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잔인한 풍습 - 전족
전족, 환관, 과거는 중국 봉건 사회의 삼대 유산이다.
전족이란 어린 여자아이의 발을 억지로 감싸 동여매어 발 성장을 억제시키고 오그라뜨려
크기가 10센티도 안되는 작은 발을 만들었던 중국 여성들에게 있어 가장 잔인한
최악의 풍습중 하나이다.
전족은 다른 둘과 달리 중국 이외의 다릇 곳에는 없었다. 여성들을 병신으로 만드는 이런
악습은 여성들을 노리개로 삼는 봉건 사회의 남성우월주의의 산물이다. 어런 악습이 2천여
년을 흘러오며 지속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여성들에게 고통을 주었던가!
왜 전적이라는 괴상한 풍습이 나오게 되었는가?
여성에게서 남성의 정욕을 가장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곳은 밖에 드러난 부위가 아니라 감추어진 부위이다. 감추어진 부위는 남성에게 집착하고 여인들은 보이지 않으려 하고 숨기는 것이다.
과거 중국 여성들이 두 발을 감추려고 한 것은 구 사회의 중국 남자들이 여성의 두 발에 대해 특별한 흥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거 중국의 미녀에는 두가지 형태가 있었다. 한 형태는 한나라 성제가 사랑햇던 조비연과 같은 '날씬한 형'이고 다른 한 형태는 당나라 현종의 로맨스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양귀비와 같은 '풍만한 형'이다. 이두 여인을 놓고 말하면 서로 다른 두 가지 형태의 미녀들이지만 그녀들이 갖고 있는 하나의 공통된 특징이라면 그녀들 모두 한 쌍의 고운 작은 발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듣는 말에 의하면 전족은 조비연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런 작은 발을 편애하는 데로부터 사람들은 인공적으로 이런 발을 만들려 했다. 이를 테면 가슴이 작은 현대 여성들이 가슴을 수술하는 것과 똑같은 심리 현상이다. 다른 점이라면 가슴은 큰 다음에 수술을 하면 되지만 전족은 어렷을 때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족은 모르는 사이에 여성들이 보이기 제일 부끄러워하는 부위의 하나가 되었고 남성들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부위가 되었다. 하여 여성이 어떤 남자 앞에서 제 발을 동인 헝겊을 풀어 보인다면 제 몸을 바치겠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전족을 하는 다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둔부를 비롯한 하신이 발달한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설 수도 걸을 수도 없는 형편에서 몸을 지탱하자면 두 발에 몰리던 힘이 자연 둔부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요, 수십 년을 이렇게 지내오면서 신체 단련을 하는 것 마냥 자연적으로 음부가 발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몹시 불합리하게 여겨지겠지만 봉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형적이고 병태적인 심미 관념에서 보면 전족은 하나의 중요한 미로 간주되었다.
남성들은 여자에게 한 쌍의 작은 발이 있어야 여자라 했고, 여자들도 남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전족을 했다.
전족 한 쌍은 눈물 한 독
여자 아이들은 도대체 몇 살부터 전족을 하는가? 전족은 또 어떻게 하는가?
전족은 여자아이의 나이가 서너살이 되면서부터 시작한다. 모두 네 과정을 거치는데 약 삼 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이건 눈물과 고통으로 얽힌 기나긴 시간이다.
고통이 제일 심한 시기는 발가락을 발바닥에 쭈그려 붙이는 두번째와 세번째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엄지발가락 외의 네 발가락을 굽혀 발바닥 밑에 붙이고 힘주어 동인다. 그러면 염증이 생기고 붇고 화농하여 출혈까지 생기며 티눈이 생긴다. 이 때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극통 때문에 몸부림친다. 만약 조심하지 않아 한 군데 다치기라도 하면 아픔이 온몸에 저려난다.
두번째 단계에는 식욕이 현저히 떨어지며 밤에는 잠을 잘 수 없게 된다.
