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서 잘나가진 않지만 그런대로 대리 직함 달고 결혼해서 맞벌이로 평범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가 생기게 되고, 주말 출근과 외근을 밥먹듯이 하는 한국의 직장 문화에 회의를 느끼고 미국에 가서 사는 것을 목표로 회사일과 육아일, 유학준비를 1년간 병행 했습니다.
물리학 박사과정 어드미션을 받기 위해 GRE와 토플 점수를 받아놓고 미국의 각 학교 투어를 다니던 중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5년간 박사 후 포닥을 하는 것을 보고 '내가 생각하는 미국에서의 삶이 아니다' 라고 판단하여 MBA로 방향전환을 하였습니다. 다시 3개월 GMAT공부를 하여 시험을 보고, 입학원서를 썼습니다. 전직 공돌이답게 각 학교들의 커리큘럼, 학비, 위치, Alumni 수 등등을 수치화 해서 테이블로 만들어 그 중 제 목적과 제일 부합하는 학교를 골랐습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땐 좋았어요. 처음으로 골프란 것도 쳐보고
스포츠 카도 몰아보고 (이 차는 둘째가 태어난 후 미니밴으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캠핑가서 랍스터도 삶아 먹어봤지요.
하지만 꿈같은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졸업 후 취업이라는 데드라인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한국에서 나름 영어좀 한다고 자부했지만, 외국인들과 말할때마다 어버버버 하는 제 자신에 대한 회의와, 남들은 다 잘난것 같은데 나는 못난 것 같은 자괴감도 있었습니다.
영어실력 늘리는 데는 애인 만드는게 제일 좋고, 두번째로 좋은건 외국 애들과 술마시러 놀러다니는 것이지만, 토끼같은 아내와 여우같은 딸이 있는 저에게는 둘 다 해당사항이 없는 말이라서 다른 대책을 강구해야 했고, 다음과 같은 규칙을 만들어서 MBA 과정 2년간 사용했습니다.
1. 수업은 무조건 100% 출석, 무조건 제일 앞에 앉는다.
- 장학금 없이 제 돈으로 유학하는 상황에서 농땡이를 피운다는건 용납이 안되었습니다. 앞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교수의 눈도장을 한번이라도 더 받아서 질문을 조금이라도 친절해 답변해 주고, 랩탑이나 다른 짓거리를 안하게 되어 수업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2. 수업시간에 무조건 질문 최소 한가지 씩 한다.
- 영어실력을 늘리기 위해서, 그리고 수업 이해도와 집중도를 늘리기 위해서 무조건 질문 한가지씩은 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가 안되어서 진짜 죽을 맛이었으나, 2학기 부터는 점차 나아졌습니다.
3. 수업은 무조건 녹음. 최소한 한번이상 복습
- 녹음하는 학생이 많아서 눈치는 덜 보였어요. 하루 수업이 끝나면 오후 3-4시 정도인데 독서실 가서 수업한거 한번씩 들으면서 복습하고 저녁먹는 시간쯤에 집에 왔어요. (통학거리 30분) 수업 중간중간에 제가 질문하는 것을 듣는게 참 고역이었으나,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잠이 깨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밤에 그날의 실수를 떠올리며 이불킥 했습니다.
4. 스터디 그룹은 내가 만든다.
- 수업 끝나고 독서실 가서 있으면 자연스럽게 같이 공부하는 그룹이 생기게 됩니다. 그 애들과 모여서 공부하면 분위기 형성에 도움이 되고, 친해지면서 스피킹 연습 할 수 있는 기회가 늘게 됩니다.
5. 마인드 컨트롤. 난 어제의 내가 아니다.
- 저도 한국에 있을 땐 지극히 내성적인 사람이었고, 잘 안되는 스피킹으로 인해서 조금 더 위축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영어가 조금씩 늘고, 제가 가진 지식들 (엑셀 활용이나 직장에서의 실무 경험 등)을 나눠주면서 시험 기간에 스터디 그룹을 짜서 과목 리뷰를 하니 조금씩 자신감이 늘었습니다.
MBA 과정 내내 아내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도서관에서 보낸 베트남 친구입니다. 1학년 수료 후 받는 GE Award를 저와 이 친구 둘이서 받았습니다. 이 친구는 지금 뉴욕에서 파이낸셜 매니저로 있습니다.
학교 다니는동안 공부만 해서 사진이 별로 없네요. 그냥 성적표 인증입니다. (어렴풋이 기억할 때는 B+이 하나였는데, 다시보니 세개네요) 1학년 1학기 때 공돌이인 저에게는 생소한 accounting에 B+이 하나 있구요, 2학기 때 말빨로만 시험을 보는 Strategy & planning도 B+ 이네요. 마지막 학기때는 미국에서 집 구입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들었던 (MBA와 전혀 상관없는) 부동산 과목을 들었는데, 저 빼고는 전부 부동산 관련 학과 애들이라서 성적에서 좀 밀려서 B+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2학기부터는 학기당 한두과목 빼도 졸업에 지장 없고, 학점 관리가 조금 수월했을 수도 있지만, 제 돈으로 학비를 내고나니 한과목이라도 더 듣고 싶게 되더라구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인턴과 OPT를 거쳐서 지금은 H1-B 이구요, 한국에서 공돌이로 일했던 것과 비슷한 인더스트리의 R&D 회사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있습니다.
모기지 끼고 조그만 집을 사서 결혼전부터 취미로 가져왔던 목공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구요.
일년에 한두번 가족여행 합니다.
지금 딸 둘이 있구요, 다음 주 쯤에 딸이 하나 더 태어날 예정입니다. 유학 하시는 분, 준비하시는 분들 모두 힘내시고,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