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이른 출근 시간. 회사건물 1층 로비로 디자인실 팀원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세정 씨는 조금 늦는 모양이다. 팀장이 물었다.
“세정이는? 아직 인가?”
세정 씨는 인기인이다. 그녀의 상냥함은 디자인실 사람들에게 있어 소소한 낙이 된다. 디자인실의 활력소라 칭해도 좋을 것이다. 언제든 기댈 수 있는 기둥이자, 포근한 베개와도 같다. 매끄럽게 눈꼬리가 처지는 세정 씨의 미소. 그녀의 미소를 고달픈 삶의 위안을 삼고 있다. 그만큼 그녀의 밝은 모습은 달달하고 보드랍다. 그런 친절한 세정 씨를 우리 디자인실 사람들은 모두 사랑해 마다치 않는다.
“저기 오네요.”
누군가 세정 씨의 출근을 알렸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세정 씨는 특유의 함박미소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나누기 바쁘다.
나에게는 그녀에 대한 비밀이 있다. 이건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비밀로 해야 한다. 꼭이다.
<아아, 시발… 사람 너무 많아…. 엘리베이터 나중에 타고 싶어….>
방금 세정 씨는 속으로 시발 하고 귀여운 욕을 했다. 많은 사람들에 섞여 엘리베이터에 타고 싶지 않은가보다.
나는 세정 씨의 속마음이 환청이 되어 들린다. 비밀이다. 정말 아무에게도 이야기해선 안 된다. 일목요연 작고 작은 생각들이 모두 들린다. 가끔은 글자가 된 세정 씨 생각이, 머리위로 뱅그르르 도는 현상도 보이고 그녀가 기억을 뒤적이는 듯 할 때는 짤막한 동영상이 재생 될 때도 있다. 가끔 고화질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러고 나면 나는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명확히 보인다. 가령 김 피워 오르는 자판기 커피가 떠오른다던가. 해변에서 그녀가 바달 향해 “야!!” 하고 외치는 동영상이 보인다던가.
“세정이 오늘 회식 나올 거지?”
팀장 물음에 세정 씨가 얼른 대답했다.
“그럼요! 당연한 걸 물으시네요? 왜요?! 저 빼놓고 회식하고 싶으세요?”
<아아, 오늘 회식……. 모처럼 주말인데, 술 마시기 싫어……. 집에 일찍 가고 싶어….>
세정 씨 가벼운 농담에 사람들이 슬쩍슬쩍 웃었다. 술 마시기 싫다는 것 치곤 너무나도 유연한 대처였다. 나도 모르게 사람들 분위기에 동승했다. 불쑥 세정 씨에게 말을 걸었다.
“세정 씨, 술 약하지 않아요?”
내가 운을 띄우자, 사람들이 떡밥을 주워 먹으려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금방 세정 씨와의 술자리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우후죽순 솟아오르는 세정 씨 에피소드들 덕에 엘리베이터 앞 분위기가 후끈후끈했다.
세정 씨만 빼고.
세정 씨는 훈훈한 사람들 분위기에 숨어 나를 가만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세정 씨가 생긋하고 웃었다.
<………………………개새끼…….>
나를 향해 한 말일 것이다. 분명. 왜? 개새끼?……. 왜? 모른다. 왜 그녀가 나를 욕하는 지는 나도 잘 모른다.
오늘 점심 때 정신 상담실 카운슬러에게 1시간을 예약했다. 세정 씨의 속마음이 들리고, 보이는 이 환청과 환각 때문이다. 나는 세정 씨의 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내게 들리고 보이는 이 괴현상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짜 세정 씨의 진정한 마음 소리이건, 내가 만들어낸 가짜이건.
나도 사람들과 다른 동료들과 똑같이 세정 씨의 친절한 모습만 보고 싶다. 그녀가 나를 욕하는 속마음의 환청이 들리 게 너무나 괴롭다. 혹시나 그녀가 나를 정말로 싫어할지 모른다는 짐작은 차치하고 싶다. 겉으론 솜털만큼도 티내지 않는 그녀다. 환청만 낫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카운슬러의 상담실. 안으로 들어서자 야자수의 미니어처 같은 활엽수 화분이 모퉁이에 서있다. 벽이 온통 짙은 밤색의 나무 재질로 되어있다. 카운슬러의 책상도 소파도 따뜻해 보이는 갈색이다. 깊어 보이는 쿠션은 앉아보지 않아도 얼마나 푹신푹신할지 확연하다. 아늑한 나무의 냄새에 안정되는 기분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카운슬러가 물었다. 검은 뿔테안경을 쓴 여인의 차분한 외모가 마음을 찬찬히 가라앉게 했다. 첫 대면이지만 카운슬러에게 신뢰감이 간다. 말끔한 정장차림도 그 신뢰감에 일조하고 있다. 아무래도 제가 좀 미친 것 같거든요? 선상님?
