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게시글은 Sowhot님의 시게 게시물을 펌하였습니다.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sisa&no=391269 당시 해병대가 어떻게 진압했는지를 공수부대와 견주면서 알아봅시다.
10.16 부마항쟁 당시 계엄군의 모습
1공수여단과 3공수여단의 모습 2
▽ 총기에 착검을 하고 트럭을 타서 부산대와 동아대를 하루 종일 오가며 위협함 ▽ 송기석 씨 증언 "얼굴에 시커멓게 위장 크림을 바른 공수부대원들이 참나무를 깎아 만든 몽둥이로 시민들을 구타했다. 20, 30대 청년들은 길을 걷다가 그들과 마주치면 아무 이유도 모른 채 맞아야 했다" ▽ 당시 31세이던 전병진씨는 서면 한독병원 앞을 지나다가 ‘건방지다’는 이유로 공수부대 장교가 휘두른 M16 소총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아 뇌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해병대 1사단 7연대(박구일 대령이 지휘)의 모 습 3 ▽ 계엄 1진으로 투입됨 ▽ 시위진압시 학생들과 시민들이 벽돌과 돌멩이를 던지고 그것 에 맞고 그래서 피를 흘려도 묵묵히 ‘무력(無力)행진’으로 밀 어냄. 제일 앞줄은 간부와 병장이, 두 번째 선은 상병이, 그 뒤로 일병, 이병이 서서 총기 멜빵끈으로 서로 팔을 동여맨 채 시위 대에 대응함. 앞줄이 돌에 맞아 쓰러지면 뒷줄이 앞으로 나섰지 만, 어떠한 경우에도 이등병은 앞에 세우지 않음 ▽ 김동일 씨 증언 "전경은 말할 것도 없고 육군도 시위진압훈련을 해왔지만, 우리 해병대는 한 번도 진압훈련을 해본 적이 없어 그런(몸 으로 때우는) 방식이 최선이었다. 총기를 뺏기지 않기 위해 멜빵끈을 최대한 늘려 옆 동료와 팔을 동여매고 무조건 전 진만 했다" ▽ 나중엔 주변 시민들이 나서서 시위대를 말림 ▽ 당시 정신교육 때 박구일 7연대장이 했던 지시 "해병대는 국민의 군대다. 시민들이 때리면 그냥 맞아라. 절대 시민들에게 손대지 마라. 다만 총은 뺏기지 마라" ▽ 김현숙 씨 증언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는 ‘맞기만 하는 해병대와는 재미 가 없어 시위를 포기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 박정희 죽은 뒤 했던 위민활동과 선무활동과 모습: - 소대별로 부산역과 시청 등 관공서로 이동. 건물 인근에 있는 싸리나무를 잘라 빗자루를 만듬. 오전, 오후 매일 2시 간씩 주둔지 건물 주변과 골목길 등을 청소. - 시위대가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뽑아놓은 가로수 받침대를 제자리에 놓음 - 도심 교통정리도 해병대의 몫 - 71대대 소대장으로 계엄임무를 수행했다는 박용감 씨 증언: " 시민들에게 인기가 좋기는 좋았던지, 오토바이 뒤에 해병대 깃 발을 꽂은 채 환호하면서 우리 주위를 빙빙 돌던 시민들도 있었 다. ‘귀신 잡는 해병’이라지만, 국민 앞에 서면 한없이 순한 어린 양이 됐다." - 당시 주둔하던 해병 중 한병사는 시민과 연애감정을 싹 틈. 결혼함. 당시 활동에 시민들이 보인 반응: - 시민들은 계엄군인 해병대를 신뢰하기 시작 - 버스를 타거나 대중목욕탕을 찾을 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 록 배려함 - 시위학생들에게 우유며 음료수, 빵 등을 나누어주던 시 민들이 해병대원들한테도 똑같은 행동을 함 - 박경미 씨 증언: "계엄령이 내려져 밤 10시면 통금이었는데 고위 공무원들로 보이는 손님들이 돌아가지 않고 난동을 피우 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럴 때면 해병대에 신고해 이들을 쫓아 내곤 했다." - 강민호 씨 증언: "해병대가 오기 전에는 수송, 보급 등 육 군 기간병들이 주둔했다. 해병대는 이들과 달랐다. 국기게 양식과 경계근무, 아침 구보 등 하나부터 열까지 절도 있는 모습을 보여 공무원들, 특히 여직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육군 예비역의 증언 "1980년대 초반 친구인 해병대 장교와 함께 부산에 간 일이 있다. 그런데 버스 안내양이 나한테는 차비를 받으면서 해 병대 친구의 차비는 한사코 받지 않는 것이었다. ‘야, 왜 네 차비는 안 받는 거냐?’ 하고 물었더니 친구는 멋쩍게 웃음만 짓고 아무 대답도 안했다. 버스 안내양도 마찬가지 였다. ‘부산에서 해병대가 인기가 좋기는 좋구나’ 하는 느낌이 확 왔다" 5.18 당시 계엄군의 모습
