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라면 3일차와 오늘 사이의 공백기에 올렸어야 했지만, 제가 게으른 데다가 소라카 픽의 의미가 애매했기 때문에 올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늘 경기로 그 의미가 확실해진 감이 있으므로 마저 올리겠습니다. 우선 6강 3일차 두 경기부터 보죠.
1. G2
아주 중요한 경깁니다.
밴은 의미가 없으니 픽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G2는 MSI 진출한 팀 중에 와일드카드 다음으로 약하다고 평가되고 있는 초 약팀이고, 양측의 밴 역시 각 지역에서만 쓰이는 특이한 픽이나 키 플레이어의 캐릭터를 막는 (3일차 분석에서 말씀드렸던 블랭크의 킨드레드와 해외 리그의 바드가 그 예시겠네요), 마일드한 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의 SKT의 픽은 아주, 아주, 아주 귀중하고 중요한 픽입니다.
이 경기에서 SKT는 에코, 리 신, 라이즈, 시비르, 그리고 소라카를 픽합니다. 3일차 CLG전에서 SKT는 소라카를 밴 했었습니다. 4일차에서도 재차 밴합니다. 전 이 일련의 밴 과정을 지켜본 후 SKT는 소라카에 대한 준비를 아예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으며, 오늘 드러났듯이 이건 꼬마 코치의 완벽한 기만전술이었습니다. 꼬마 코치가 무서운 점은 4일차 CLG전에서 패배할 경우 플레이오프 진출이 불확실한데도 불구하고 이걸 해냈다는 점입니다. 소름끼치도록 냉철한 상황 판단이었습니다. 소라카 픽의 의미는 나중에 마저 설명할 테니 우선 정글 픽부터 보겠습니다.
리 신의 경우 사실상 한국 정글러들만의 독특한 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4일차 분석에서 꼬치는 블랭크의 챔프 폭을 니달리로 넓히려는 의미 없는 시도를 그만두었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대신 꼬치는 여기서 RNG코치진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기 위해, 또한 진짜 비밀병기였던 소라카를 가리기 위해 약간의 장난을 칩니다. 그것이 바로 이 리 신입니다. 기존 조별리그만 보면 SKT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블랭크였고, 울프는 고려 대상 축에도 끼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꼬치가 무언가 변화를 시도한다면 분명 블랭크 쪽에서 나올 것이라고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었죠. 이 리 신픽은 그것에 부응하는 물건이었습니다. 시기도 적절합니다. 리 신을 다루지 못하는 한국 정글러는 없고, 일종의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와 자신감 회복의 의미로 픽한 것 처럼 보이니까요. 이 덕분에, 특히 상대가 이번 대회 최약체인 G2였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울프의 소라카에 깊은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2일차 분석에서 SKT는 이번 조별리그에서 전력을 숨기고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전 그 숨겨둔 전력이 3일차에 나온 브라움이라고 봤었습니다만, 틀렸었죠. SKT가 꽁꽁 숨긴 전력은 사실 소라카였습니다. 다만 울프는 브라움과 달리 소라카를 올해 단 한번도 써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스크림이 아닌 실전 레벨의 테스트를 행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꼬치는 위기를 기회로 삼을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선 블랭크의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게 당연한 수순이고 또 모두 그렇게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블랭크가 상궤를 벗어난 픽을 하면 당연히 그 쪽으로 주의가 쏠린다는 점을 이용했습니다. RNG를 상대로 소라카를 보여주면 의식할 것 같아서 일부러 RNG에 안 보여주고 G2전에서 보여줍니다. 무섭도록 치밀합니다. 이번 G2전의 밴픽은 블랭크의 자신감 회복이 메인이 아니라 소라카의 실전 테스트가 메인이었습니다. 아마 이 MSI 모든 경기 통틀어서 한 밴픽 가운데 신의 한 수는 G2전의 소라카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소라카는 그 특성상 애초부터 캐리가 안 되기 때문에 더더욱 부각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다들 페이커의 라이즈와 블랭크의 화려한 리신 플레이에 집중하게 되죠. 1. 블랭크의 부진한 폼과 그에 이은 깜짝 픽, 2. 소라카라는 챔피언의 특성, 3. G2의 약세 이 세 가지 조건 때문에 소라카는 성공적인 실전 테스트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묻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RNG가 4강에서 탈락했습니다.
2. 조별리그 RNG
밴부터 봅시다.
