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하청노동자가 해고된 '기막힌 사연'] 정규직 선물 싸는 비정규직
[프레시안 김경락/기자]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이름은 도영철(가명). 50세를 갓넘은 그는 불과 석달 전까지만 해도 (주)농심 안양공장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냉동창고에서 24시간 내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서 쏟아져나오는 냉동식품을 지게차에 적재하는 작업을 2년째 해 왔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그는 "너무나도 어이없는 이유"로 해고됐다.
현재 그는 (주)농심과 하청업체 경원산업관리를 상대로 노동위원회에서 지난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의 법률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는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박성우 노무사와 함께 1일 저녁 그를 만났다.
"비정규직은 책 대여가 안됩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제출된 경원산업관리측 답변서에는 "술에 만취된 상태에서 농심안양공장내 도서실에서 책을 빌려달라고 여직원에게 행패를 부리고, 도서 대여가 거절되자 이를 말리던 (주)농심 측 노사협력팀 이사에게 까지 행패를 부리는 등 사건이 심각했으며 이는 근로자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으로 해고조치했다"고 기술돼있다.
즉 대여가 되지 않는 (주)농심 도서실에 책을 빌려달라고 한 점과, 거부되자 행패를 부린 것이 도씨기 해고된 이유인 것이다.
도씨는 이에 대해 "행패를 부렸다고 사측은 주장하지만, 사실 행패부린 것 없다"며 "해고 진짜 이유는 괘씸죄, 즉 비정규직이 감히 정규직 도서실에 와서 책을 대여해달라고 요구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사측의 답변서에서도 도씨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패'를 부렸는지 기술돼 있지 않다. 다만 도서대여를 담당하던 (주)농심의 백모 여직원의 진술서에 "막무가내 큰 소리로 무조건 책을 빌려달라고 해 매우 무섭기도 하였고 당황했다"로 기술된 것이 전부다.
박성우 노무사는 이와 관련 "도씨가 행패를 부렸다는 사측의 주장은 사실 허구에 가깝다"며 "만취했다는 주장도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도씨는 행패대신 "2년동안 여기서 일했다. 책 분실이 걱정된다면, 돈도 맡기고, 신분증도 맡기겠다며 사정했다"고 말했다.
도씨는 사건 하루 전 야근을 마치고 고향에서 모친이 위중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전신마비 증세를 보이고 있는 큰 형을 대신해 사실상 장남 역할을 해야하는 그였다. 하지만 하청노동자인 까닭에 갑자기 회사를 비울 수 없어 고향에 내려갈 수 없었다. 그는 잠 한숨 자지 못했고, 친지와 점심식사를 하면서 갑갑한 신세를 하소연하며 반주를 곁드렸다고 한다. 점식식사후 오후 3시경 그는 도서대여실을 찾았다. 위중한 어머님 곁으로 달려가지 못하는 갑갑한 마음에 <성경>을 빌려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어이없게 '취중행패'로 몰려 해고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는 "평소에 술을 못해 한두잔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져, 도서담당 여직원이 '만취'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겠다"라고 말했다.
(주)농심 노사협력팀 한 관계자는 <프레시안>과 전화통화에서 "도씨의 얼굴이 매우 붉었고, 일방적으로 도서 대여를 요청했기 때문에 경원산업관리 현장소장을 불러 도씨를 인계했다"며 "그 이후 해고 여부는 경원산업관리에서 결정한 것으로 (주)농심과는 아무 관련 없다"고 말했다.
쉴새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밥은커녕 화장실도 못가
도씨는 (주)농심 안양공장에서 지난 2002년8월2일 입사한 이래 근 2년째 냉동창고에서 일해왔다. 근무형태는 하루 12시간 2인1조 주야 맞교대 근무다. 낮에는 그나마 함께하는 동료가 있지만 야간에는 혼자 꼬박 밤을 세워야 한다.
컨베이어 벨트가 쉴새 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밥 먹을 시간조차 없다. 낮에는 잠깐 대신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밥을 먹을 수 있지만, 밤에는 그것도 여의치 않다.
"한번은 현장관리소장에게 밥은 제대로 먹게 해줘야 되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장은 '밥 제 때 챙겨먹고 싶으면, 여기서 일하면 안되지'라고 면박을 주더라구요."
도씨는 배고픈 것은 그나마 참을 수 있었고 한다. 하지만 대변·소변과 같은 생리적 현상을 참는 것은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변이 마려우면 얼른 뛰어가서 화장실도 아닌 창고문 앞 하수구에다가 볼일을 보고 다시 뛰어와 냉동식품을 받았다고 한다.
딱 떨어지는 최저임금
박성우 노무사는 처음 도씨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맨 먼저 살펴본 것이 '체불임금' 존재 유무였다고 한다. 그 결과 불법적인 체불임금은 한 푼도 없는 대신, 딱 떨어지는 최저임금이었다.
도씨는 시급 기본급 2천5백10원에 하루 12시간 연장·야간근로를 하고, 법정 주유급휴일임금과 연·월차수당을 모두 포함, 정확히 1백3만원(세후)을 받고 있었다.
