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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 저와 마음을 나누었던 바둑이 로미.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해 11월 11일.
용돈을 차곡차곡 모은 5만원을 들고 명동에 옷을 사러 갔던 저는
길가에서 강아지를 파는 좌판을 보게 됩니다.
보통의 개파는 좌판을 떠올리기엔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철제 테이블에 밍크카펫이 깔린 그곳엔
아이들이 춥지 않게 작은 히터까지 마련되어 있었고
닥스훈트, 코카스파니엘, 요크셔테리어, 포메라니안, 비글, 말티즈...
소위 몸값 좀 하는 작고 예쁜 순종견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때 제 눈에 들어온건 그 테이블 아래에 버려지듯이 놓여져있던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였습니다.
잡종, 똥개, 발바리, 믹스견 등으로 불리는 아이들 다섯마리가
좁아터진 바구니 안에서 마구 포개진 채로 추위에 잔뜩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네요.
당시 저는 예쁜 순종견을 살 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바구니의 그 아이들을 못본 척 지나칠 수도 없었어요.
잠시 예쁜 옷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그보다 훨씬 더 끌리는 무언가가 느껴졌죠.
그걸 저는 인연이라 믿습니다. :-D
바구니 앞에 앉아 바둑이들을 한마리 한마리 안아올려 눈을 맞춰봅니다.
짧은 순간, 저와 교감을 나눈 녀석!
활발하면서도 느긋한 눈빛으로 제 눈을 오랬동안 바라봅니다.
아기강아지가 겁도 안먹구요.
딱 이 아이다 싶어 덥썩 안고 얼마냐고 물으니
원래는 30,000원인데 어린 학생이니까 25,000원만 내라면서
제가 안고있던 강아지를 쏙 데려가더니 비닐봉지에 받쳐서 줍니다.
잠깐 당황한 제 표정을 읽은 그 아저씨는 씩 웃으시면서
바구니에 담겨 있던 애들은 안팔리면 그냥 시장에 내다 팔려고 했던 아이들이라 배변교육이 전혀 안돼있어서
혹시 집에 가다가 학생옷 버리게 할까봐 싸서 준거라고 그러십니다.
하지만 그 똑똑한 강아지는 집에 오는 길에는 물론이고
저희집에 도착해 첫 배변부터 화장실을 알아서 찾아간 천재강아지였답니다.
그 날, 그렇게 비닐봉지에 싸여 저에게 온 그 아이는
일생을 저와 함께 하다 2007년 3월 26일...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저를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그렇게... 천사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로미' 입니다.
동물과 함께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람이 동물에게 주는 사랑보다
동물들이 사람에게 쏟아주는 일생을 건 사랑이 더 크죠.
15년 남짓, 저를 끔찍이도 사랑해 준 친구.
오늘로 무지개다리를 건넌지 정확히 2216일일째 되네요.
어떤분들은 이제 떠나간 아이 그렇게 붙잡고 날짜 세지 말고 마음에서 놓아주라고 하시지만
로미가 천사가 된 날짜를 도저히 핸드폰에서 지워낼 수가 없어요.
그땐 너무 경황이 없고 마지막 배웅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해
그 아이 마지막 길이 서럽고 외롭진 않았을지
지금까지 마음에 시리게 남아 그날이 떠오릅니다.
그 아이가 떠나고 차갑게 식을 때까지 몇시간을 보내지도 못하고
그 아이와 같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아직도 몰랑하고 부드러운 그 아이를 안고 얼마나 울고 또 울었는지.
온 마음을 저에게 쏟아주었던 그 아이를 보내며 제가 해줄 수 있는거라곤 고작,
볼품없는 박스에 폭신한 새 담요를 깔아 그 아이를 눕히고
하도 울어 벌겋게 부은 얼굴을 폴라로이드로 찍어 옆에 넣어주고
언젠가 그 아이가 낳았던 이쁜 애기들 사진과 그 아이의 옷들, 장난감들, 좋아했던 많은 것들...
그리고 제가 얼마나 그 아이에게 고마워하고
그 아이의 존재로 제가 얼마나 따뜻할 수 있었는지
늘 안아주며... 만져주며... 눈으로만 얘기했던 제 마음과
그 천사같은 아이를 평소엔 믿지도 않는 하나님께 부탁하는 긴 편지...
그렇게 아이가 담긴 박스를 집 바로 옆 나무 밑에 묻어주었습니다.
