩은 내가 풍겼다. 뱃속에 잉태된 것이 무엇이든, 사람의 씨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죽은 채로 태어나리란 것 역시.
나이를 먹어갈수록 엄마의 이상한 행동이 밤늦은 외출에 그치지 않는 다는 걸 눈치 채고 있었다. 엄마의 입을 통해 드나들었던 검은 그림자는 직접 엄마를 찾아오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굳게 닫힌 방문 안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엄마가 무서웠다. 끔찍했다.
외면하고 싶은 진실은, 나 역시 엄마의 배를 통해 만들어진 생명이며, 젊은 시절의 엄마 모습과 무섭도록 닮았단 사실이었다. 나도 저렇게 되고 말리라고 직감했다. 엄마가 밤마다 나를 끌고 다니며 가르친 것들이 내 안에 각인되어 있을까봐.
불은 모든 것을 집어 삼켰다. 내가 그곳에 존재했다는 흔적마저도. 그렇게 내 여섯 번째 가출은 성공 했다.
나는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만남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제 와서 무엇을 캐물을 것이며, 무엇을 추궁할 것이고, 어떻게 용서를 구할 것인가. 도망치듯 달아났던 어린시절의 기억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건 사람이 정말 내 엄마라면.
“죄송합니다.”
급하게 나가는 바람에 들어오던 사람과 부딪쳤다. 젊은 여자였다. 여자는 닫히는 문 틈새로 나를 보며 웃었다. 새빨갛게 칠해진 입술을 끌어 올리고.
저 미소를 알고 있다.
어린시절, 서늘한 촉감에 눈을 떠보면 바로 저 입술이 보였다. 순식간에 문이 닫혔다. 여자의 모습은 반투명한 유리문 안으로 사라졌다. 보이는 건 희뿌연 윤곽뿐이었다. 저 여자가 엄마 일리가 없어. 여자는 나보다도 젊어 보였다. 그럼에도 본능은 나를 그 자리에 옭아맸다.
둘어가서 얼굴을 확인하라고. 누군지 보라고.
망설임 끝에, 돌아서는 쪽을 선택했다. 화염에 휩싸인 엄마를 모른 척 하고 도망쳤던 그날처럼.
*
지금도 알지 못한다. 엄마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한동안 엄마가 무당은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무당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무당은 적어도 사람이니까. 본질은 사람일 테니까. 살아있는 지옥문. 귀신이 드나드는 통로. 오히려 그런 말이 더 어울렸다, 적어도 사람이란 말보단.
그일이 있고 남편을 설득해 다른 도시로 이사했다. 연락처도 바꾸고 남편의 직장도 옮겼다. 소용이있었던건지, 달갑지 않은 연락은 더이상 없었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우리 부부는 어느새 사십대가 되어 있었으며 우리 사이엔 나를 빼닮은 딸아이도 태어났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딸아이는 날이 갈수록 나를 닮고 있다. 딸은 아빠를 닮는단 말이 있지만 우리집은 예외였다.
무섭도록 나를 닮아가는 딸을 보며, 등진 내 과거가 떠오를 때도 종종 있다. 섬뜩함이 목덜미를 스치고 가기도 한다.
나를 빼다 박은 딸아이와 함께 잠들 수 있는 이 생활에 감사할 뿐이다.
잠자리를 펴고도 도통 잠들 생각 않고 장난치는 아이를 끌어다 눕혔다.
“네 아빠는 말을 참 잘 들었는데. 너는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어.”
딸아이는 구김살없이 웃으며 “엄마 닮았지, 누굴 닮긴”하고 응수했다. 함께 잠자리에 든지 한시간이 지나서야 아이가 잠들었다. 조심스레 빠져나와 안방으로 가서 남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요즘 각방 쓰는 것 같아.”
남편은 마흔이 넘도록 어린애처럼 징징거리길 좋아했다. 그와 결혼한 후로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바꾸었지만, 이것만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밤마다 어딜 나가? 자다 깨보면 옆자리가 비어있고. 너무 딸만 좋아하는거 아니야?”
“내가 언제?”
“몽유병이라도 있나, 왜 기억을 못해. 어제도.”
“쓸데없는 소리 말고 주무세요.”
얼마나 잤을까.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안방이 아닌 딸아이 방이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내가 왜 여기와있지.
진한 화장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침대 옆을 보았다. 거울에 침대 위 상황이 비춰지고 있었다.
울고 있는 딸아이와, 아이의 턱을 틀어쥐고 립스틱을 바르고 있는 내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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