“환청이 들려서요.”
카운슬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 했다. 진료 카르테처럼 보이는 종이에 무언가를 적는 그녀의 볼펜소리가 사각사각하고 귀를 간질였다.
“그래서요?”
“그래서요, 가 아니라 그래서에요.”
카운슬러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녀는 나를 가만 응시하며 물었다. 목소리가 참 편안하다는 느낌이다. 마치 성우 같다. 커피 광고의 성우.
“아니요. 그래서요, 가 아니네요. 저는 그게 궁금해요. 어떤 것이 들리는지.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말씀 곤란하시면 지금은 꼭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부담은 갖지 마세요.”
그녀는 요목조목 설득조로 말을 이어갔다. 어디가 아픈지 알아야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저희 회사 동료가 한 분 있으신데요.”
“네. 회사의 동료 분.”
또 카운슬러가 사각사각 카르테에 무언가를 적었다.
“제가 그 분의 생각이 읽히는 것 같아요. 환청이나 환각으로요.”
“주로 어떤 생각이 읽히는 데요?”
그녀가 갸웃하며 나를 바라봤다. 주로 어떤 생각? 주로?
“주로…… 제 욕이요.”
“욕, 이라.”
카운슬러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검지로 이마빼기 중간을 슬슬 눌렀다. 그리곤 입술을 움직여 “쩝, 쩝, 쯥, 뿝” 하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녀가 게슴츠레 눈을 뜨더니, 물었다.
“혹시…… 이건 제가 그냥 지레짐작 하는 거니까. 연연하진 마시구요. 그 혹시……, 그 분에게 뭐 잘못한 적 없어요? 최근에 조금 사소한, 아니면 굉장히 큰 잘못. 업무상으로나 사적으로.”
업무상? 그럴 리 없다. 나와 세정 씨는 각자 다른 프로젝트에서 뛰기 때문에 부딪힐 일이 없다. 디자인실에서도 그녀를 A그룹이라고 하자면 나는 B그룹이었다. 우리가 업무상 얼굴 붉히는 일은 없다. 있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사적으론 어떤가. 사적으로? 이건 더 없잖아. 나는 세정 씨랑 개인적인 친분이 없는걸. 같이 회사사람들 모여 점심 먹을 때도 말 한마디 안하는 날이 허구하다.
“없는 것 같은데요. 잘못 한 게.”
“그 분과 실제로 사이는 어떠세요? 친밀한 관계인가요?”
“아니요. 얼굴만 잘 알고 같은 사무실이니까, 매일 인사는 꼭 하는 정도에요.”
그녀가 또 입으로 “쩝, 쩝, 쯥, 뿝” 이상한 소리를 냈다. 한참을 그러던 그녀가 말했다.
“아직은 증상만 알아 본 것이기 때문에 확언은 못 드리겠네요. 차근차근 알아가 봐야겠지만….”
겠지만? 뭔가 실마리를 잡았다는 듯 들렸다. 자연스럽게 숨이 멈췄다. 허공의 백색소음까지 모두 녹음하듯 귀를 기울였다. 카운슬러가 던져줄 실마리에 그동안 얼마나 목이 탔는지 모른다.
“의식하고 있지 않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그 동료 분? 께, 죄의식이 있는 건 아닐까 짐작이 들어요. 실제론 아무사이도 아니 시라면서요? 그런데 그렇게 욕을 먹는 환청이 들린다는 건 필시 본인이 동료 분께 욕을 먹고 싶다. 그러니까, 스스로가 동료 분께 욕먹을 만한 무언가를 가슴에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판단이 서네요. 물론 지금 단계로만 봐서요.”
