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을 좌우하고 있는 외국인이 드디어 한국 경제는 이제 더이상 한국의 것이 아니라고 단언했다.지난 30일 열렸던 재정 경제부 공무원과 출입기자들간의 세미나에서 매릴린치 증권의 이원기 전무는 ''외국인이 보는 한국 경제와 주식시장''이란 내용의 주제 발표를 통해 "서울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의 44%, 우량기업 주식의 60%, 유통주식의 75%가 외국인 소유"라며 "한국 경제는 이제 외국인에게 인수당했다"고 일갈했다.
이원기 전무는 서울대와 미국 UCLA를 나와 미국 금융계에 투신한뒤 90년대 후반부터 매릴린치 증권 서울지점에 근무하며 외국인들의 한국 투자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월가에서는 대표적인 한국통중 한사람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강하다.
그는 "자신이 외국 투자가들의 대표는 아니지만 자신의 의견에 따라 투자 여부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자신의 말이 곧 외국인의 시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 시장에 투자한 외국 기관투자가들은 12,000천개, 투자액은 170조원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제법 규모가 있는 주식 시장에서 외국인 지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한국이다"외환위기를 벗어나기 무섭게 400만명의 신용불량자가 생겨난 나라, 소비 회복 지연과 기업들의 투자 부진으로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운 나라, 남북대치와 북한 핵문제로 유일한 세계의 화약고로 인식되고 있는나라, 이념 논쟁으로 갈갈이 찢어져 가고 있는 나라….
신문 방송을 보면 마치 곧 망하고 말 것 같은 한국에 외국인들이 돈 보따리를 싸짊어 지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전무는 "수십 수백년간의 투자 노하우를 갖고 있는 외국 투자가들의 한국행은 현지 물정에 어두워 머리가 잠시 돌았기 때문이 아니다"고 말했다. 의문에 대한 해답은 명쾌했다. "한국 경제가 밝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외국인들의 한국 투자를 안내하는 유력한 증권 전문가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자 경청하고 있던 고위 공무원들은 물론 기자들 조차도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외국 투자자들이 보는 한국 경제의 강점을 요목조목 소개했다. 우선 한국은 IT와 인터넷, 통신, 게임 컨텐츠같은 신 산업의 천국이라는 것이다.
거의 모든 가정에 컴퓨터와 초고속 통신망이 깔려 정보의 검색과 유통이 생활화 돼 있는 나라, 집에서도 모자라 피시방에서도 게임과 채팅을 즐기는 국민들,이동통신의 메카, 21세기 들어 새롭게 꽃피우고 있는 신 산업들에서 한국과 경쟁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는 진단이었다.
이런 가운데 "자동차와 조선, 철강, 해운등 기존의 전통 수출 산업에서도 막강한 국제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수출과 내수, 제조업과 서비스 IT산업과 전통산업의 균형을 갖춘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이어서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열과 기업가 정신, 그리고 세계의 경제 심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성장 과정에서 한국이 그 과실을 가장 많이 딸 수 있는 점등을 외국인들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매년 파업의 홍역을 겪는 현대자동차가 순이익율에서 BMW를 앞서고 있는 것은 역량이 뛰어나다는 말 이외에는 설명이 안된다. 한국 기업들은 번성하고 있는 IT문화가 기존 산업에 접목돼 있는데다 신속한 의사 결정과 종업원들의 뛰어난 능력으로 동종 업종의 외국 기업들을 압도하고 있다. 여기다 한국인들은 창의력과 활발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다. 외환위기에서 직장을 나온 사람들의 상당수가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한집 건너 빵집이고 한집 건너 음식점이다. 일본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그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밝게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거침없이 토해냈다. 최근 한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이었다.
정치적 분열과 반목은 개방사회와 통합사회로 가는 진통일 뿐이며 경제 위기 의식이 팽배한 것은 8~90년대 7~8%대의 고속 성장이 지속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고속도로 증후군''과 외환위기 때의 충격으로 인한 ''IMF증후군'' 때문이라는 진단이었다.
또 최근 소비의 침체는 지난 2~3년간 과소비로 인한 가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당연한 것이며 체감 경기의 극심한 침체는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에서도 탈락하고 있는 기업과 개인들의 고통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다.
"한국인이 한국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것은 질과 양의 차이다. 경기가 양적인 측면이라면 경제는 질적인 것이다. 한국인들은 양적인 면을 보는데 치우쳐 경기를 중요시 한다. 그러나 경기는 단기적인 것이다. 경제의 질이 우수하다면 장기적으로 방향은 좋게 갈 수 밖에 없다. 95% 외국 투자가들은 3년 5년을 보고 투자한다.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을 살 수 밖에 없다"한국 경제의 비관적 요소로 지목되고 있는 이유들이 오히려 긍정적 측면으로 뒤집어지자 세미나 장은 숨죽인 듯이 조용해졌다.
기자들은 이어서 어떤 말이 나올까 그의 입을 주시했으며 세미나 좌장인 김광림 재정경제부 차관(이헌재 경제 부총리는 다른 행사 참석차 뒤늦게 도착함)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들은 구세주를 만난듯 무릎을 쳤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 경제를 바둑에 비유했다.
"한국 바둑은 지난 10년동안 열린 세계 기전에서 단 하나만을 외국에 내주고 모두 휩쓸었다. 10년전만 하더라도 한국에는 조훈현 국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훈현을 이기기위해 이창호가 등장하고 그 이창호를 꺽기위해 수많은 청년기사들이 나왔다. 지금은 한국이 세계를 평정하고 있다"바둑의 역사로 볼때나 저변으로 볼때 우리는 도저히 일본과 중국을 이길수 없을 것 같지만 한국인 특유의 끈질김과 창의력, 실전적 도전정신이 오늘의 한국 바둑을 있게 했다는 분석이었다.
그는 "우리 경제도 삼성과 현대, LG같은 세계적 브랜드들이 나오고 있는 만큼 그 회사들을 뛰어넘기 위한 또 다른 기업이 등장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원우 전무, 한국인이자 또 다른 의미에서 진정한 외국인인 그의 입을 통해 한국 경제를 들으면서 참석자들은 외국인들이 우리를 이렇게 높게 평가하고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한 공무원은 "강연을 들으면서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우리 민족이 이런 민족은 아니었는데 하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의 잠재력을 평가 절하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단시일내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 한번 해보자 하는 도전정신과 똘똘 뭉쳐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결집력이었다.
뒤늦게 세미나장에 도착한 이헌재 경제 부총리는 마침말을 통해 "우리 몸속에는 다른 민족에는 없는 끈질김,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려는 그 어떤 기질이 있는 것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가 지금 위기라고들 한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대립과 반목이 판을 쳐 그 것이 다시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지금.
우리 몸속에 잠자고 있는 그런 훌륭한 유전인자를 끌어내 다시 한번 위기를 돌파해야할 때가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가 아닌가한다.
CBS경제부 한준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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