RNG는 브라움 - 알리스타 - 킨드레드를 밴했고, SKT는 트위치 - 니달리 - 아지르를 밴했습니다.
RNG의 코치진 역시 저와 비슷하게 울프의 브라움이 문제의 비밀병기라고 착각한 듯 합니다. 누가 플레이오프 진출이 걸렸는데 연막 작전을 쓸 생각을 할 까요. 웬만한 배짱 없이는 안 될 일이죠. 울프의 브라움이 트런들 대신 자리를 꿰찼습니다. 우선 이번 경기는 밴으로 막고, 4강에서 다시 만날때는 철저하게 카운터할 공산입니다. 꼬치는 저 브라움 밴을 보고 굉장히 만족스러워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RNG는 블랭크의 올 타임 메이저인 킨드레드를 밴하고 자신이 리신을 가져와, 3-4일차 내내 부진했던 그레이브즈를 강요하게 됩니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이것 또한 블랭크의 그레이브즈 자신감을 다시 올려주는 결정적인 패착이었습니다만, 계획은 상당히 좋았습니다. 세상 모든게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알리스타는 이 때부터 시작해서 MSI가 끝날 때까지 RNG가 가져가지 않는 상황이면 필밴이었습니다. 스크림 내부적으로 울프의 알리스타가 하드캐리를 한 판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SKT의 꼬치는 2일차에서 시도했던 니달리의 연막 작전이 먹히지 않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니달리를 필밴카드에 추가합니다. 아직 페이커의 폼이 올라오지 않았다고 판단한건지, 혹은 올라왔는데도 일부러 자신감 없다는 듯 보여준 건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지르 역시 밴했습니다. 트위치는 RNG의 알리스타 밴과 같은 의미의 밴 카드로, 아마 내부 스크림 당시 욱스의 트위치가 상당히 신경쓰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번도 풀리지 않아서 실상은 며느리도 모르고 오직 두 팀 선수단만 알 겁니다.
이번 경기 SKT의 픽은 일반적인 SKT의 픽이었습니다. 플레이오프와 LCK 후반기를 잘 챙겨본 RNG의 코치진이라면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는 밴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룰루시안 콤비는 거의 페이커-뱅을 상징하는 콤비로 자리잡은지 오래고, 에코와 그레이브즈는 플레이오프 매 경기마다 밴이거나 픽이었으며 트런들은 아예 RNG가 2일차에서 밴했을 정도로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위화감을 느끼기 힘든 밴과 픽입니다. 익숙한 밴픽이었고, 그래서 RNG는 이 경기에서 아무것도 확답받지 못합니다. 이 상황은 애초에 꼬치가 패배를 각오했다는 걸 시사합니다. 순위가 확정된 상황에선 전력을 다해 경기를 임할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경기는 픽밴을 따지는 기준에선 의미가 없는 경기입니다. SKT의 비밀병기가 소라카였는지 브라움인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무언가인지 며느리도 모르게 되어버렸습니다. 위험합니다. RNG 입장에서는 이 경기를 져 버렸으니 더 불안할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조별리그에다 순위도 영향 없었으니 큰 의미를 두지 않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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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주일의 공백이 있었습니다. 이 짧은 기간동안 많은 연습을 하기는 힘들었겠지만, RNG는 다음 차례가 SKT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여러 가능성에 대해 점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브라움의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소라카가 나올 경우엔 어떻게 할 것인가 - 이런 토의를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6일차의 밴픽을 봤을 때 이 토의는 결국 브라움 쪽에 더 많은 무게가 실린 채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소라카에 대한 대비는 정말로 '임시 땜빵' 수준에서 그쳤겠죠. 상식적으로도 그게 옳습니다. 그리고 4강의 아침이 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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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경기
다전제인 만큼 경기 이후 여파 또한 기술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밴부터 보죠.
RNG는 마오카이 - 알리스타 - 에코를 밴했고, SKT는 트위치 - 라이즈 - 아지르를 밴했습니다.