어린 중고등학교 시절... 방황하던 어린 시절... 애인이 생겼다고 그 아이에게 조금 소홀해졌을 때도...
이별을 겪으며 방안에 쳐박혀 엉엉 울 때도... 죽고싶을만큼 힘들었을 때도...
항상 따뜻한 눈빛으로... 따뜻한 몸짓으로... 어떨 땐 저보다 더 어른같이 제 곁에서 저를 사랑해주던 친구였습니다.
마음껏 다 해주지 못해 늘 시리게 떠오르는 그 아이가
오늘 밤, 꿈에서라도 모습을 보여준다면 너무나 너무나 행복할 것 같습니다.
떠나간 저의 다시없을 친구...
저의 소울메이트의 이름은 '로미' 입니다.
로미가 어렸을 시절에는 지금처럼 카메라를 쉽게 사용할 수 있을때가 아니라서
필름사진 몇장이 전부고 이 하두리 사진도 로미가 대여섯살쯤 무렵일거에요.
지금같았으면 아마 5만장은 찍어줬을텐데요.
2002년도던가 제가 처음으로 디카라는 것을 구입했어요.
해상도 330만 화소에 음성지원되는 동영상 (초기 디카들은 대부분 동영상에 소리가 지원되지 않았거든요..) 무제한!......이라고는 하지만
메모리가 달랑 16mb...
동영상은 커녕 630*480 해상도로 11장 찍으면 꽉 차버리는 무시무시한 용량이죠.
사진을 지울 수 있다는 것 빼고는 필카만도 못한 디카였어요.
그래서 디카를 사고도 로미사진이 별로 없네요... ㅠㅠ
카메라를 싫어하는 개님께서는 카메라만 들이대면 이러고 눈을 감아버리십니다.
일부러 플래시도 끄고 찍는데 왜 싫어하실까요.
자꾸 찍으니까 집으로 도주를 해버리는 개님이십니다.
그래서 도촬을 시도합니다.
저에게 부비부비할 때 몰래 한 장.
주무실 때 몰래 또 한 장.
근데 무슨 꿈을 꾸시는지 걸리면 죽여버리겠다는 표정이십니다. ;;;
이젠 대놓고 고개를 돌려버리시네요.
도도하시군요.
이 여자, 쉽지 않아요.
당장 카메라를 치우지 않으면 싸다구를 날리실 것 같은 표정이십니다.
죄...죄송합니다!
뿅!!
웬일인지 이런 더독삘 귀요미샷을 허락하시는 개님이시네요.
역시 시저캔은 진리.
해마다 함께 피서를 다녀서 어지간한 거리는 창 밖 풍경을 구경하는 여유를 보이시는 개님.
하지만 털달린 개님이시라 달궈진 한여름 승용차에 탑승하시는건 힘드신가 봅니다.
저 몽글몽글한 발이며 쫑긋한 귀,
저 우아한 바둑무늬에 보드라운 털까지 도대체 안예쁜 구석이 없는 개님이십니다.
계곡에 도착하자마자 찰방찰방 제일 먼저 시원한 계곡물에 몸 담그시는 개님.
한참 노시더니 따끈따끈한 돌위에 앉아 찜질중이시네요.
근데 표정은 왜 그러세요...
내가 뭐 일부러 묶었나요. 흥!
풀어놓으면 자꾸 물에 들어가시니까 해지기 전에 털 말리시라고 그런거죠.
물에서 놀고 있는 사람아기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로미 아주머니.
시원한 물에서 열도 식혔겠다
따끈따끈한 돌위에서 한참 지지니 솔솔~ 잠이 오시지요?
저희 동네에 드디어 애견샵이 생기면서 생전 처음으로 미용이란걸 받아보신 개님.
제가 애견샵에 가서 스포츠로 박박 밀어주세요~ 했더니
털이 홀랑 벗겨지신 개님은 사뭇 부끄러운 표정이십니다. ㅋㅋ
하지만 여지없이 눈을 감아버리시는 개님.
얼굴털도 스포츠로 밀어버렸는지 하루아침에 할매페이스가 되어버리셨네요.
2006년 가장 최근 사진.
사람으로 치면 70세가 넘은 노령이지만 앳된 베이비페리스를 자랑하시는 개님이십니다.
저에게는 늘 아기였고 저보다는 늘 어른스러웠던
제 인생의 절반을 함께 나눈 사랑하는 로미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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