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생각 없이 겪었던 일을 적었더니 베스트를 갔네요.

http://todayhumor.com/?humorbest_665468 <오토바이 셋 이상 타지 마세요>

제 기억 속에 오토바이 사고와 좀 비슷한 느낌으로 각인되어 있는 사건을 하나 더 적어봅니다.

제가 초딩때였습니다.

아마도 5~6학년으로 기억합니다.

옛날에는 컴퓨터도 없었기 때문에, 학교 끝나면 동네 아이들과 노는 것이 일상이었죠.

학원 같은 거 다닌다고 해도 보통 속셈학원, 피아노, 태권도 등 1개 정도만 다녔었고..

애들이 바빠서 못놀고 그런 시절은 전혀 아니었죠...

제가 살던 곳은 소도시였고 아스팔트 길 전후좌우로 골목이 참 많은 단독주택 밀집지역이었습니다.

주변에 사는 꼬마들은 거의 함께 노는 동무들이었죠.

거기다 모두 부근의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고...

제가 고학년이었고 학교에서 주번을 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선도부 같은 거죠..

그래서 평소에 어울리는 꼬마들이 아니더라도 얼굴 정도는 많이 알기도 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 친구집에 어머니를 따라 갔습니다.

집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곳이어서 평소 그 동네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는데,

암튼 어머니 친구집에는 미취학아동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친구분과 친구분 집에서 대화 나누시고, 저는 그 꼬마를 돌보면서 마당과 동네를 왔다갔다 하며 놀고 있었습니다.

집밖에 나오니 골목에는 형제 둘이 놀고 있었습니다(아마 형이 초딩3~4학년, 동생은 1~2학년 정도).

근처 정육점 형제였고, 저는 역시 얼굴 정도는 아는 애들이었습니다.

둘이 손잡고 학교에 등교하는 모습도 본 적이 있어서 '우애좋은 형제' 그런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정육점 근처에는 슈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슈퍼에 냉장고가 교체되었나 봅니다.

냉장고 종이박스가 밖에 펼쳐져서 버려져 있더군요.

그러자 정육점 형제들은 그 커다란 박스를 다시 직육면체 모양으로 만들어놓고 동생은 안에 들어가고 형은 밖에서 흔들고 웃으면서 놀고 있었습니다.

저는 골목에서 꼬마와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다시 마당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꼬마네 집이 2층이어서 2층으로 꼬마와 함께 계단을 오르는데 둔탁한 소리와 함께 뭔가 난처한 소리 등이 들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난처한 소리는 기사님 목소리였던 것 같습니다.)

다시 꼬마와 함께 계단을 내려와서 집 밖으로 나가니.

아까 정육점 형제들이 놀던 박스가 엄청 큰 트럭 앞바퀴 아래에 납작하게 눌려 있었습니다.

(이글 쓰면서 트럭 크기 검색해보니까 8톤 정도가 제 머리속 이미지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냉장고 박스가 완전히 폐지 접은 듯 가지런히 접혀 있어서 영락없이 '빈박스구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니 기사님은 트럭 앞바퀴 쪽으로 내려서 있었고 뒤 쪽으로 정육점 큰아들이 보였습니다.

'동생은 어딨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동생 모습은 안보이고 그제서야 정육점 큰아들 표정이 예사롭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트럭 앞바퀴에 눌린 박스를 보는데, 지금도 그 장면만큼은 생생한데요.

분명 좀 전까지 시야에는 황갈색 커다란 박스만 보였는데 갑자기 스물스물 빨간 액체가 밀물처럼 밀려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제 옆에 있던 꼬마 눈을 얼른 가렸습니다. 다행히 꼬마는 못봤습니다.)

저도 어렸지만, 큰 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 어머니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다음은 기억이 전혀 안남.

그렇지만 이후 정육점 부부의 슬퍼하는 모습, 이 사고로 인해 우리 동네에는 오랜 기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는 것.

정육점 아저씨는 6개월이 못되어 이사를 간 것(사고 때문에 이사갔는지는 모르지만...),

슈퍼 아저씨는 단 한 번도 정육점에 들르지 않아서 동네 사람들이 '좀 너무하다' 그런 뒷말이 돌았다는 것 정도가 생각나네요.

물론 슈퍼 아저씨는 직접적으로 잘못한 것도 없고, 법적 책임(?)을 질 사유도 없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박스도 슈퍼에서 나온 거고, 트럭도 슈퍼에 물건 배달하러 오는 길이었거든요.

아저씨는 겸연쩍거나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러셨는지는 몰라도, 그래도 동네사람들은 정육점에 위로라도 건네야 하는데 안그랬다고 아줌마들끼리는 뒷담화를 하더라구요.

그리고 저도 죄책감까지는 아니지만 괴로운 느낌에 좀 시달렸습니다.

하다못해 제가 그 현장에 조금만 더 머물렀더라도 트럭이 박스를 빈박스인줄 밟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거든요.

이후로 제가 기억하는 것은

체육수업때문인지 제가 운동장에서 교실로 들어가는데, 정육점 큰애가 자기 엄마가 손을 잡고 조퇴를 하고 학교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마 전학가기 전 마지막 날이었나 봅니다.

그 후로 저는 그 애를 못봤음..

그 때 고개를 푹 숙이고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엄마를 따라가는 그 애의 표정이 초등학교 6학년인 제게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너무나 강렬하게 머리 속에 들어왔었습니다.

P.S.

나중에 넥스트에서 '굿바이 얄리~' 하고 부르는 '날아라 병아리(94년 作)' 그 노래를 저는 듣기가 어려웠어요.

노래 들으면 사고 생각이 났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