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한지 십수년이 지나서 요즘 어떤지는 잘 모릅니다.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안정환선수가 헤딩골을 넣었을 때, 전 부대원의 환호성이 통일대교가 떠나가라 퍼졌습니다. 저는 빼구요. 모든 초소에 이등병 일병이 다 투입되어 근무를 섰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병찌끄래기였는데 사수가 되는 웃기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건 재밋는 에피소드일 뿐입니다만.
군대는 남에게 말못할 부당함이 참 많습니다.
각자의 사정이라는게, 큰 문제를 풀 엄두가 안나게 꼬아버립니다. 사병의 사정, 부사관의, 장교의, 군납업체의, 국방부의, 그리고 나라의 사정들이 다 있습니다. 먹이사슬의 제일 아래 우리 사병들은 그저 고래같은 국가에게 있어서 보이지도 않는 플랑크톤같은 존재입니다. 국가는 우리에게 소중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겠죠.
오유에서는 베스트 글만 읽는 편입니다만 요즘 군대에 관한 글이 많이 올라와서 좀 읽어봤습니다. 옛 생각이 많이 납니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느꼈던일들, 당연한 희생이라는 감상에 좌절을 보상받을 뿐이었죠. 남에게 말해봤자 그저 군대에서 축구 '보는' 이야기일 뿐이니까요.
저는 국가가, 혹은 국가의 통치권자들이 전투에 필요한 능력은 남자가 우수하고, 여성은 우수하지 못하다 혹은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일견 여성에게 모욕적인 부분이 있는 판단입니다. 저는 페미니스트들이 깨어있다면 언젠가 국가의 이러한 차별적 판단을 재고할것을 요청하리라 믿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바라는 진정한 양성 평등이니까요.
하지만 국가도, 이런 높아진 시민 의식에 맞추어 장병에 대한 복지를 크게 개선하는것이 선행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하거나, 급여를 올리거나, 훈련을 전문화하고 집중화하거나 하는 여러가지 이슈들이 해결되고나면 어떻게 될까요?
일자리문제에 기여하게 되는것은 차순위고, 주머니 두둑한 군인들이 찌질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전 이게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좋은시설에서 평균급여를 받느며 열심히 훈련하는 군인이 마치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군인들처럼 멋있어 보일것입니다. 시민들의 시선이 달라지면, 여성들의 목소리도 높아질수 있습니다. "우리도 남자에 뒤지지 않는다." , "여성에게 군인이 될 권리를 달라." 이렇게요.
이런것들은 각자의 사정이란게 실타래처럼 엉켜있어서 풀기가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나씩 천천히 풀어나가면 남녀의 문제, 시민사회의 문제, 국가제도의 문제가 하나씩 해결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상병이었을때 사귀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PX에 비치된 전화기로 이별통보를 받는 도중에 전화를 끊었습니다. 점호시간때문에요. 그리고 제가 서른이 되었을때 제가 일하던 직장으로(하필 성인용품점에 일하고 있었습니다)전화가 걸려왔었어요. 결혼한다고 말해야할것 같아서 물어물어 전화했다더군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그때 왜..
암튼 이야기가 샜는데, 군대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한없이 비루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그 비루함을 국가가 우선 최대한 없애야 양성평등에 대해 대화할 장이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방관, 청소부, 공장노동자 모두 마찬가지 입니다. 시민의식의 변화는 국가가 기획할 수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진정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드는것은 그들의 직장을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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