"전족 한 쌍은 눈물이 한 독"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전족을 시작하기 전에 부모들은 딸을 보고 이렇게 타이른다.
"얼마나 큰 고통이 있다 해도 꼭 참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커서 시집을 못간다"
이렇게 백당부 천당부한 다음에야 전족을 시작한다.
여자아이를 의자에 앉혀 놓고 그릇에 물을 떠다 두 발을 먼저 깨끗이 씻어 준다. 그런 다음에 아이의 오른 발을 전족 수술을 하는 사람의 다리 위에 올려놓는다. 더운 물에 발을 씻을 때의 열기가 다 빠지기 전에 엄지발가락 외에 네 발가락을 발바닥까지 굽힌다. 그런 후에 발가락 사이마다 약을 바른다. 약은 피부를 수비게 수축시키고, 화농하거나 염증이 발생하는 걸 방지한다고 한다. 발가락을 발바닥 밑으로 후려 넣은 다음 천으로 동이고 바느질로 기워 맨다. 그리고는 전족에 신기는 양말과 끝이 뾰족한 신을 신긴다. 이것이 전족의 첫번째 단계이다.
발을 꽉 동이고 공기마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열이 난다. 그래서 전족 수술은 시원한 가을에 한다.
두번째 단계는 조이는 과정인데, 반년 이상이 걸린다. 평균 사흘에 한번씩 발을 풀어 소독을 한 다음 다시 동인다. 그럴 뿐 아니라 점차 더 조여서 동인다. 그러니 아픔도 더할 수밖에 없다. 발가락을 발바닥 밑에 굽혀 넣고 동이기 때문에 티눈이 수비게 난다. 티눈이 나면 침으로 빼 낸다.
이 때 온 몸의 무게 중심은 발바닥 밑에 굽혀 넣은 여덟 발가락에 쏠리기 때문에 그 아픔은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여자아이를 놓고 보면 이 때가 가장 무서운 단계이다. 수술하는 사람이 물을 떠가지고 방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무서워 울지 않으면 도망치려고 한다. 하지만 발의 아픔 때문에 뛰지도 못하고 붙잡힌다.
발을 감은 천을 풀면 발등의 피부는 이미 완전히 수축되어 있으며 고름이 흐르지 않으면 피가 흐른다. 수술하는 사람은 아이의 두 발을 약수에 담그고 깨끗하게 씻는다. 여자아이가 버둥질치면 티눈이 난 발가락을 때린다. 그러면 아이는 그 아픔 때문에 참고 견딘다. 수술을 하는 사람이 바늘로 티눈을 뺄 때마다 아이는 아파서 발질을 하고 울고 난리를 치지만 수술하는 사람은 개의치 않고 바늘로 생살을 이리저리 헤집는다.
그날은 걷지도 못하거니와 통증 때문에 자지도 못한다. 이 때면 어머니도 가슴 아파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이의 발을 이불 밖으로 내놓아 시원하게 해 주면서도 말없이 눈물만 흘린다. 자식과 고통을 나누려는 어머니의 심정일 것이다.
이튿날,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는 걸을 수 없게 된다. 하여 벽을 짚고 발 뒤축으로 걷는 연습을 한다.
계속 뒤따르는 것은 발을 더욱 수축시키는 제3단계 '긴축'단계이다. 이때 하는 수술 방법은 발 가운데의 뼈를 발바닥 밑에 오그려 넣는 것이다. 힘주어 오그리기 때문에 발의 모든 뼈들이 오그라든다. 이 단계도 약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제3단계에서는 발의 근육들이 수축되며 발등의 굳어졌던 피부가 벗겨지면서 피가 흐르고 화농하고 썩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발가락까지 썩어 들 때도 있다. 시간이 흘러 죽은 부위가 떨어져 나가면, 작고 고운 발이 나타난다.
