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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소위 '6공시절'에 이루어졌던 '5공청문회'입니다.
네.바로 전두환 정권의 뒤를 이어받은 노태우정권아래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노태우는 아시다시피,신군부 출신으로,
전두환과 함께 12/12 군사반란을 주도했던 인물.
그가 정권을 잡은 상태에서 청문회가 이루어졌다는것이 의아스럽지요?
답은 여기에 있습니다.
88년 총선당시 국회는 야당의원들의 의석수가 여당의원들의 의석수를 과반이상 차지했습니다.
"여소야대"죠.
우리국민은 비록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선출했지만, 의석수만큼은 여당을 견제할수 있게
야당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피흘리며 싸워 투표권을 찾아주니 노태우를 뽑더라."
맞습니다.
그러나 총선의 결과는 달랐습니다.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야당은 힘이 있었고,
이를 발판으로 5공정권의 비리를 조사하는
"비리특별조사위원회"를 창출해냈습니다.
주요안건은 일해재단 비리,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그리고 언론통기관통폐합 이었습니다.
애초에 5공화국의 비리 청문회는 "전두환"을 빼고는 결코 진행될수 없었습니다.
전두환 그자신이 바로 5공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를 증인석에 세우기위해 많은 난항을 겪습니다.
임기후 전두환은 백담사로 들어가 칩거생활에 돌입합니다.
그런데 국회의 "증인채택"요구에도,
백담사측에서는 증인출석을 거부했고,
전두환은 나가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었죠.
청문회가 열리기 직전,재야인사들은 백담사로 직접찾아가 증인출석에 응하라
요구했고 이는 심지어 여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또한 "여소야대"의 상황이었기에 여당은 5공과의 "차별성"을 "보여주기"위해
했던 일이었죠.)
우여곡절끝에 전두환은 증인으로 채택됩니다.
바로 전정권의 대통령이 본인의 비리 청문회 증인으로 국회에 호출된 초유의 사태.
그러나 증언방식 자체는 이러했습니다.
위원장 앞 단상에 선 그는 "청문회법에 의거한" 선서를 거부한채
증언을 시작합니다. " 기만" 이었죠.
또한 전두환은 질문없이 서면에 작성된 문건만으로 답변을 읊어나갔습니다.
야당의원들은 "질문없는 증언이 어떻게 증언일수 있는가" 반문하며
격렬히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 질의에대한 답변의 명목"으로
전두환은 문건을 계속 읽어 나갔고,
그 내용또한 국회가 요구하는 핵심적사항들은 일절 언급되지 않은,
추상적 변명들 뿐이었습니다.
이 청문회는 사실 5공의비리와 더불어,
"광주특위"로 불린만큼,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들을 학살한
책임을 가리려는데에 큰 의미를 둔 청문회 였습니다.
전두환의 궁색한 변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 핵심적 내용에 접어들었을때 전두환은 이렇게 말합니다.
광주시민학살은 '데모'로 인한 국가전복위기 상황에
자위권을 둔 것이었다는 골자의 궤변 이었죠.
게다가 발포책임자는 누구였는가에대한 직답을 회피하며
"지휘계통을통해 하달되었다"라고 빠져나갑니다.
참지못한 야당의원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초선야당의원(이철용)이 증언석으로 달려나가 끝내,
"발포쟁점부터 밝히라. 살인마 전두환"이라고 외쳤고
이는 당시 생중계중이던 방송국들에 의해 그대로 전파를 탑니다.
침통함만을 남기고 이렇게 전두환의 증언은 끝이났고,
당시 맹렬히 진실을 가려내려했던 초선위원들 중 하나였던
노무현 전대통령은 퇴장하는 그에게 명패를 집어 던집니다.
풀리지 않은 의혹들 그리고 국민의 울분과 비난은
누가 책임지느냐는 그의 절규..........
청문회는 이렇게 어떤 명쾌한 답도 내어 놓지 못하고 끝이났습니다.
그리고 최초발포명령자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오늘로 33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국민위에 감히 군림치말고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라"외쳤던 시민들을
독재정권이 "폭도"와 "빨갱이"로 몰아 학살하던 광기의 시대.
그 정점에 있었던 "그날"이후 어느덧 33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희생으로서 참정권을 수호했고, 독재에 저항했으며,
바로 우리들. 국민에게서 주권이 발현됨을 언제나 잊지 않았습니다.
"잊지말자"는 것은
곧 "다시는 그래선 안된다"는 역사의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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