그녀는 ‘아직 이다’, ‘지레짐작이다’, ‘지금 단계다’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내 가슴엔 철썩하고 뭔가가 뺨을 후려치는 듯 하는 통증이 느껴졌다. 욕이 들리는 이유가 내게 있을 것이다 하고 생각은 해봤었다. 하지만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다는 가정을 두고 욕을 먹는가에 대한 건 참신한 발상이었다. 가깝고도 먼, 아니 완전히 다른 생각이었다. 그냥 싫은 것보다 내가 싫어할만한 짓을 했다는 가정. 오해를 풀면 그만일 수도 있겠다. 희망이 솟구쳤다. 환청 쯤 계속 들린다 하여도 괜찮다. 꾸준히 욕을 들어먹지만 안는다면, 그것으로 족할 수 있다.
“선생님. 그러면, 만약 지금 짐작하신 것이 원인이 되고 있다면, 어떻게 하면 증상을 고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정식으로 사과를 해보는 건 어때요. 진심을 담아.”
진심을 담아? 잘못을 했어야 진심을 담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어찌 되었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직장에서 괴로워하는 것 보다는 나았다.
“선물을 한 번 해보세요. 그리고 홀가분하게 스스로를 용서해보는 거죠. 일종의 시도니까요. 어떤가요? 효과를 못 본다고 해도 여러 가지 치료법도 있으니까요. 해보시겠어요?”
“무조건 해야 합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가야 했다. 상담실에서 일어서자, 카운슬러가 말했다.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뵐게요.”
이야기에 너무 집중하느라 시간이 껑충 점프를 했다. 45분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만 같다. 상담실을 벗어나 택시를 잡아탔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도로 위. 세정 씨에게 줄 선물을 생각해봤다.
“세정 씨 이거 드세요.”
“어머? 웬 사탕이에요?”
오늘 길에 시험 삼아 막대 사탕을 사봤다. 세정 씨만 주는 것은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 사무실 사람들 몫도 충분히 사왔다. 깡통으로 하나를 통 째….
“너 밥 어디서 먹고 왔어?”
팀장이 물었다. 와중에 난 세정 씨가 사탕을 먹나 안 먹나만 관찰했다.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요. 하하.”
<…꼴에 친구도 있어……….>
꼴에 친구도 있어. 세정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휙 세정 씨를 돌아보자, 세정 씨는 사탕을 입에 물고 있었다. 세정 씨가 환하게 웃으며 “잘 먹을게요.” 했다. 친절하다. 너무 상냥하다. 그거 200원 이에요. 고마워할 것 없어요. 다음엔 20만원 어치 사줄게요. 1000개 드시면서 천 번 웃어주세요. 하고 말하고 싶을 만큼 상냥하다. 세정 씨가 입에서 사탕을 움직였다. 달그락 하고 작은 소리가 들린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세정 씨가 나를 한 번 더 올려봤다. 세정 씨가 앞머리를 슬쩍 쓸어 넘겼다. 그리고 또…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사탕은 너무 작은 선물 같다. 진심을 담은 선물이라곤 말할 수 없다.
<…초코 말고 딸기 맛 먹을 걸…….>
‘사탕 많으니까, 얼마든지 드세요. 전부 다 세정 씨 주려고 사 온 거니까.’
작은 선물이 아니면 어떤 게 좋을까. 퇴근 시간까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고민에서 깨어나니 잿빛 도시 위로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 앉아있었다. 남들은 모두 자가용으로 퇴근을 했다. 나와 세정 씨만 회사 앞 버스정류장에 우두커니 서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우리가 다른 버스를 탄다는 것이다. 같은 버스까지 탄다면 정말 병원에 입원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침 출근부터 밤 퇴근까지 몇 시간을 그녀에게 욕먹는다면, 미치지 않고 어떻게 버틸까.
“세정 씨 저녁은 드세요?”
저녁은 드세요? 그게 질문인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내게 묻고 싶었다. 엉뚱한 질문이었지만, 세정 씨의 반응은 너무 살갑다.
“그럼요~ 저도 밥 먹어야 살지요. 하하. 왜요?”
<……어색해. 어색해어색해어색해어색해어색해어색해어색해어색해…………>
밥 먹을래요? 제가 살게요. 묻고 싶었다. 하지만 어색해만 수십 번 속으로 외치는 사람에게 어찌 그런 소리를 할까. 밥 먹는 와중에도 백 번은 아니, 밥 먹는 내내 속으로 외칠지 모른다.
