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김성일 경희대학교]
학술단체협의회와 <프레시안>은 이명박 정부의 지난 4년간의 각 분야별 정책을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난 10월 29일 학술단체협의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을 토대로 각 분야의 전문가의 글이 실리고, 나중에는 책으로도 묶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스튜어트 홀의 명저 <대처리즘의 문화 정치>에 대응하여
라는 책이 나올 시점이다. 왜냐하면 올해는 총선과 대선을 통한 급격한 권력 재편이 예고되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된 문화 영역에서의 성과 진단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세세한 발자취의 추적이 실증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이명박 정부를 문화적 관점에서 진단한다면 그 어느 정권보다도 '맑고 투명'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는 곧 정치 과정에서 요청되는 현란한 수사학의 부재가 보여주는 '은유의 빈곤'과 신자유주의적 생활양식의 내면화를 가능케 할 (그람시적 의미에서) 참호와 요새, (알튀세적 의미에서)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의 작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문화 정치의 실패'로 요약된다.
위와 같은 평가는 <대처리즘의 문화 정치>에서 주목하고 있는 다음의 사항들, 즉 제도 정치의 장악이 아닌, 도덕적·지적 리더십의 확보, 이데올로기의 훈육적 효능, 새로운 수준의 문명 내지 국가상 제시를 통한 대중적 동의 여부에 기초한다. 이런 사항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문화적 진단 혹은 문화 정책에 대한 평가에 있어 핵심적 분석 틀을 제공한다. 즉, 이명박 정부는 국정 운영에 있어 도덕적이고 지적 리더십을 확보했는가, 사회 통합을 가능케 할 이데올로기의 작동이 원활이 이루어졌는가, 질적 도약을 통해 도달해야 할 국가적 비전이 어떻게 제시되었는가의 문제를 통해 진단할 수 있다.
첫째, 이명박 정부가 도덕적·지적 리더십을 확보하며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잡았는가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2008년에 발생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는 이명박 정부에게 향후 국정 운영의 방식을 결정짓는 중대 사건이었다. 즉, 국민과의 쌍방향 소통이 아닌 국민에 대한 일방적 소통으로 국가를 운영하게 만들었다.
'치안 통치'는 이러한 국정 운영을 반영하는 구체적 사례이다. 치안 통치란 국가 권력이 시민 사회의 제 요구를 민주적 절차를 통해 조정·관리하지 않고 공권력을 앞세워 제압하는 독선적 지배 형태이다. 국가 권력은 '국가와 사회 안전에 대한 위협'을 빌미로 불안을 상시화했고, 그에 대한 처방으로 시민적 권리의 요구나 사회적 소수 집단을 위협 요인으로 침소봉대(針小棒大)한 후, 문제 해결을 위해 공권력 투입의 필요성과 엄정 대처를 공론화해 갔다.
그런 의미에서 치안 통치는 법치주의를 중단하고 공권력을 통한 폭력을 구사하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가령, 국가는 용산 참사와 같은 저항을 '예외 상태'로 만든 후, 신속한 즉결 심판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선전하며 즉각적 진압에 나섰다. 왜냐하면 예외 상태는 법의 효력을 정지시킴과 아울러 폭력적 해결책을 최우선으로 선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대중의 자율적 실천도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로 둔갑되었다. 가령,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를 거치며 이명박 정부는 무려 1300여 명을 입건하여 구속 기소자 71명을 포함한 1180여명을 기소했다. 이는 곧 동의와 타협을 이끌어낼 도덕적·지적 리더십의 확보가 이명박 정부에게 있어 처음부터 부재한 혹은 불가능했음을 보여준다.
둘째, 이명박 정부는 사회 통합을 가능케 할 이데올로기의 창출 및 원활한 작동을 위해 어떤 문화 정책을 펼쳤는가의 문제이다. 지배 이데올로기의 공고화는 사회 갈등을 제도화하는 가운데 국가 권력의 가치 체계를 대중에게 내면화시킨다는 점에서 문화 정책의 핵심이 된다.
