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억2780만 개. 이틀 동안 이만큼의 우유팩(190mL 한 팩 600원)을 길바닥에 버린 셈이다. 대리점 점주에 대한 '직원 욕설' 파문에 남양유업 주가는 6~7일 10% 넘게 떨어졌다. 시가총액 900억원 가까이 날아간 것이다. 밀어내기 강매에 대한 검찰 수사, 불매운동의 확산, 시민단체의 반(反)남양 연대 확산 등 3중고로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이다. 최근 '라면 상무' '빵 회장' 사건 등으로 불붙은 '갑을(甲乙) 문화'에 대한 사회적 반감과 맞물리면서 여파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직원의 잘못은 회사의 잘못=계약관계에서 '갑'과 '을'이 나뉜 데서 이름이 나온 '갑'의 횡포, 그리고 '회사가 갑'인 상황을 '직원이 갑'인 상황으로 '호가호위'하는 일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발전으로 임직원 한 명만 잘못해도 기업이 대응할 틈도 없이 기업 이미지 전체에 큰 타격을 받는다. 수년간 수십억원을 들여 사회공헌 등으로 쌓은 기업 이미지가 한방에 날아간다는 얘기다. 인터브랜드코리아의 관계자는 “포스코 브랜드 가치는 2조7000억원 수준인데, 이번 파문으로 상당한 가치 하락이 있어 보인다”며 “현재도 파장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어 시간이 지나 봐야 정확한 브랜드 가치 하락분을 도출할 수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무형의 이미지 손실뿐만이 아니다. 한 제빵업계 회장이 호텔 지배인을 장지갑으로 폭행해 비난여론이 일자 이곳 제품을 공급받는 코레일관광개발은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납품을 중지하겠다고 통보했다. 결국 그 회장은 해당 사업을 접었다. 일부 편의점 가맹점주는 7일부터 남양유업에 대해 제품 불매운동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불매운동이 길어진다면 실제 매출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기업의 온라인 평판 관리가 오프라인 관리만큼, 어쩌면 오히려 더 중요해진 세상이 온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입소문=SNS 등 온라인으로 촉발되는 평판 리스크는 돌발적이라는 점에서 관리가 어렵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온라인 평판 관리에 도움을 주는 기술, 예를 들어 비슷한 기업 이름이 올라와도 다 찾아낼 수 있는 '검색엔진 최적화(SEO)' 검색기술이 급성장하고 있다. 또 구글이 무료로 제공하는 '알리미 서비스'처럼 자신의 기업과 관련된 새로운 웹페이지나 블로그 글이 올라오면 e메일로 알려 주는 시스템도 도입됐다. 사용자들이 어떤 이슈를 검색하고, 어떤 의견을 내놓는지 초기부터 해당 기업에 알려 주는 것이다.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기 시작하면 바로 사실관계를 바로잡거나 사과하는 등의 대응에 나서는 것이 가능하다.
직접 온라인 평판을 관리하기 어려운 회사들을 위해 몇몇 해외 업체는 더 세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무료 서비스로는 블로그에 언급된 데이터를 분석해 긍정적·중립적·부정적인지 평가해 주는 소셜멘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특정 키워드가 포함돼 있는지 검색해 주는 커런틀리, 특정 주제와 관련된 최신 소식에 대한 맞춤형 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애딕트오매틱 등이 있다. 월 50달러 안팎에 온라인 평판 관리를 전반적으로 도와주는 레퓨테이션닷컴·트래커 등도 나왔다.
문제는 국내에서는 특정 이슈가 확산되는 과정이 해외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업체인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송동현 부사장은 “인터넷 환경이 커뮤니티 중심인 국내에서는 자극적인 이슈만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모인 일베(일간베스트)·오유(오늘의유머)·디씨갤(디씨인사이드 갤러리) 등에서 이슈가 처음 생산되고, 이것이 트위터에서 확산된 뒤 전통 미디어가 보도를 시작하면서 절정을 맞는다”고 설명했다. 확산 속도도 빠르다. 트위터의 파괴력은 사안 자체의 위험성(hazard)에다 외부 노출도(exposure)를 곱한 만큼 증폭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글로벌 트위터 이용자들의 멘션에 대한 응답률이 11%인 반면 국내 트위터 사용자는 80%에 달했다. 멘션이 10번 오면 그중 8번은 리트윗하거나 답글을 보내는 이른바 '무한 알튀(연쇄 퍼나르기)'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평소에 잘못된 관행부터 고쳐야=전문가들은 온라인 평판 관리만으로는 위험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라면 상무와 빵 회장 사건은 기업 소속 임직원들의 돌발행동이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면서 이미지에 타격을 준 경우인 반면 남양유업의 파문은 기업 내부의 관행에 대해 대리점주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이라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데 SNS 때문에 불거진' 것이 아니라 '있던 문제가 SNS 때문에 확 퍼진'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송 부사장은 “온라인 평판 관리는 위기 이슈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 여론을 완화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터넷·SNS 여론을 돌보기에 앞서 잘못된 관행이나 기업문화 같은 기업 내부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고쳐 나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온라인 평판 관리는 결국 기업 위기관리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경영전략 컨설팅업체 티플러스의 김태형 수석이사는 “기업들이 위기대응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고, 외부 협력업체와 공조체계를 구축하며, 초기대응 매뉴얼을 개발하고, 구성원의 위기대응 교육을 상시화하는 등의 4가지 위기관리 원칙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 SNS발 이슈의 확산과 소멸 과정
1 개인·기업·조직의 커뮤니케이션 오류, 또는 민감한 콘텐트가 공개되거나 유출
2 최초 발견자가 이를 캡처 후 유명 커뮤니티(일베·오유·디씨갤 등)나 트위터 등록
3 커뮤니티 내 댓글로 진위 공방 진행
4 관련 링크가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로 확산
5 언론에서 보도 시작
6 언론에서 관계자 멘트 인용 시작('단독' 문구 등장)
7 온라인상에서 감정적이고 자극적 반응 폭발
8 과거 정보 수집이 진행되고 공유(일명 '신상 털기')
9 각종 추측과 루머, 음모론 등장
10 이슈 관련자의 입장 발표 및 2·3차 해명
11 추측과 루머 가중
12 중립·양비론적 사람 등장(예들 들어 “자중하자” 등)
13 이슈가 서서히 '산(처음과는 다른 연관 이슈)'으로 이동(100% 통제 불가능한 이슈로 발전)
14 지금까지의 진행 과정을 서사적으로 디테일하게 정리하는 사람들 등장. 이후 정리된 콘텐트 확산
15 해당 이슈에 대한 개인 및 언론 논평 등장
16 다른 이슈들이 등장해 해당 이슈는 서서히 소멸
17 트위터 등에서 끝까지 해당 이슈와 관련해 인신공격하는 사람이 일부 남아 있지만 대부분 관심 없음
[자료 : 스트래티지샐러드]
고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