“몸에 지닐 수 있는 물건은 어때요?”
카운슬러가 물었다. 이번엔 카르테 따위 들고 있지 않다. 카운슬러는 편히 다릴 꼬고 앉아 나와의 대화에만 집중했다. 상담실의 나무향기가 역시 마음을 놓이게 한다. 나도 집에 통나무를 하나 사놓던가 해야겠다. 나무 냄새 짱이다.
“손목시계 같은 걸 말씀하시나요?”
“시계 같은 거 좋죠. 밥 같은 거 사실 같이 먹자고 권유하는 건 어렵잖아요. 친한 사이도 아니라면 더욱 그렇구요. 꼭 데이트 하자고 작업 거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말씀하기 더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아닌가요?”
정말 난 카운슬러에게 감사해야한다. 내 마음을 정확히 집어주고 있다. 저는 세정 씨 말고 당신에게 먼저 밥을 사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계 같은 것도 상대가 받기 곤란해 하면 어쩌죠?”
“생일을 노려보면 어때요?”
세정 씨 생일. 두 달 전에 지났다. 팀장이 세정 씨 생각해서 퇴근도 한 시간 앞당겨줬다. 친구들이랑 즐겁게 보내라고. 사무실 사람들 모두 한 번 씩 “세정 씨 생일 축하해요.” 말 해줬었다. 내가 “생일 축하해요. 세정 씨.” 했더니 했던 속말이 뭐였더라. 맞다.
<…남들 다 하니까, 이제 와서 축하한다고 하는 것 봐……>
정말 가끔은 넥타이로 목을 졸라 스스로 숨을 끊고 싶다.
“생일은 거진 1년을 기다려야 해요.”
“지났나요? 아아…. 그럼 뭐 축하 해줄 일 없나요? 아무거나.”
아무거나 축하할일? 억지로 만들어서 주라는 뜻이군. 뭘 줄까. 악세서리가 좋다라…. 반지? 아니야. 미치지 않고서야 반지를 주는 건 이상해. 반지를 왜 줘. 결혼이라도 청하는 것 같잖아. 목걸이? 목걸이라…. 그럴싸할지도 모른다. 잠깐! 목걸이? 그것도 연인 끼리나 선물하는 거 아닌가? 뭔가 뉘앙스가 쑥스럽잖아.
결국 카운슬러와의 이야기대로 손목시계를 샀다. 당연히 길거리표는 살 수 없었다. 큰맘 먹고 아르마니의 시계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메탈릭하지 않고 흰색의 미네랄 재질과 금색이 섞인 디자인이 심플하게 보였다. 무엇보다 세정 씨에게 어울릴 것 같았다. 환청을 고칠 수 있다면, 아니 욕을 안 먹을 수 있다면. 이것은 투자다. 나에게 하는 투자. 미치고 싶지 않으면 내야 하는 세금. 국민연금 석 달 치? 제발 나아라.
점심시간 세정 씨에게 포장 된 시계 상자를 건넸다.
“이게 뭐에요?”
세정 씨가 물었다. 눈이 휘둥그레 한 것이 흰자위가 다 보이는 것 같다.
“저 번에… 그, 왜 있었잖아요. 세정 씨 생일. 그 때 제가 선물을 못해서요.”
<…생일? 두 달 전에 지났잖아. 뭐야, 미쳤어. 사람들 앞에서 왜 이래……>
아뿔사. 세정 씨보다 옆에 있던 사무실 사람들이 더 놀랐다. 팀장이 걸걸한 목청을 높였다.
“뭐야? 무슨 선물 이길래, 몇 달 전 껄 지금 주냐?”
“아니요. 지금 준다고 하기 보단, 그… 그, 그때! 아, 제가 그때 사놓고 못 드렸어요. 하하하하하하! 집에 가보니까 아직도 서랍장 안에 있지 뭡니까. 하!… 하! 하하하하하하하!”
놀란 기색이 역력하던 세정 씨가 표정을 풀었다. 푸근한 미소로 세정 씨는 시계 상자를 받았다. 세정 씨가 물었다.
“뭔데요?”
“아, 시계요. 손목시계.”
세정 씨는 포장지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종이를 한 꺼풀씩 벗겼다. 슥 삭 종이가 벗겨지는 소리가 사무실을 꽉 매웠다. 사무실 사람들이 둥그렇게 우리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목을 길게 뺀 사람들의 표정이 가관이다.