문화 정책은 이명박 정부에 와서 정치적 논란과 선정적 가십 사이를 오가며 세간에 큰 이슈를 자주 만들어냈다. 가령, 독립영화전용관, 영상미디어센터, 예술영화전용관의 기존 사업자에 대한 교체,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의 예술인회관 사업에 대한 지원 재개, 한국작가회의에 대한 지원금을 시위 불참 확인서와 연계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결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인 위원장 사태, 국립극단 해체와 전 단원의 정리 해고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대중적 이목을 끌었다.
무엇보다도 위의 사건들은 문화 정책을 문예론적, 경제주의적, 도구적 입장에서 수립·집행하는 가운데 나타났다. 문화 정책에 대한 문예론적 접근은 문화 엘리트주의와 연결되는데, 이로부터 새로운 감수성과 스타일의 부상에 눈 감거나 기성화된 예술만을 강조하는 배타적 장르주의 혹은 전문가주의가 횡횡했다. 2008년 예술의전당 관계자가 클래식 전용 공연장이라는 이유로 인순이의 공연을 불허한 사건은 이러한 정황을 보여준다.
한편, 문화의 세기에 문화를 경제주의적 관점으로 보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지나친 산업·상업적 접근은 문화 자체의 고유한 가치까지 자본의 논리로 포섭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이명박 정부의 과도한 경제주의적 태도는 국정 운영 전략에서 문화 정책을 산업과 개발 정책의 하부 영역에 설정한 점에서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문화 정책의 도구적 활용은 4대강 살리기 사업, 도시 개발 사업의 부가 가치 창출 요인으로 문화 정책의 역할을 적극 부각·동원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문화 행정의 비민주적 장악 역시 문화 정책을 도구화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 대대적인 매카시 선풍을 일으키며 법적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들을 해임하고 보수 인사로 교체했는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김정헌 위원장 사건은 대표적 사례이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는 어떤 국가 발전의 상을 제시하며 대중을 이끌었는가의 문제이다. 정권 교체를 이룬 이명박 정부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서는 '기업 프렌들리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장관 및 기관장 임명 과정에서 나타난 '고소영 사건'과 잇따른 상위 1퍼센트만을 위한 정책(법인세 인하와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강부자 감세' 정책, 교육 시장화, 보건의료 시장화)은 이명박 정부의 도덕성 및 국정 기조(신자유주의 정책)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이로부터 국민적 저항은 거세질 수밖에 없었고, 국정 지표의 슬로건을 '녹색 성장', '공정 사회', '친서민 공생 발전'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수사는 국민들에게 전혀 먹혀들지 못했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 노선을 따르는 이상 이명박 정부가 신경 쓰는 혹은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위와 같은 정황은 두 국민으로 분화되는 사회 양극화에 기인한다. 이때 무한경쟁에서 낙오되어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배제로 주변화 되는 다수의 사람(대중)들은 삶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받았다. 가령, 구조 조정에서 이루어진 실직과 명퇴는 예외적이 아닌 정상적 상태로 되어 갔다. 이로부터 국가의 주요 책무였던 복지 제도는 해체되고 시장 논리가 전면화되었으며, 대중의 삶은 사회적 보호의 문제가 아닌 법과 질서의 문제로 분류되었다. 즉, 시장에 참여할 수 없는 무능력은 범죄로 취급됨과 동시에 이들의 문제는 사적인 문제로 치부되었다. 이 속에서 국가는 대중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희망의 정치가 아닌, 엄정한 공권력을 앞세운 억압의 정치에 기초하며 국가의 상을 만들어갔다.
요컨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문화적 독해 및 문화 정책에 대한 평가는 상징 조작과 여론 동원이라는 문화 정치의 기본조차 수행하지 못한 무능력으로 요약된다. 역대 정권 중 가장 폭압적이라 평가되는 전두환 정권조차 '3S' 정책을 교묘하게 활용하며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역설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문화의 세기라 지칭되는 문화의 급격한 부상 속에서 문화적 상상력의 빈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공권력을 앞세운 일방적 통치방식은 지배 권력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매우 '맑고 투명한' 정권이었다. 또한 그 누구도 은유와 상징 속에 은폐된 지배 권력의 욕망을 징후적으로 독해할 필요가 없었다.
출처 :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12020908384784526&linkid=4&newssetid=1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