박 노무사는 "미리 총액을 정해 놓고, 법망을 피하기 위해 각종 수당과 기본급을 조정한 것 같다"며 "최저임금에서 1원의 오차도 없고, 1원도 더 받은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도씨는 "연·월차 휴가도 수당으로 나오니 2년동안 휴가도 없고, 결근을 하려 해도 대신 일할 일용직 노동자 일당 5만원을 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집안에서 대소사가 있더라도 쉴틈없는 비정규직 신세다 보니 2년동안 딱 두 번 아버지 제사때 집에 내려가 봤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박 노무사는 이와 관련, 사측은 '대신 일할 일용직 노동자 일당을 도씨가 지급하지 않았다' 주장하나, 실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2년동안 도씨는 (주)농심 하청노동자로 살아왔다.
"처음부터 비정규직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도씨 역시 처음부터 비정규직 노동자 신세는 아니었다. 도씨는 한 때 조그만 공장도 경영을 했었고, 여의도 일대에서 명패나 명찰 등을 주문 받고, 판촉하는 일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철도 컨테이너 작업에 동참, 정비일을 하면서 끝 모르는 추락이 시작됐다.
1997년 IMF사태가 발발하면서, 졸지에 정규직이던 그는 똑같은 일을 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했다. 이미 사업도 몇 차례 망해봤고, 이런저런 풍파도 겪은 뒤라 당시에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고 했다.
"IMF 외환위기 전에도 비정규직은 있었습니다. 그 때 비정규직은 각종 수당이나 연말 보너스를 한꺼번에 월급으로 받아 정규직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기도 해, 맨처음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을 때는 큰 위기의식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당시는 IMF사태로 도처에서 정리해고된 실직자들이 쏟아져 나오자 노동시장은 금새 과잉공급이 됐고, 정부와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정리해고제, 파견법 등을 도입하면서 노동유연화를 가속화시켜 우리 노동시장구조가 급격히 재편되던 시기였다.
노조 창립일날 정규직 선물 싸는 비정규직
도씨가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면서 가장 큰 고통은 회사 간부들과 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개·돼지 취급을 받을 때"였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규직보다 더 궂은 일을 했지만, 정규직은 보다 높은 월급을 받아갔고, 연말보너스나 각종 상여금은 정규직에게만 돌아갔다고 했다. 그는 "연말 보너스라고 '만원'을 받은 적이 있다"며 "퇴근하는 길에 너무 비참해서 혼자 울었다"고 고백했다.
지난해는 노조창립 10주년이어서 창립기념 조합원 선물 포장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했다고 한다. 도씨는 "정규직 조합원 선물 포장일로 평소보다 더 늦게 퇴근했지만, 남은 선물 하나 받지 못했다"며 "선물을 받고 안받고 보다 그냥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규직 노조 간부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며 정규직 노조에 대한 불만도 덧붙였다.
박 노무사는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가당찮은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에 앞장서고 있는 대공장 정규직 노조가 간혹 있다"며 "이들이 변하지 않은 이상 진정한 노동운동의 미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주)농심은 노사화합이 잘 되는 회사로 외부에 알려져 있다"며 "그러나 내부에는 이렇듯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이를 외면하고 조장한 사측과 노조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런 나라엔 희망이 없다"
기간제 노동과 파견근로 사용을 '3년간'으로 합법화하려는 정부에 대해 도씨는 "이 나라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정부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상을 알면 도저히 그런 법안을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비정규직으로 채용되면 처음에는 옷도 깔끔하게 입고, 세수도 잘하고 그럽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작업복은 지저분해지고, 이빨에 고춧가루가 꼈는지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도 모릅니다."
박 노무사는 "현장에 가보면 복장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확연히 구분된다"고 말했다. 정신없이 밀려드는 일감을 쫒아다니랴, 현장 감독관 눈치 보느라 자신을 챙길 시간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도씨는 "잘 살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뼈빠지게 일한 만큼, 최소한 먹고살 수는 있어야 하지 않냐"며 "궂은 일 다하는 노동자, 현장 생산 노동자들은 '자포자기'에 빠져 모든 희망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나라에 더 이상 미래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12시간 개·돼지 취급하면서 비정규직을 굴려먹는 기업주가 어떻게 '윤리경영'을 하며, 이를 묵인하고, 조장하는 정부가 있는데 국민소득 2만불이 가능하겠냐"고 항변했다. 그는 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나라도 버리고, 회사도 버렸다는 박탈감에 어디에도 기댈 곳 없다"고 덧붙였다.
머리털 대부분이 빠져 속 머리가 보이는 도형수씨는 지금도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사측과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그가 싸우는 이유는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서도, 해고기간 못받은 임금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라고 한다. 그의 말이다.
"그냥 있다가는 나의 아들, 우리의 자식들도 저처럼 개·돼지 취급받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겁니다.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사측과 싸울 생각입니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세상에 애들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을 뒤로하고 나선 서울거리는 밤이 아득히 내리고 있었다. 간만에 내린 겨울비가 한층 거리를 을씨년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도씨를 만난 다음날인 2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도씨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결사반대하고 있는 비정규직법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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