내부적 토의를 거쳐 RNG는 미드 정글 듀오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페이커의 네임밸류를 생각하면 오만하기 짝이 없는 처사지만 사실 조별리그 결과만 보자면 이게 맞았습니다. SKT도 미드 밴 두 개를 보여주면서 지고 들어갑니다. RNG의 저 밴은 3경기 내내 바뀌지 않으며, 제게 밴 분석을 딱 한번만 해도 되는 편의성을 제공함과 동시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여줍니다. 내부적으로 듀크의 뽀삐에 대한 대처가 완벽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듀크에게 강제로라도 뽀삐를 쥐여주기 위한 의도가 상당히 보입니다. (*이 점은 이후 1경기, 루퍼가 트런들로 뽀삐를 탈탈 털면서 실제로 성공했습니다.) 알리스타의 경우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SKT의 트위치 밴과 마찬가지로, 진상은 저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르며 온 우주의 기운이 도와주시는 그분도 모를 겁니다. 직접 스크림 뛴 분들만 알겠지요. 정리하자면 알리스타로 밴 카드 하나가 소모된 시점에서 반드시 듀크에게 뽀삐를 쥐여주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밴입니다.
SKT는 미드를 상당히 의식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니달리를 밴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어째서 그랬나는 잘은 모르지만, 블랭크의 폼이 상당히 올라왔고 - 니달리를 밴 할 경우 상대가 킨드레드를 가져가면 그레이브즈만 줄창 해야 한다는 점을 우려했을지도 모릅니다. 조별리그의 충격에서 회복했더라도 블랭크는 신인이고 그레이브즈가 아직은 꺼려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히려 니달리를 열어주고, 라이즈와 아지르를 동시에 밴해서 페이커에게 힘을 실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에 페이커의 피즈 픽을 이미 확정하고 있었습니다. 라이즈와 아지르는 둘 다 피즈의 카운터입니다. 페이커가 폼이 좋다면 모를까 조별리그 결과만 보자면 의문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첫 실전 테스트를 4강에서 한다는 것 자체가 페이커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걸지도 모릅니다. 페이커는 피즈를 3월 말 이후로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픽 페이즈에서 주의하셔야 할 픽은 다음과 같습니다. RNG의 브라움 선픽, 트런들 후픽과 SKT의 소라카와 피즈(둘 다 후픽이죠.) 입니다. 먼저 RNG부터 보겠습니다. 니달리를 1픽으로 가져오는 건 예정된 수순입니다. 이후 SKT가 강요된 뽀삐를 가져가는 것 역시 예정된 수순이고, 시비르는 1티어 원딜이니 언제 나와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뱅 특유의 넓은 챔프폭 상 어째서 울프가 서폿 픽을 안 했나 살짝 의뭉스러울 수 있겠습니다만, 큰 건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서 RNG가 브라움을 뺏어옵니다. 통상적인 서포터 픽 순번이기도 합니다만 RNG쪽의 치밀한 계산이 있었습니다. 뽀삐는 강요되었으니 깜짝 탑 픽이 없다면 100% 가져갑니다. 시비르가 아니라 브라움을 2픽으로 가져가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즉 이 시점에서 RNG의 코치진은 브라움은 우리가 뺏어올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SKT의 비밀병기로 예상되는 브라움을 뺏어올 수만 있다면 이기기 한층 더 쉬워지죠. 그런 의미의 3픽 브라움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해 SKT는 소라카를 가져옵니다. 솔직히 글을 쓰는 도중에 발견한 겁니다만, 울프의 소라카 테스트 상대였던 G2의 서포터가 브라움이었습니다. RNG가 브라움을 뺏어올 것 까지 예측해서 G2전에서 소라카를 꺼낸 거라고 주장하는 건 상당한 비약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찌되었건 소름돋기 짝이 없는 일이네요. 저 변수 때문에, 한 번 정도는 SKT가 승리해도 RNG의 코치진이 소라카가 비밀병기가 아니라 브라움을 뺏겼을 때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한 픽일 거라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순번은 트런들 픽입니다. 소라카가 SKT의 비밀병기였다면 트런들은 RNG의 비밀병기입니다. 루퍼 역시, LPL 플레이오프에서 트런들을 단 한차례도 픽하지 않았습니다. 이 트런들 픽은 듀크의 뽀삐를 카운터하기 위해 RNG가 준비한 픽이었고, SKT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 밴 페이즈때 '듀크의 뽀삐를 의식한 무언가가 있다' 까지는 유추해 냈을지도 모릅니다만, 세세한 챔피언이 무엇인지까지 예측은 못했다고 봅니다) 1세트에서 이 트런들을 공개해 SKT를 조금 흔들리게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픽, 페이커의 피즈가 나옵니다. 페이커는 3월 이후로 피즈를 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RNG가 이 픽을 예측하기란 요원한 일이고, 대응할 준비도 상대적으로 덜 되어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까지 공개된 SKT의 마지막 비밀병기고, 트런들과 같이 RNG의 코치진 역시 "미드를 상대로 준비된 무언가가 있다" 까지만 유추했었을 겁니다. 소라카 작전에 대해 모르는 시점에서는 밴픽은 비등비등해보입니다.