마지막 단계는 발을 오그리는 것인데 이 때의 통증은 그리 심하지 않다. 역시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이 때에는 발등을 더욱 동그랗게 올라오게 하며 엄지발가락과 네 발가락을 함께 오목하게 들어간 발바닥 밑에 후려 넣는다. 이렇게 하여 발의 길이가 십 센티미터 정도가 되면 가장 이상적인 발이 된다.
아이는 무려 이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고통의 댓가로 시집갈 수 있는 자격과 미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을 얻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남자의 노예가 될 수 있는 준비를 끝낸 셈이다. 이 외에 영원히 뒤따르는 것은 사흘에 한번씩 발을 동인 천을 풀고 티눈을 빼고 발을 씻고 발톱을 깎고 다시 천으로 동이는 등 귀찮은 일들이다.
중국에서는 세계적 미녀라는 양귀비보다 오히려 서시(西施)를 첫째 가는 미녀로 꼽는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녀는 모나리자, 그리스 신화에 자주 나오는 미의 여신은 비너스,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미녀는 클레오파트라다. 미녀의 기준이나 상징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남성들은 여성에 대해 이러한 외형적 아름다움 말고도 성적(性的) 아름다움 혹은 매력에 큰 관심을 기울여왔다.
고대 중국의 전족(Foot binding)이라는 악습을 보자. 이는 여성을 성적 노리개처럼 취급하는 폐습이다. 여성이 갓 태어날 때부터 비단천으로 발을 감아 조그만 신을 신긴다. 즉, 후천적으로 발의 성장을 중단시켜 기형을 만드는 것이다.
10cm 정도 크기밖에 안되는 전족은 그야말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춤을 출 수 있게 할 정도였다. 양귀비도 신발이 10cm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족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족은 여성을 쾌락의 도구로 사용할 목적에서 시작됐다. 10cm도 안되는 발로 걷다보면 정상인이 걷는 것보다 몇배 이상의 힘이 들고 그러다 보면 허리와 엉덩이 부분이 강철같이 단련되어 용수철같은 탄력성이 길러지므로 여성 성기의 기능이 월등하게 뛰어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좀더 추리력을 동원해 보면 전족은 여성을 아예 규방에 가두어 놓고 외출할 수 없게 하여 바람을 피우지 못하게 하는 남성들의 질투심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전족이라는 것이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방법치고 얼마나 잔인한 방법인가. 현대 성의학적으로 살펴보면 부부간에 성적 쾌락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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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잔인하지 않소? 오직 성적 호기심과 섹스 쾌감에 탐닉한 미개한 중국 남자들을
위해 저런 풍습을 몇천년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나라. 우리나라가 조선시대 남녀차별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역사 조금 배우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조선시대 이전 고려시대
까지는 사회 분위기가 굉장히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해서 여성들의 지위도 오히려
지금보다 더 높았을 정도라고 합니다.) 저런 풍습은 정말 인간같지도 않구려.
대체 2000 년동안이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저 죽음과 같은 고통을 당하며 살아왔
겠습니까? 남자인 저도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고통이군요. 차라리 죽는게
낫지..게다가 아래 식인풍습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들은 평소 노동을 이용당하다가
여차하면 잡아먹히는 가축과 같은 생활을 했었다는 것이지요. 귀한 분 오셨다고
잡혀서 요리로 바쳐지고.. 허허..
저러고서 문명국을 자처했고 지금 또다시 주제에 중화사상을 부르짓으며 주변국들을
감히 깔보려 하다니 헛헛...
억지로 발을 싸매 발이 썩고 온 체중이 그 좁은 발 일부에 몰려 걸을때 고통도 상상
을 초월했다고 하고.. 오직 남자에게 잘보이고 성적 쾌감을 더해주기 위해.. 그것도
자신의 의지도 아니고 억지로 강요되어서 말이죠. 10 CM 짜리 발이 상상이 가십니까?
저런 썩은 근성을 뿌리로 두고 있는 중국이 지금 감히 우리의 고구려를 넘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썩은 뿌리를 잘 알고 한수 아래로 보면서 철저히 방법해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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