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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년 6월
102보를 거쳐
2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만났던 수많은 알동기중에
심상치 않은 녀석이 하나 있었다.
후덕한 외모, 어눌한 말투 ,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그녀석은
소위 말하는 고문관이었다.
조교의 말에
예? 라고 대답하는건 기본이요,
조교들이 하지 말라 시키는 것만 골라서 했다.
사격장에서 장난치고 수류탄교장에서 장난치고 조교분대장 서랍에서 담배훔치고...
그 댓가로 우리들은 항상 기합을 받고 얼차려를 받았다.
그렇게 몇주가 흐르면서
아무리 우리가 화를내고 닦달을 해도 고쳐지지 않는 그녀석의 모습에
기간병까지 반쯤 포기를 하고 그러려니 한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훈련소의 5주가 끝나고
자대배치를 받았을때
나는 그녀석과 같은 자대.
그것도 같은대대 같은중대 같은 소대에 배정받았다.
다행히 내무반을 달랐고
당시 이등병끼리 이야기하는게 금지되어 있어서
나에게 피해가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옆 내무반의 그녀석이
훈련마다 낙오하고 퍼질때마다
나에대한 칭찬이 늘어만 가는 보너스같은 녀석이었다.
그렇게 자대배치받은지 1달이 좀 지났을 무렵.
우리는 100일휴가를 나갔다.
당연히 그녀석과 함께,
중대장의 지시로
복귀할때도 동서울역에서 만나 같이 복귀하기로 하고
우리는 꿈에 그리던 집으로 향했다.
첫휴가는 쏜살같이 지나가고
복귀날이 되어 동서울로 갔을때.
어쩐일인지 동서울역에는 사람들이 빙 둘러쌓여 무언갈 구경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니.
그 동기녀석이 있었다.
어머니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같이 있는 그녀석은
길바닥에 주저않아 울고있었다.
아주 서럽게.
길바닥위에 드러누워서
군대가기싫다며 울고있었다.
나와 똑같은 사단마크를 단 군복을 입고.
너무 쪽팔렸지만 동기 어머니께서 혼자 감당을 못하시는 모습에
내가 잡아 일으켜세우려 했는데
무슨 힘이 그리 세졌는지 바닥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버스떠날 시간은 다가오는데 여전히 울고있는 동기때문에
결국 부대에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 홀로 복귀하고
그녀석은 중대장이 직접 모셔와서 무사히 복귀를 끝맺었다.
그일이 중대에 알려지고
그녀석은 내 바로 옆 내무반에서
항상 갈굼을 먹었다.
100일휴가를 갔다온지 다시 한 달 뒤.
대대전술훈련을 위해 길도 없는 7부능선을 일렬로 올라가던우리는
산 중간에서 멈춰야만 했다.
멈춘 행렬의 가장 선두에는 그녀석이 있었다.
더이상 못올라간다며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린 동기와
직접 그녀석 것까지 두개의 군장을 짊어진 선임이 올라오라 재촉하는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못간다고 강짜를 놓는 그 모습에
결국 소대 고참들의 구타가 행해졌고
그녀석은 자신의 장구류와 총까지 모두 산비탈 아래로 던져버리며 반항했다.
데굴데굴 산밑으로 굴러가는 하이바와
굴러다가 나무등걸에 걸린 전투조끼와 탄띠
그 모습에 내가 열이 너무 뻗쳤다.
같은 날 입대했던 알동기이고 훈련소에서도 고문관 모습을 많이 봐왔는데
분대 고참이 군장 들어준다고 올라가자고 하는 모습에
오히려 제 장구류를 던져버리며 지랄을 하는 그 모습을 본순간
나도모르게 튀어나가서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치고 그녀석을 산비탈로 굴려버렸다.
그날의 사건때문에 전술훈련은 조기종료되고
나는 구타가혹행위
그녀석은 구타유발자로
나는 군기교육대로, 그녀석은 영창으로 각각 7일의 벌이 내려왔다.
군기교육대를 퇴소하고 자대로 복귀하고 바로 그 주에
그녀석은 군대부적응자로 결국 이등병 제대를 택했고
나는 소대 악마였던 고참의 부사수가 되어서
말년이 되어서야 악마라는 지긋지긋한 호칭을 떼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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