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소에 자동차 오토로 몰고 다니면서 에너지 걱정은 하지도 않던 사람들이 정부에서 '탈원전' 얘기 나오니까 거품을 물고 모두가 다 에너지 전문가이다. 신고리 원전을 지을까 말까 여론을 본다고 하니까 누군지 몰라도 열심히들 여론을 만들기 위해 노력들이다. 갑자기 게시물과 댓글에 나와서 이해 못 할 복잡한 자료를 전문 용어 써 가며 보여주면서 왜 핵 분열 발전 말고는 답이 없는지 열심히 떠든 뒤에 여론 조사 기간이 끝나자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내가 이 비슷한 걸 어디서 본 적이 있어서 감은 오는데 뭐라 말은 못 하겠다.
2.
효율이 높다 낮다 말이 많으니 효율이 뭔지 개념부터 생각해 보자.
효율 :
생산 전력량 당 열량
생산 전력량 당 엑서지
생산 전력량 당 연료 비용
생산 전력량 당 연료와 운용 비용
생산 전력량 당 연료와 운용, 설비 건설 비용
생산 전력량 당 연료와 운용, 설비 건설, 폐기물 처리 비용
아무도 알 수 없는 미래의 연료 가격은 논외로 하고 당장의 발전 효율을 논하는 것만도 이렇게 어렵다. 누가 감히 쉽게 단정지어 말할 수 있을까. 다만 여론을 만들려면 빠른 단정과 강한 선동이 필요하다.
3.
LNG 발전이라고 하면 GTCC라고 하는 가스터빈 복합 화력 발전이다. 화력발전은 이산화탄소 배출하니까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엘엔지 복합 화력 발전은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발전 중 효율이 가장 높고 공해가 가장 적다. 핵심 설비인 발전용 가스터빈은 지멘스, GE, 미쓰비시, 알스톰 네 회사가 과점이며 최신 대형 고효율 가스터빈은 전 세계 4개 나라 이외에는 상용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첨단 기술이다. 지금도 효율을 더 올리고 오염 물질을 더 줄이기 위한 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원자력 단체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서 엘엔지 발전 이산화탄소 발생이 원자력의 55배라는 말을 어떤 기자가 번역해서 삽시간에 퍼졌는데, 석유회사 펀딩 받아서 지구 온난화 허구설 논파하던 누구랑 비슷한 상황 아닌가 한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엘엔지 발전이 비중이 높은 것은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 전에 징검다리 역할일 때 뿐이고, 결국 신재생에너지가 발전량의 대부분을 맡을 수 있는 때가 되면 엘엔지는 보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주류 학계에서는 어느 나라나 공통이다. 어쨌거나 엘엔지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중요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여기서 신재생에너지는 태양, 풍력의 재생에너지 renewable energy 와 핵융합과 같은 신(새로운) 에너지 를 통틀어 부르며 대체에너지 alternative energy 와 비슷하게 쓰인다.
4.
태양광 발전이 미래에 발전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주장한다면 핵 폐기물도 곧 기술이 발전하면 해결될 거라는 주장도 봤다. 기술 발전을 예측하려면 가장 가까운 것은 통계이다. 지난 50년 동안 태양광 패널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핵 폐기물 문제가 아직도 변함없이 골칫거리인지를 보면, 적어도 기적같은 혁명이 있지 않은 한 핵 폐기물보다는 태양광 기술이 미래가 유망하다. 우리가 화석 에너지와 우라늄 핵 분열 에너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 가장 유력한 대세는 태양광이다. 지금 당장 태양광이 가능성이 있다 없다를 침 튀기며 열 올릴 필요가 없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중국산 태양광 패널이 당신네 집 지붕에도 올라갈테니까.
5.