그리고 1경기에서 SKT는 졌습니다. 그리고 다전제의 SKT에게 그 타격은 전혀 없었습니다.
2. 2경기
경기의 여파 먼저 기술해보겠습니다.
1경기, 페이커의 피즈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RNG는 곧바로 그에 대응하기 위해 선픽 라이즈란 카드를 꺼내듭니다. 즉발 속박과 탱킹력이 존재하는 라이즈는 피즈의 카운터 중 하나며, SKT가 1경기에서 밴으로 틀어막았던 상대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SKT는 트런들을 상대하기 위해 페이커가 아니라 듀크를 막픽으로 내려보냅니다. 미드와 달리 현재 탑 1티어 캐릭터가 몇 없는 상황에서 이런 판단은 손해볼 게 없습니다. 트런들을 선픽하면 다른 대응을 하면 되고, 뽀삐를 선픽하면 오히려 이쪽에서 트런들로 카운터를 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듀크는 스프링 플레이오프에서 트런들을 픽했었고, 이는 트런들을 다룰 줄 안다는 걸 말합니다.)
또한 꼬치는 페이커의 폼이 올라왔다고 판단해서 미드 밴 두개를 모두 풀고, 니달리를 밴합니다. 원래 했어야 할 밴이지만 피즈의 테스트 때문에 안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남은 밴 하나는 1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욱스의 루시안에게 할당되었습니다. 따라서 1경기와는 다르게 2원딜 1정글밴이라는 봇 쪽에 힘을 실어준 밴픽구도가 되어버렸습니다. 반면 RNG는 이미 이겼으니까 정석에 충실한, 해온 대로만 하면 이긴다는 확신을 굳게 가지고 밴을 바꾸지 않습니다.
2경기 픽 페이즈에서 주의하셔야 할 픽은 이하의 픽들입니다: RNG의 라이즈 선픽 - 르블랑 후픽, SKT의 아지르 픽입니다. 전 문단에서 말씀드렸다시피 RNG는 페이커의 피즈를 카운터하기 위해 라이즈를 선으로 뽑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은 감상으로는 저게 RNG 최대의 실수였습니다. SKT는 곧바로 페이커 특유의 넓은 챔프 폭을 통해 곧바로 피즈를 포기하고 아지르를 뽑고, 라이즈에게 탑으로 가라고 강요합니다. 사실 조별리그 끝나고 전 아지르가 영원히 안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카시오페아를 예상하고 있었는데요, 이미 꼬치는 라이즈-르블랑 둘의 스왑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무상성으로 유명한 아지르를 픽해버립니다. 조별리그 페이커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페이커는 다르다는 강한 확신이 엿보이는 픽입니다. 예, 그리고 실제로도 달랐습니다. 엄청 달랐습니다.
따라서 라이즈는 이제 미드에 못 갑니다. 아지르와 라이즈는 서로 비등비등한데, 라이즈 픽이 준비된 게 아닌 피즈를 막기 위해 급하게 뽑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게 RNG의 계략이기도 했습니다. 피즈를 막고, 라이즈에 카운터하는 픽이 나오면 그걸 다시 샤오후가 카운터한다 - 는 일련의 과정이 RNG의 코치진이 그려놓은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었습니다. 반대로 꼬치는 라이즈에 카운터하는 대신 모두에게 무상성인 아지르를 꺼내는 걸로 그걸 부셔버렸지요. 그래서 샤오후는 그나마 아지르 상대하기 좋은, 그리고 이미 2일차에서 아지르 상대로 이겨본 르블랑을 픽합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RNG의 계획 중 하나가 틀어져버립니다. 강요된 뽀삐를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된 겁니다. 미드 라이즈는 몰라도 탑 라이즈는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시점, 뽀삐는 울며 겨자먹기로 가져가는게 아닌 그냥 픽해도 좋은 무난한 픽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 때문에 르블랑이 탑에 텔포까지 쓰면서 탑을 봐줘야 했고, 탑이 터짐과 동시에 게임이 통째로 날아가게 됩니다. 얼핏 보면 SKT가 질질 끌려간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SKT의 반격이 매서운 밴픽이었습니다.