“야! 저거 알마니 시계 아니야?”
다른 여직원의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래 아르마니다. 왜 소리는 지르고.
“야! 저거 비싼 거 아니야? 너 무슨 바람이 불었냐?”
“나 저거 본 것 같은데? 저거 일이십 만원이 아닐걸?”
“아! 나도 저 시계 갖고 싶었는데. 내 생일도 저번 달이었는데 왜 저는 안줘요?”
“야 너 부자냐?”
사람들의 말이 밀물 파도처럼 밀려왔다. 망했다. 이러면 선물받기 거북해지는 거 아니야? 세정 씨에 얼굴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이거 얼마 안 나가요.” 하니 팀장이 팔꿈치로 날 쳤다. 치면서 물었다. “얼만데?” 하고. 말문이 막혔다. 몇 십 만원이 얼마가 아닌 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요상해졌다. 세정 씨가 입을 열었다.
“얼마에요?”
“가격이 중요한 가요. 하하.”
세정 씨가 안타까운 듯 웃었다. 그러며 내 앞으로 상자를 다시 내밀었다.
“이렇게 비싼 건, 저 못 받아요. 미안해서…. 마음만 받을게요.”
마음만 받지 말고 그냥 받아요. 좀 받아요, 그냥 좀. 나 좀 살려줘! 아아, 누가 나 좀 살려줘!
말없이 선물 상자를 돌려받았다. 눈치 없는 여직원이 “그럼 나 줘요. 나 가지고 싶었어요.” 말했다. 그러자 팀장이 “눈치 없기는… 저걸 널 왜 주냐!” 호통을 쳤다.
이건 아니었다.
<…뭐야, 완전 창피해……>
창피하구나! 그래. 내가 병신이다. 둘만 있을 때 주면 될 걸. 사람 많은 곳에선 부담스러울 수 있다. 남들 눈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니던가. 나는 침착하게 퇴근을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시계를 내밀었다. 버스 정류장 앞으로 차가 씽씽 달리고 있었다. 세정 씨는 시계 상자를 가만 내려다보았다.
“세정 씨, 그래도 기왕 산건데. 그냥 써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꼭 드리고 싶었어요.”
세정 씨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꾹 다문 입술이 시옷자를 만들었다. 세정 씨는 한숨을 푹 쉬곤 말했다.
“이거 정말로 얼마에요? 말씀해보세요.”
“삼십……”
구만 구천 구백 원.
“그렇게 비싼 걸 어떻게 받아요. 부담 되요.”
<…그걸 왜 받아……>
“그냥, 그냥요. 부담 없이 그냥 쓰셔요. 괜찮아요.”
<……그걸 왜 받아…………내가……당신한테………>
카운슬러가 자기 허벅지를 짝하고 내려쳤다. 내 정신도 번쩍 드는 기분이다.
“그 동료 분, 진~짜 착한 사람인가보다.”
“그 동료 분, 진~~짜 착한 사람이에요.”
카운슬러는 혼잣말처럼 “나 같으면 받겠네.” 읊조렸다. 그리곤 특유의 입소리를 내더니 물었다.
“혹시 이번 일로 선물을 한다는 일에 위축되진 않으셨나요?”
“아니요. 무슨 일이 있어도 줘야겠어요.”
“시계는 다시 환불했어요?”
“아니요. 하려고 했는데, 왠지 못 하겠더라고요.”
카운슬러는 내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기다렸다. 멀뚱하게 나를 바라보는 그 모습은 속내를 털어 놓으라는 조심스런 권유 같았다.
“환불하면 다 끝인 것 같아서.”
“직장을 옮기시는 건, 무리인가요?”
“불가능 한 것은 아니죠. 하지만 지금 직장이 너무 좋은걸요. 동료들과 쌓은 정도 있고, 또 집이랑 가까운 것도 좋고요. 무엇보다.”
“무엇보다?”
모르겠다. 그냥 그만두기 싫다. 이유는 만들면 수십 가진 더 댈 수 있다. 하지만 싫기 때문에 싫다는 이유가 가장 맞는 표현이다. 그만두기 싫다. 욕을 듣기도 싫다. 환청만 안들리면 내 삶은 완벽히 순조로울 것이다.