발전 설비를 추가하는 것보다 사용량을 줄이는 올리는 것이 더 좋다. 방법은 단 하나, 전기 요금을 올리는 것이다. 지금도 에어컨 회사는 열심히 효율을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영원히 효율은 100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연구원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에어컨 회사에 폭탄을 설치하고 협박을 해도 에어컨 효율은 갑자기 올라갈 방법이 없다. 따라서 불필요한 냉방을 줄이는 것 이외에는 크게 절약할 방법이 없다. 삶의 질이 올라가서 빈민들도 에어컨을 쓰게 됐는데 그것을 되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난방은 조금 다르다. 핵 발전 때문에 전기가 싸니까 난방을 자꾸만 전기로 한다는 것이 겨울 전기 사용량이 올라가는 이유다. 가정에서 도시가스로 보일러 돌리는게 뭔가 태워서 발전하고 송전하고 전기 난로 돌리는 것보다 더 똑똑한 방법이다. 냉방과 난방 이외에 다른 생활용 전기를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6.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겠지만 가능은 하다. 핵 발전소를 더 짓지 않으면 된다. 핵 발전소를 더 지으면 안 된다는 강한 국민적 공감대가 뭐 하나 터지기 전에 형성되어야 한다. 지금 올라가는 전기 요금을 받아들이는 것이 영원히 끄지도 못하는 불을 붙여서 내 손자 증손자 후손들이 어떻게든 하겠지 무책임하게 말하는 것보다 성숙한 태도다. 물론 한전에서 가정용 기업용 가격으로 장난치지 않길 바라야 할 것이다. 일단 올라간 전기요금으로 자연히 기업이나 가정에서 필요 없는 에어컨 난로 가동을 줄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한국 가정은 에너지를 아주 적게 쓰는 편이고 기업에 아마 줄일 전기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난방용으로는 전기보다 보일러를 더 많이 쓰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뭔가를 태워서 전기를 만들고 그 전기로 난로를 트는 짓이 올바르다고 보는가...) 만약 전기 요금 부담으로 어떤 산업이 큰 타격을 입는다면 그 산업은 국민의 생존을 위해 한국에서 경쟁력을 잃고 도태되는 것이 마땅하다. 동시에 전기요금이 올라갈수록 신재생 에너지 개발 연구 비용은 수지 타산이 점점 잘 맞게 된다. 이것은 국가가 주도하지 않으면 영영 일어나지 않는다.
7.
나의 입장은 에너지 다양성 확보와 스마트 그리드 기술이 우선이다. 그 다음은 핵 폐기물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나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다. 이산화탄소는 언제든 천천히라도 포집이 가능하지만 방사능 물질은 당장 누출되면 큰일나고 잘 가둬놔도 영원히 (수십만년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탈 원전 찬성이다. 하지만 당장 폐쇄는 하지 않고 새로 짓는 핵 발전소 수를 가능한 줄이는 것이 좋다고 본다. 대체에너지는 한국이 총력을 다해 연구 개발을 해야 하는 분야임이 틀림 없다. 석유가 펑펑 나는 미국에서조차 학자들이 대체에너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인 것 같다. 당장 값싼 전기 요금을 유지하기 위해 원자로만 계속 지으면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에도 뒤쳐지고 남는 것은 핵 폐기물과 사고 위험밖에 없다. 신재생에너지 중 가장 활발한 성장을 보이는 것은 태양광과 풍력이다. 한국의 기술 수준은 아직 많이 갈 길이 멀다고 알고 있다. 만드는 것보다 사오는 것부터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화력 발전에 대해서는 가능한 줄이되 가동이 빠르고 자유로운 가스터빈과 효율이 좋은 복합 화력은 앞으로도 수십 년 이상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 신재생에너지 기술 수준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스터빈 복합 화력을 늘리는 것은 마땅하다. 따라서 엘엔지 복합화력과 신재생에너지를 목표로 핵 발전과 석탄 화력을 줄여가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 옳은 길이다.
8.
현재 나는 화력 발전 업계와 조금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화력 발전 쪽에 입장이 치우쳐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핵 발전을 더 늘리는 것은 안 된다는 내 생각은 내 연구가 어느 분야였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신재생에너지가 중요하다는 나의 강조는 다른 누가 하는 강조보다 더 진실한 말인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