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저는 궁극적으로는 모병제 지지자임을 밝힙니다. 한때는 모병제를 도입하는것만이 우리나라가 해결해야할 최우선 과제라 생각했구요.
일단 모병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오고싶은 사람이 오고, 하고싶은 사람이 하고싶은 일을 하며, 합당한 대가를 받습니다. 군대보다 다른 곳에서 더 능력을 펼치기를 원하는 사람은 군대에 오지 않으면 됩니다. 개인의 자유와 그에 대한 대가가 정확하게 돌아가는 것이죠. 국민들은 국방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세금을 지불합니다. 또한 군인들은 본인의 실책에 대해 영창 같은 비윤리적 방법이 아닌 감봉 등과 같은 합리적 징계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한국의군대는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현실이며 이러한 환경에서는 모병제는 시기상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정확히는 아무리 돈을 줘도 오지 않을 것이며 수뇌부에서 이를 받아들이지도 않을 겁니다.
징병제라고 하여 비용이 적게 드는 것은 아닙니다. '불완전한', '불합리한' 형태의 징병제는 비용이 적게 들죠. 징병제가 합리적으로 돌아가려면 합당한 노동의 대가(적어도 최저시급*24시간 이상)+징병된 인원의 사회에서의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여성징병이냐 처우개선이냐는 얘기도 많이 나오는데, 처우개선이라는 것도 그냥 월급 10만원 올려주고 부조리없애는 선이 아니라 이정도 선은 되어야 징병이라는 제도 안에 내재된 불합리성이 사라진다고 볼 수 있을것입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어보면 이런 말이 있죠. "자본주의의 가장 발전된 형태가 공산주의이다. 따라서 완벽한 공산주의 사회를 이룩하려면 먼저 완벽한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속에 내재된 불합리와 모순이 극에 달할 때 비로소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저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지만 이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관계는 징병과 모병의 관계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징병의 불합리성과 모순이 극에 달했을 때 그것을 해소하는 방안으로서 모병제가 대두되어야 비로소 의미있는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다시 퇴보하지 않을 모병제도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불합리성이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임금, 노역, 훈련, 비리, 부조리, 성희롱 등 매우 여러가지가 될 수 있겠죠. 그리고 이것이 하나씩 해결되어 가면 어느순간 이러한 의문이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이 정도 임금을 주고, 이정도로 깨끗한 군대가 되었으면 모병제로 운용하는것도 충분히 가능할텐데 왜 우리는 징병을 유지하고 있지?" "어차피 세금으로 임금주는데 그냥 가고싶은 사람이 돈받고 가면 되는것 아닌가?" 이러한 의문이죠. 이런 단계에 이르르면 가장 발전된 형태의 징병제라고 볼 수 있고 모병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군 내부의 불합리와 모순이 좀 더 누적되어야합니다. 이미 실제로는 더 썩을 수 없을 만큼 충분히 누적되어 있지만 그것이 징병제라는 제도를 깨트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죠. 가장 큰 문제는 군필들이 이미 전역했기에 여기에 큰 관심이 없는 것과,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징집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군대의 불합리는 남의 일일 뿐이며 군 내 처우개선은 자신의 세금을 깎아먹는 매우 불쾌한 일일 뿐입니다. 이는 군 가산점 폐지나 스타벅스 불매운동에서도 잘 드러나죠. 물론 여성들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군대는 '내 일이 아니니까요'.
저는 그래서 군대와 징병이라는 대한민국의 거대한 모순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제도를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을 그 모순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노동자라는 큰 틀 안에서 투쟁하듯, 남성과 여성도 징병 대상자 혹은 군필이라는 같은 틀 안에서 투쟁하도록 해야 이러한 모순을 누적시키고, 뒤집는데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현재는 여성은 물론 남성도 군대의 개선에 대해서 소신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이미 자신에게는 지나간 일이기도 하고, 자신이 목소리를 냄으로서 손해를 보는 여성들의 심기를 그르치게 되기 때문이죠. 정치판에서도 군 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때문일 것입니다. 현재 군게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도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일이 아닌데 개선을 강요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반발이 주 원인일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의 나머지 절반이, 그 자신이 군대 문제에 연관되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면 분명히 군대와 사회는 바뀔 수 있으리라 봅니다. 현재 군 문제의 부조리함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 불합리와 모순을 더 누적시켜 폭발시킬 원동력을 가지는 방법밖에 없기에 저는 그 방법으로서 여성징병을 찬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여성징병이 필요한 이유는 출산율 감소에 의한 인원부족, 성평등적인 군제도의 정착, 성별갈등의 최소화 등 다른 이유를 많이 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까지 이 부조리함에 끌어들일 수 없다', '처우개선이 먼저다'라 말하는 이들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부조리함을 느끼는 일원이 되지 않는다면, 함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처우개선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국민 절반이 반대하는 개선은 실현 가능성이 없습니다. 할 수 있더라도 매우 미미한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처우개선을 원한다면, 궁극적으로 모병을 원한다면 여성징병은 그 실현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군사 전문가도, 자본론을 깊게 공부하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제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 글이 여성징병과 현 군 제도의 개선을 위한 하나의 의견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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