2경기는 SKT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3. 3경기
실수에 대한 피드백이 느리면 강팀의 자격이 없습니다. RNG는 충분히 강팀이고, 2경기의 실수에 대해 빠른 피드백을 했습니다. 코치진은 피즈에 대해 신경쓰는 걸 그만두었습니다. 따라서 피즈가 깜짝 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카운터를 그만두고 페이커의 라이즈를 견제하기 시작합니다. 2경기는 페이커 혼자 터트렸기 때문에 페이커의 메인 픽인 라이즈까지 쥐여주면 어떤 꼴이 날지 심히 두려웠기 떄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듀크의 에코를 풀어주면 어떤 꼴이 날 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밴 페이즈에서 볼 수 있는 건, 탑의 변화입니다. 듀크의 에코를 루퍼의 뽀삐가 상대할 수 있다 - 실제로 에코 탑은 한국에서 연구된 것이고, 다른 곳에서는 많이 안 썼습니다 - 는 기본 전제를 깔고 대신 페이커에 대해 살짝 견제합니다. 올 타임 베스트인 라이즈를 밴해버리고 오늘 폼 좋았던 아지르를 선픽으로 뺏어옵니다. 반면 SKT는 저번의 그 밴으로 이겼기 때문에 그 밴 그대로 갑니다.
픽 페이즈에서 유의하실만한 픽은 마타의 레오나 픽과 페이커의 피즈 막픽입니다. 진의 경우 아지르와 같이 조합된 픽이기 때문에 예상하긴 쉽습니다. 하지만 양 측의 막픽, 레오나와 피즈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위쪽에서 말씀드렸지만 쉬는 기간동안 RNG는 브라움에 중점을 두고 조합을 짜 왔지만, 소라카에 대한 대비도 아예 안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산물이 레오나입니다. 현재의 소라카는 딜교에서는 막강하지만 꽝 붙어서 단기간 누킹이 들어오면 속수무책이기 때문에 레오나가 굉장히 좋은 카운터로 보입니다. 따라서 마타는 진을 지키는 대신 라인전에서부터 소라카를 찍어누르기 위해 (* 이 점은 RNG의 팀 컬러와도 맞죠.) 레오나를 가져갔습니다. 피즈는 SKT의 비밀병기였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이 피즈 픽을 RNG는 예상 못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깜짝 픽이, 더군다나 1경기에서 졌는데, 다시 등장할 확률은 거의 없으니까요. 의외의 펀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을 겁니다.
3경기 역시 에코의 하드캐리로 끝이 났습니다.
4. 4경기
RNG는 극약처방을 시도합니다. 커뮤니티에 보이는 '멘탈 붕괴해서 엉망진창으로 픽밴했다' 같은 건 RNG와 같은 강팀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코치진들에게 실례입니다. 피즈와 소라카 밴이 의미했던게 무엇인가 생각해보자면, RNG는 자기가 연습했던 SKT를 상대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SKT와 연습했을 때 피즈나 소라카를 상정하고 연습했을 리가 없습니다. 둘의 라인전은 다른 챔피언과 비교해봤을때 궤이하고 악랄하다고 설명해도 좋을 정도로 차이가 납니다. 그러니, 우리가 생각해온 카운터가 먹히지 않는다면 차라리 우리가 예상하고 준비했던 SKT를 상대하자. 그런 생각으로 RNG는 1~3세트 SKT의 주역이었던 피즈 소라카 시비르를 모조리 밴했습니다.
SKT는 이에 대응해 니달리 대신 알리스타를 밴합니다. 마타의 알리스타는 2일차에서 뱅을 죽인 전적이 있는 만큼, 견제를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리고 정글 3대장을 모조리 열어버리면서 니달리 가져가면 이쪽도 킨드레드 가져갈 거라고 선포하죠.
픽 페이즈에서 주의하실 만한 건 없습니다. SKT는 클래식한 자신의 베스트 픽으로 임했고, RNG는 오늘 좋은 폼을 보여준 페이커의 아지르를 뺏어오고 여전히 신경쓰이는 브라움을 뺏는 등, '뺏는 밴픽'에 치중하다 결국 실력의 반도 보여주지 못하고 패배했습니다.
4경기 역시 SKT가 승리하면서, 결승에 진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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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 팬으로서 SKT가 좋은 모습 보여줘서 너무 기쁘네요. 일요일에도 이렇게만 해서 우승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