“…그럼 몰래 줘 봐요.”
“몰래 주라니요?”
“그 사람 모르게.”
본인 모르게 시계를 줘? 술이라도 먹여서 필름을 끊으라는 것인가? 설사 그렇게 줬다고 한들 그게 준건가? 다시 돌려받으면 어떡해.
“그 동료 분께서 잘 쓰지 않는 서랍에 넣어둔다던가.”
“주지 않고 준거네요.”
“네, 실험이라고 생각해요.”
아니다. 그래도 주고 싶었다. 술을 진탕마시면 취할 거다. 취한 사이 기습적으로 줘버리고 도망치자. 한 달에 한 번씩 꼭 회식을 한다. 다음 회식자리를 기다렸다. 매일 가방 속에 시계를 담아 다녔다. 이따금 사람들이 “너 세정 씨한테 관심 받고 싶냐?”, “세정이 좋아하냐?” 물어본다. 관심? 좋아해? 모르겠지만, 욕은 매일 받아먹고 있다. 털어 놓는다면 내가 미쳤다는 걸 들키겠지. 지금 얼마나 세정 씨 때문에 미치겠는지. 세정 씨가 회사를 떠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사무실의 화기애애함, 그 8할은 세정 씨에게서 나올 것이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이 적어도 세 가지였다. 나 자신, 회사 그리고 회사를 위한 세정 씨.
모처럼, 기회처럼, 소낙비처럼 돌아온 회식 날. 하루 종일 세정 씨 기분이 별로 인 듯 했다. 하루에 세정 씨가 몇 번 같은 생각을 했는지 몰랐다. 세정 씨가 걷는 길목마다 녹색 소주병이 떠다녔다. 방울 맺힌 소주잔의 사진과 꿀꺽하고 목 넘김이 시원한 맥주의 광고 동영상도 재생되고 있었다.
<…오늘은 좀 취하고 싶어……>
절호의 찬스. 권하면 얼마든지 마실 것 같았다. 함께 마셔주자. 상냥한 그녀이기에 얼마든 함께 취해줄 것이다. 사람들의 분위기도 내가 주도해야한다. 모두 진탕 취할 수 있게. 생각했지만, 회식은 고급 일식집에서 열렸다. 분위기가 차분한 것이 나를 참 힘들게 했다. “위하여!!”를 위치며 ‘짠’을 하기엔 부적절하게만 느껴졌다.
<…뭐야! 뭐야뭐야뭐야! 고급이고 나발이고 매번 가던 고깃집으로 가자고!…아, 가자고!!!……>
내말이요. 세정 씨.
“오늘은 분발을 좀 해봤어. 우리 디자인실 사람들 고생하는 거 내가 다 알아! 다들 마음 껏 먹어? 응?!”
그래요. 고마워요. 사장님. 저도 오늘이 아니었다면 얼마든 즐거이 먹고 마셨겠네요. 하지만 이 차분한 분위기는 좀 그런 것 같아요. 간부들 접견장소 같잖아요. 사장님. 님 마음은 제가 잘 알아요. 님이시여.
“분위기가 되게 고급이다.”
세정 씨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차분하게 고갤 끄덕였다. 다들 표정에 그늘이 들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술을 마시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다. 적극적으로 까부는 건, 내 장기가 아니었다. 내 나름 최선을 다해야했다.
“아, 오늘은 정말 마시고 싶었어요.” 내가 말하자, 세정 씨가 “정말요? 저돈데!” 받았다. 그러자 팀장이 “야, 너네 그럼 같이 앉아. 요즘 분위기도 좋던데.” 했다.
그런 말은 하면 아니 되십니다. 팀장님. 또 어색해지면 다 물거품이 되요. 하지만 세정 씨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세정 씨는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서며 내 옆자리로 왔다.
“그래요! 우리 같이 마셔요. 취하고 싶었어요.”
<…잘 됐네! 짜식 가끔은 도움이 될 때도 있고만!……>
세정 씨가 싱글벙글 웃었다. 사람들 눈초리에 훈훈한 히터가 달려 있는 듯 했다. 나와 세정 씨의 투 샷을 보는 눈빛이 그랬다. 얼레리꼴레리~ 하는.
