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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써도 될런지 좀 망설여지는데요
2010년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간밤에 꾼 꿈에 그 친구가 나와서 불현듯 생각이 나서... 써보겠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알던 녀석이 있습니다.
늘 안경을 쓰고, 똘똘하게 생긴것 같으면서도 좀 어벙하던 친구였습니다.
5학년때도 같은 반이었고
중학교 올라가서는 1,2학년 제가 미국으로 이민가기 전까지 같은 반이었습니다.
중학교때부터 많이 친해졌습니다. 좋아하는 게임들도 비슷하고 같이 공부도 하고
여러 친구들과 두루두루 뭉쳐서 자주 놀기도 하고 피시방도 자주 가구요
제가 많이 좀 놀리고 갈구고 걔는 그냥 피식피식 웃고 그런 친구였습니다. 전 많이 짓궂은 타입인데 그녀석은
참 속도 좋은지 저한테 한 번도 화낸 적 없었습니다.
공부도 잘했고, 재수를 하긴 했지만 서울의 명문대 수학과에 들어갔습니다.
미국으로 이민간 뒤, 오랜만에 한국에 나와서 만났습니다. 연락하기도 쉬웠고 만나는 것도 아주 시원시원하게 만났죠.
그녀석 자취방에 가서 자기도 하고, 다른 친구하고 셋이서 만나 찜질방도 같이 가고
제가 한국에 2년간 머무는 동안이라 여러번 만났는데
마지막 만났을때 일어났던 일입니다.
언제나처럼 고기부페 가서 소주 한잔하면서 조금씩 취기가 올라올 무렵
그녀석 폰으로 전화가 오는 겁니다.
번호 확인하더니 그냥 무표정하게 소리를 껐습니다.
뭐 나랑 수다떠는 중이었으니 그랬겠거니 하고 별로 신경안썼는데
전화가 계속 옵니다.
끊으면 오고 끊으면 또 오고 계속 오더군요.
"야 뭐야 니 스토커냐? 뭔 전화가 이리 와?"
"아버지야. 신경쓰지마 가끔 저러셔. "
"니 통금 없잖아. 아버님이 술이라도 드셨나? ㅋㅋㅋㅋ"
제가 농담을 하니까 그녀석 언제나처럼 피식 웃고 맙니다.
한 두잔 정도 더 마셨을 때, 갑자기 녀석이 심각해졌습니다.
"내가 우리 아버지 얘기 꺼낸적 없지?"
"그러게? 너네 어머니는 중딩때 뵌적도 있고 통화도 한적있는데."
"사실 좀 사정이 있다."
약간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친구녀석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정도가 좀 심해서,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에는 친구하고 친구동생이 많이 얻어맞았다고 합니다.
발가벗기고 거실에 엎드려뻗쳐를 시킨후, 야구방망이로 엉덩이와 등을 마구 때렸는데
심하게는 20분 30분가까이 매질이 계속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몇 년씩이나 계속 이어져왔다고 했습니다.
친구 어머님이 굉장히 착하고 좋은 분이셨고, 이 녀석도 얼굴에 상처가 나있거나
어른들에게 부담감을 느끼거나 하는 모습을 보인적도 없어서 저는 상상도 할 수 없었죠.
"무릎 꿇고 앉으라고 한 다음에, 허벅지를 발로 계속 밟아. "
"..................."
"그걸 쉬지않고 계속 하더라. 나중엔 자기가 자빠져 넘어질 정도로 까. 술 취해서 지 몸도 못가누면서 그렇게 계속 패는데...
난 괜찮았는데 동생 패는거 보고 눈알 돈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듣는 사람도 고통스럽고 무서운 이야기인데 이녀석도 많이 힘든 눈빛으로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자기가 커지고 동생도 커져서, 그리고 아버지의 몸이 점점 쇠약해지셔서 폭행은 없다고.
동생과 어머니가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보살피는데, 몸 상태는 나아지지 않으시고
대신 어디서 그렇게 술을 몰래 가지고 오시는지, 방문 걸어잠그고 계속 드시면서
취하실 땐 정신병자 같은 행동을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
"뭐 어떤 행동...?"
"들어봐."
친구녀석은 저한테 자기 폰을 건냈습니다.
부재중 전화 17통
음성메시지 5통.
전부 친구 아버지로부터 왔습니다.
음성메시지를 틀었습니다.
약간 쉰듯 했지만 굉장히 차분한, 평범한 아저씨의 목소리였습니다.
첫번째는
"영훈아(가명)... 시간이 좀 늦었잖아. 얼른 들어와라."
두번째
"큰아들. 어디냐? 위험한데 밖에 너무 오래 돌아다니지 말고....얼른 집에 와야지...."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친구는 계속 제 표정을 살폈구요
세번째
약간 흐느끼는 목소리로
"영훈아.... 아버지가.... 힘들다.....많이 힘들다.... 지치고 힘들다 아빠가...영훈아..."
네번째
"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
여기서 많이 깜짝 놀랬습니다.
친구도 '안 들어도 알겠다' 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힘들다..힘들다..힘들다 힘들어 내가 힘들다고!! 힘들어!!!으아!!!!!!끼이야야아아아아!!! 힘들다!!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린다!!개색기야!! 으하하하하하하핳하하 크하하하하하 !! 끄으아아아아!!! "
여기서 너무 깜짝놀래서 심장이 멎을 뻔 했습니다. 진짜 '헉!' 소리 나오면서 폰을 귀에서 땠습니다.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정말 무섭네요.
수화기 너머로 고래고래 비명지르며 힘들다고 하다가 큰소리로 웃었다가,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영훈이 아버지의 목소리가 찢어질듯 들렸구요...
녀석은 그냥 아무 말 없이 전화기를 달라는 뜻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요즘 이러신다고.
자기도 처음엔 기절할 정도로 놀랬는데, 이럴때마다 패턴이 같아서 지금은 견딜만 하다고.
자긴 밖에 나와서 살고 있지만, 같이 있는 동생이랑 어머니가 걱정된다고
자기 아버지한텐 미안하지만, 병원에 입원시키고 싶었는데
단순한 알코올 중독일뿐 미치거나 하진 않았으니 잘 보살펴라 라는 말밖에 못들었다고 했습니다.
몇 달후, 연락이 왔습니다.
친구아버지가 방안에서 목을 메달아 자살하셨다고 했습니다.
유서 같은건 없었고,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마귀새끼야 지옥에서 보자" 라고 전처럼 비명을 지르는 음성메시지를 남기셨다고 합니다.
친구는 조금씩 떨리는 목소리로 오지 않아도 된다고, 자기가 연락할테니까 잘지내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2년이 지났네요. 아직까지 연락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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