광주에 주둔했던 7공수여단의 모습 (11공수여단은 19 일에, 3공수여단은 20일에 투입) ▽ 조선대 의대 4학년에 재학중인 이민오씨는 광주일고에서 있던 동문 체육대회에 참여하다가 주변에서 쫒아온 공수 부대에게 구타당당함. 췌장과 비장이 파열 됨. 4 ▽ 횡단본도 바로 옆 북동 276번지 3층 건물 2층에 있는 동아 일보 광주지사에 공수부대원 두명이 들어와서, 근무하던 정은철 총무를 넘어트려 마구짓밝고 개머리판으로 내리쳐 서 쓰러트린 다음 양쪽에서 다리 하나씩 붙잡고 끝고 나감. 머리는 땅바닥에 끌린채였고. 그 두 공수부대원은 건물안 으로 다시 들어와서 담당구역 수금하고 들어왔던 배달학 생 박준하(당시 광주공고 1년)씨 를 진압봉으로 수업이 때 리고 짓밟아서 끌고 감. 그러던중 박준하 씨는 실신했고 두 공수부대원은 그대로 팽개쳐 두고 내려감. 5 ▽ 청각장애인 김경철 씨를, 뒤통수를 깨트리고 팔과 어깨를 부수고 엉덩이와 허벅지를 으깰정도로 구타함. 다음날에 사망 6
부산, 마산에 주둔했던 해병대1사단의 모습 7
(이 때는 부산과 마산에 주둔했던 계엄군은 해병대뿐. 공수부대 는 주둔 안 함) ▽ 광주가 공수부대의 강경진압과 시민군의 반발로 피비린내 가 진동했던 데 반해 해병대 1사단 2연대가 투입된 대구, 마 산, 부산은 상대적으로 평온했다. 시민들의 시위는 광주 못 지않게 격렬했지만 계엄군의 대응방법이 달랐다. ▽ 당시 정행원 2연대장이 내린 지침 "시민과 학생들이 때리면 그냥 맞아라. 절대 그들을 자극하지 마라" ▽ 2연대 작전주임으로 현장에 있었던 김현기 예비역 대령의 증언 "해병대는 국민의 군대다. 국민이 돌 던지며 때린다면 맞는 것 이 당연하다. 국민보다는 우리가 더 많은 피해를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엄작전에 임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닦아놓은 해 병대의 위민정신과 평소 체계적인 훈련으로 쌓은 해병정신 덕 택에 큰 탈 없이 작전을 끝마칠 수 있었다. 이때도 부마민주항 쟁 진압 당시 톡톡한 효과를 본 무력(無力)행진이 우리의 유일 한 진압방법이었다." ▽ 한 해병대 예비역 장교 8 가 서정근 기자에게 한 말 "당시 계엄군을 총지휘한 전두환·노태우·정호용 등이 다 특 전사 출신인데, 해병대의 진압과정과 공수부대의 진압과정을 언론이 비교하도록 놔뒀겠냐"
공수부대의 모습과 해병대의 모습이 달 랐던 이유 9
▽ 공수부대와 해병대의 진압과정 차이를 조직구조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군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해병대 지휘계통 은 공수부대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그에 따르면 해병대는 적 후방에 침투해 게릴라전을 펴는 것이 주목적인 부대다. ▽ 해병대 7연대는 박구일 연대장이 직접 나서서 장병들에게 작전에 임하는 자세와 목적에 대해 정신교육을 하고, 그 공 감대를 바탕으로 부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광주의 공수부 대원들에게는 이와 같은 교육이 없었고 ‘내가 왜 광주에 왔는지’에 대해, 다시 말해 부대의 출동 목적에 대한 주체 적인 자각이 없었다.
1. 부마항쟁 자료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7/11/10/200711 100500005/200711100500005_1.html
3.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7/11/10/200711 100500005/200711100500005_2.html
4. 12.12, 5.17, 5.18 국방부 보고서 71쪽
5. 출처: 144회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회
의록 (1988년 2월 7일) 7쪽.
6.
http://blog.naver.com/rapid81/120173046436 7.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7/11/10/200711 100500005/200711100500005_3.html
8.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7/11/10/200711 100500005/200711100500005_4.html
9.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7/11/10/200711 100500005/200711100500005_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