순조로웠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비싼 술을 세정 씨와 각자 한 병씩 비웠다. 다른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알딸딸하게 오른 술기운이 슬슬 작전의 시간이 임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남들 몰래 세정 씨의 가방을 찾았다. 검정색 가죽가방.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이 세정 씨의 뒤편에서 포착되었다. 세정 씨를 보았다. 양 볼이 발그레 해진 것이 취한 게 틀림없었다.
“더 마실 수 있죠?”
<…못 마신다고 하면 때릴 줄 알아……>
세정 씨가 내게 물었다. 나는 “그럼요~ 당연하죠.” 답하며 그녀의 가방을 슬쩍 내게로 당겼다. 아무도 모른다. 세정 씨에게 건배를 외치며 가방으로 손목시계 상자를 밀어 넣었다. 작전이 순조롭게 완료되며 회식이 끝났다. 뿌듯하게 일식집을 나섰다. 담배를 하나 태우려는데 팀장이 말했다.
“야! 니가 취하게 했으니까, 세정이 집까지 바라다 줘.”
응?
“세정이 지금 똑바로 서지도 못해! 다들 피곤하니까! 니가 책임져.”
팀장은 호통 치듯 말하며 찡긋하고 윙크했다. 차라리 그냥 나를 유혹하려고 윙크했다고 말해줘요, 팀장님. 세정 씨를 부축 비스무리하게 지탱하자 사람들이 파이팅, 잘해봐 하고 속삭였다. 팀장은 물론 사무실 사람들의 눈빛이 하트모양으로 물결치는 것 같았다. 팀장이 다가와 귓속에 속삭였다.
“고백 타이밍.”
고백을 지금, 고백 같은 소리를 해야 하던 말 던 하지. 내가 미친 걸 알면 다들 얼마나 놀랄까. 세정 씨를 택시에 태웠다. 잠이 들어 버린 것 같다. 잠든 덕택에 마음속 말이 들리진 않는다. 나도 술기운이 오르고 있었다. 약간의 두통도 느껴졌다. 택시 창문을 슬쩍 내리고 창밖의 가로등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익숙한 거리가 스친다.
“세정 씨, 다 왔어요.”
세정 씨를 흔들어 깨웠다. 다행히도 금방 눈을 떴다.
“집이에요?”
<…아아, 왜 깨워………>
“네 집이에요.”
“열쇠, 열쇠 열쇠.”
정신이 아직 완전치는 못한 듯 했다. 세정 씨는 택시 뒷좌석에 앉아 열쇠타령을 했다. 아직 문 앞까지 오지도 않았다. 생각하는 순간 번뜩하고 손목시계가 뇌리를 스쳤다.
“어?”
세정 씨가 멍한 눈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뭐지?”
역시나. 세정 씨가 손목시계를 꺼내 들었다. 그녀는 상자를 빙글 빙글 돌리며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그리곤 급하게 포장을 뜯어냈다.
“저기요….”
세정 씨가 나를 불렀다. 침묵이 찾아왔다. 온 몸을 내리 찧는 침묵. 침묵을 깬 건 다행히도 기사아저씨였다.
“아, 계산하고 얼른 내려요?”
“아, 죄송합니다. 세정 씨 내려요. 어서.”
세정 씨는 점차 얼굴이 굳어갔다. 세정 씨가 나를 따라 택시에서 내렸다. 더 이상 그녀를 바라볼 수 없을 것 같아 고갤 돌렸다. 바보였다. 나는 그대로 택시를 타고 갔어야 했는데.
“이게, 왜 또 줄려고 해요?”
“….”
“제가 싫다고 했죠. 부담된다고 했잖아요. 왜 자꾸 주려고 해요. 왜 이러는 거에요.”
확실히 화가 나있었다. 분명히 화난 말투다. 내가 꺼낼 말이 없는 것을 보니, 잘못도 내가 큰 잘못을 한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그 시계 좀 받아주면 안되요? 내가 그러면 정말 편해 질지도 모르는데.
“대답, 안 해 줄 거에요?”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안 나왔다. 머리가 흐리멍덩해졌다. 입이 열리질 않는다.
<…………개새끼…………………………>
세정 씨가 상자를 냅다 던졌다. 힘없이 나가떨어진 상자가 뒹구르르 아스팔트 위에서 굴렀다. 내가 시계 상자를 돌아보는 사이 세정 씨는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上편 끝 下편은 오늘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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