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병제로의 전환을 당연시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병제로의 전환은 진보진영에서 오랫동안 추진하려고 노력하던 정책방향이고
보수는 안보를 이유로 징병제를 주장합니다.
따라서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깊은 생각 없이 모병제를 당연히 하고 있습니다.
모병제를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재의 대한민국 군대조직, 시스템, 제도 등을 합리화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모병제=군대합리화 일까요?
모병제로의 전환이 마치 모든 군대 문제에 대한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것 같아서
모병제로 전환할 때 반드시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 하나를 제시하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신다면, 모병제로의 전환을 함부로 이야기하기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우선 모병제 징병제 이야기 전에 한가지를 확실히 하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모병제와 징병제는 빛과 어둠처럼 서로 반대관계인 것 같지만 사실은 빛과 같이 그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습니다.
아예 군대가 없는 나라에서부터, 전 국민이 군대에 가야만 하는 나라, 남자만 징병하는 나라, 남여 모두 징병하는 나라 등 종류가 많고
징병제를 실시하더라도 여러가지 대체복무를 인정하거나, 비전투병과를 선택할 수 있는 나라도 있습니다.
모병제를 실시하더라도, 전시에는 전 국민을 동원할 수 있는 전시 징병제를 운영하는 나라도 많고, 병력의 일부를 용병으로 채우는 나라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세세한 부분에서 더 많은 차이가 존재합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이런 징병제와 모병제 사이의 디테일한 부분에서의 차이는 그나라의 역사, 경제, 안보상황에 따라 결정된 다는 것입니다.
징병제가 근간이지만 모병제적 요소를 가미할 수 있고, 모병제로 보이지만 실제로 징병제적인 요소가 많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징병제와 모병제의 논의는 단지 그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이 자신의 나라 상황에 맞춰 가장 적합한 정책들을 선택하여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군대의 합리화 역시 징병제의 문제가 아니라 군을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모병제와 징병제의 토론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은 군대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운영하여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강군을 만들것인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나라를 지키는 비용을 누가 지불하는냐에 있습니다.
국방의 의무는 자신의 나라를 위협하는 세력이 존재하여,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해야만 할 때 누가 제일 앞에 나가서 총을 맞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모병제 아래서는 지원한 군인들이 나가서 전투를 수행할 것이고, 징병제 아래서는 모든 국민이 참여합니다.
여기서 대체복무나 국방세가 의미가 없는 것이,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자신의 다른 것이 아닌 목숨을 지불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 다른 모든 의무와의 차별점이 발생합니다. 돈도 아니고 시간도 아니고 목숨을 지불 한다는 것.
따라서 모병제와 징병제를 논의할 때 누가 이러한 목숨을 지불하는 비용을 낼 것인가가 반드시 논의되어야만 합니다.
모병제를 시행할 경우 당연히 부자는 군대를 가지 않습니다.
모병제를 당장 시행하고, 병사에게 월급으로 200만원을 지급한다고 해봅시다.
한달에 200만원 이상을 벌 수 있는 사람은 군대에 가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가장 앞에서 죽거나 다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한달에 200만원이 충분하다고 느껴서 지원한 사람들입니다.
모병제를 시행한다고 하였을 때, 국가가 아무리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해도
반드시 일부만 전쟁에 나가 생명의 비용을 치릅니다. 부자가 가난한자 뒤에 숨는 제도를 과연 정의로운 제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국방의 의무를 민주주의의 대한 비용이라 생각합니다.
국토와 주권자의 생명이 주권과 민주주의의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북한에 이기지 못했다면 지금쯤 일당독재 3대세습 아래서
우리의 주권은 모두 김정은이 행사했을 겁니다. 미국을 포함한 유엔의 참전이 정치적이었다고 해도
당시에 한반도에서 피를 흘리신 군인분들은 우리의 민주주의와 주권을 지켜주기 위해 피를 흘린 것입니다.
모병제가 곧바로 비민주적이고, 부정의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모병제를 선택하기 전에 정의와, 누가 민주주의를 지킬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저는 아직 모병제를 주장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징병제를 실시함으로써 우리는 나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비용을 평등하게 치워왔습니다.
아버지가 소작농이거나, 공장 노동자여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신 분도,
아버지가 기업오너라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신 분도
모두 군대에 가서 같은 비용을 치루어 왔습니다.
군대를 현대적으로 개편하고,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모병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실 모병제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인구의 문제와 비용문제 때문입니다.
낮은 출산률로 인해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모병자원이 줄어들어 군대조직 개편과 현대화는 필수입니다.
청년층이 줄어들수록 그들이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군대에 갈 때 발생하는 기회비용이 증가합니다.
예전처럼 애를 많이 나아서 거의 무한으로 병력자원을 공급받던 시스템이 이제 끝난 것입니다.
그럼 비용문제와 인구문제로 인해 당연히 모병제로 가야 하는가?
그전에 저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비용을 누가 내는 것이 정의롭고 민주적인가가 반드시 한번은 문제가 될 것이고
모병제를 주장하시는 분도 꼭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입니다.
서양에서는 이 문제의 일부를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해결하는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는 귀족가문 청년들이 장교로 복무하고, 미국에서도 고위층의 자녀들이 육해공군의 장교로 근무한 뒤 전역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면서도 명예로운 일로 인정하고, 앞으로 사회생활을 위한 필수관문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물론 미국과 영국의 경우 불합리한 전쟁을 몇 번 수행하는 바람에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된 점도 있습니다.
조금 장황하게 글을 이어왔는데, 제가 하고 싶은말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만약 북한이, 혹은 일본이, 혹은 중국이 지금으로서는 예상할 수 없었던 사유로 우리의 주권을 위협할 때
우리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가동한다면, 가장 앞에서 비용을 치를 사람이 누구인가
우리 중에서 가난한 사람인가, 아니면 모두인가
만약 우리 중 일부만 그런 의무를 이행하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평등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런 것이 평등하고 정의로울 만큼의 제도적 보장이나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가
그런 시스템과 제도를 만든다면 과연 어떤 제도와 시스템이어야 하는가
모병제를 실시하더라도 전시징병제라면 이론적으로는 전시에 모두가 같은 비용을 치루는 것으로 볼 수 있고
평시에는 대체복무나 세금 같은 여러 장치들을 설치해서 평등을 추구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장치들도 완벽하진 않지만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정도로 정교하게 설계한다면
괜찮을 거라 봅니다.
그럼에도 군대문제를 민주주의의 비용문제로 보는 관점에서 꼭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이런 관점 없는 모병제 주장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이 징병문제에서 비켜있음으로서 프리라이더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민주주의를 누리기 위해 같은 비용을 치뤄야 하는가?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징병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여사, 메퇘지란 용어가 불편하고, 유리천장, 독박육아가 불편하고, 온갖 성차별이 불편하다면
여성이 프리라이더라는 사실에도 불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