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되는 날을 알았던 만해 한용운
[1942년 가을쯤인가해서 당시 문학계의 마당발 이서구가 만해 한용운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병문안차 찾아 갔다.
만해는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시달리던 중 병세가 악화되어 입원해 있던 중이었다.
만해는 찾아온 이서구와 사회상과 전쟁상황 그리고 일제총독부의 동태등을 이야기 하면서 천기누설을 하고야 말았다.
"내년부터 계산하여 186 후(候)뒤 5 후(候)안에 일제가 망하네. 조심하고 자중하게. 다른사람에게도 알려서 희생당하는 일이 없도록 힘써 주게. 지금, 변절한 사람에게도 알려서 조심하도록 해 주게"
"예? 후라니요?"
"候, 5 일간을 候라 하잖아. 계산을 해보게 언제 쯤인가."
이서구는 반신 반의 하면서 병원을 나왔다.
당시 총독부에서는 "제거할 조선인 요인 50인 명단"을 작성하여 전황이 아주 불리하여 조선을 포기 해야 할 상황이 되면 그들을 처치할 계획이었다.
그 50인에는 조선인 지도자 모두가 포함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명단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여 조선인 지도자 중에는 일제에 협력자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강제징병 독려 강의가 그 좋은 예다. 그들은 변절자로 낙인이 찍혔다.
일제가 이런 경우를 노려서 의도적으로 그 명단을 조금씩 뿌려 댔다고도 볼 수 있다.
만해는 변절해가는 동지들을 보고 몹씨도 가슴아파했다.
이글을 읽는 독자는 만해가 예언한 일본 패망일을 계산해 보시기 바란다.
만해의 일본 패망일 예언은 적중하였다.
그런 정확한 천기 누설이 화근이었는지 1944년에 그 토록 염원했던 조국 해방을 보지 못한 채 영원히 눈을 감았다.
만해는 일본 패망일 한 개만 예언한 것이 아니다.
만해와 가까이 지낸 인사들의 말에 의하면 조선이 독립한 후 10년 안에 조선 민족이 또 한 번 큰 시련을 겪는다고 하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겠다...
이서구는 만해의 말대로 몇 몇 인사에게 만해의 말을 전하였으나 아무도 믿지를 않더라고 했다.
이서구는 일본왕의 무조건 항복의 연설을 듣고서야 만해가 천기 누설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만해, 그가 승려이면서 독립 운동가요 시인이었다는 것은 알면서도,예언가였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