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드러나도 솜방망이 처벌... 되풀이 되는 선거개입,
흑색선전물 사건으로 안기부는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바로 같은 해 있는 대선을 앞두고 부산 초원 복집에는 김기춘 전법무부장관과 안기부 지부장을 비롯해 이 지역 시장, 경찰청장, 기무사 지대장, 교육감, 지검장,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모여 선거대책을 논의 했다. “우리가 남이가”,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 영도다리에 빠져죽자”, “민간에 지역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음됐다.
그러나 이 사건 역시 도청을 한 국민당 관계자만 사법처리를 받았다. 당시 이 사건 담당 검사는 박근혜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역임한 김진태고, 담당 부장검사는 박근혜 정부에서 ‘본의 아니게’ 최장수 총리가 된 정홍원이다.
이후에도 유사한 일은 계속됐다. 1996년 4.11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북의 판문점 무력시위 사건과 관련, 1997년 <시사저널>은 안기부 특수공작원들이 대북 공작 와중에 접촉한 북한 대남 공작수뇌부와의 대화 녹음 테이프에 대북식량과 물자 지원을 대가로 무력시위를 요청한 내용이 들어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사건에 대해서도 법원은 총풍 사건의 주범에 대해 “북한에 무력시위를 요청하기로 모의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당사자는 검찰과 법원에서 자신이 무력시위를 요청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서도 북풍 사건이 일어났다. 안기부의 사주를 받은 재미교포 윤홍준씨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북한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취지의 허위사실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 사건 수사는 1998년 3월 21일 검찰 수사 중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화장실에서 자살을 시도하면서 흐름이 크게 바뀌어 증거가 명백한 권 전부장과 사건을 주도한 203실(해외공작실) 소속 직원 5명, 그리고 윤홍준씨만 구속됐다.
당시 203실을 지휘한 안기부 2차장은 사건 당시 대만에 체류 중이었다는 이유로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최근 윤홍준이 기자회견을 한 1997년 12월 11일 국내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안기부 2차장이 “윤 씨의 기자회견 공작을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 안기부 2차장이 바로 김기춘의 뒤를 이어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병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