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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68115
    작성자 : 왼발
    추천 : 20
    조회수 : 5594
    IP : 183.107.***.97
    댓글 : 9개
    등록시간 : 2014/05/22 16:48:46
    http://todayhumor.com/?panic_68115 모바일
    [픽션] 옆자리 여자
    여름 다가오니 아는 형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무서운 이야기 보다는 좀 찝찝할 것 같지만...
    그 형이 사회 초년생일때 이야긴데요.

    취업 대란 끝나고 그 형이 일산에 있는 작은 디자인 회사에 취업을 했더랍니다.
    집안 사정 때문에 돈 몇푼 들고 홀로서기를 해야 해서 거처도 회사 근처 고시원에
    잡았더래요. 한달에 이십 정도로 아침도 때우기 좋고 출근까지 10분 밖에 안걸리니
    좋았겠다 싶었죠. 디자인 회사라고 해도 큰 업체들 카탈로그나 소책자 디자인을 하곤 했는데
    막내라 디자인보다는 심부름을 가거나 실장님 따라서 외주업체 방문을 주로 했다 하더라구요

    충무로에 있는 인쇄소에 샘플 받으러 심부름을 종종 갔었는데 항상 지하철을 이용했답니다.
    그렇게 한 몇 달 회사에서 거의 숙식 해결하며 야근에 시달리다가 그날도 샘플을 받으러 지하철을
    타고 충무로로 가는 길이었대요.

    지하철에서 한창 모바일 게임을 하는데 이상하게 옆에 앉은 여자가 낯이 익더래요.
    흰색 작은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졸린건지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은 구분이 안되는데도
    아이보리색 원피스라던지 분위기가 익숙해서 좀 바라보다 말고 바라보다 말고 하다가
    충무로에 도착해서 그냥 내렸대요. 그리고 일 하느라 바빠서 잊어버리고
    그리고 몇 시간 후에 샘플 가지고 일산 가려고 지하철을 탔는데

    올때야 종점에서 타다보니 앉아서 올 수 있었지만 갈 때는 퇴근시간인데다 
    번잡한 충무로라 사람 사이에 끼어서 왔대요. 숨은 막히지 날은 덥지 
    품에 안은 카탈로그 샘플을 놓칠새라 꼭 쥐고 사람에 떠밀려
    서있는데 자기 옆에 그 여자가 서있더래요. 흰 백을 양손에 꼭 쥐고 
    고개를 숙인 오전에 봤던 모습 그대로.

    신기한 우연이 다 있구나 싶어서 형이 기분이 좋았대요.
    며칠 후 지하철에서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요.

    우연이 두번 세번 되니까 이상하잖아요. 형도 처음 봤을 때는 기억이 안나다가
    내릴 곳이 가까워져서야 기억해내고 기분이 좀 안좋아졌대요.
    일하는 동안에도 생각나고... 그러고 다시 일산 올라가려고 지하철을 탔는데
    자기 옆에 또 그 여자가 서 있더래요.

    그날따라 지하철이 완전 만원이라 사람 팔 끼리 부딪히고 눌리고 장난 아니었대요
    형도 이리저리 밀쳐지는 와중에 그 여자 팔에 자기 팔이 딱 닿더래요. 그런데 
    그 여름에 무슨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고 차가운게 꼭 사람 피부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라
    소름이 좍 돋았다더라구요. 그 더운날 덥지도 않은지 목덜미를 덮은 검은 머리가
    무슨 수초처럼 흐느적거리는데 사람하고 부딪히는걸 여상스러워하던 형도 
    벌레 붙은 것마냥 찝찝하더래요.

    종점 가까워져 오니 자리가 하나 둘 씩 비어서 형도 자리에 앉았대요.
    그러니까 그 여자도 형을 따라 옆자리에 앉더래요. 것도 바짝 붙어서
    기분이 나빠서 자리에서 일어나니까 그 여자도 형을 따라 일어나더니 옆에 붙더래요.

    그리고 뭐라고 할 수가 없었던게 직접 피해를 준 것도 아니니까. 좀 이상한 여자겠거니 하고 
    종점에서 내렸대요. 여자는 안따라오구요.

    이삼일 찜찜해 하다가 뭐 밟은 셈 치고 잊어버렸는데, 며칠 후에 또 외부에 나갈 일이 생겼다더군요.
    실장님이 너 충무로 갔다와라 이야기 듣자마자 그 여자 생각이 떠오르더래요. 그렇다고 일인데
    안갈 수 있나요. 형은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대요.

    버스는 처음 타보는 거라 좀 헤메다가 충무로 까지 직통으로 가는 버스를 발견해서 탔는데
    그 형 타자마자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오더랍니다. 

    그 여자가 버스 안에 서 있었거든요.

    이상하게 그 여자는 전보다 더 바싹 형에게 붙었대요. 누가보면 일행이라고 착각할만큼
    이쯤 되니 도저히 이게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형은 돌아오는 길에도 그 여자에게 시달리며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학생시절 모은 적금을 깨서라도 일단 자동차를 사자구요.

    결론 부터 말하자면 그 형 자동차 못샀습니다. 축축하고 더운 그 이상한 여자 숨결까지 버텨가며
    중고자동차 시장에 갔던 버스를 타고 갔던 형은 여자가 자기 뒤를 따라 내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 했겠죠.

    안타깝게도 학교 운동자보다 큰 중고 자동차 판매장에 가자마자 내가 사게 될지도 모를 차가 이거겠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하더라구요. 

    굳게 잠겨 있어야 할 그 차 내부 보조석엔 이미 아이보리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검은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늘어트리고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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