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또 우리 로조가 막 쫓기었다. 내가 점심을 먹고 비경을 돌러 갈 양으로 나올 때이었다. 월요비경으로 올라서려니까 등뒤에서 푸드득 푸드득 하고 강적출현의 횃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다르랴 두 놈이 또 얼리었다.

점순네 루프토(식칼이가 크고 똑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이 덩저리 작은 우리 로조를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득하고 얼굴을 쪼고 물러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푸드득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이렇게 멋을 부려 가며 여지없이 닦아 놓는다. 그러면 이 못난 풀떼기는 쪼일 적마다 우산으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킥, 킥, 할 뿐이다. 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얼굴을 또 쪼이며 붉은 선혈은 식칼에서 뚝뚝 떨어진다. 이걸 가만히 내려다보자니 내 대강이가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것같이 두 눈에서 불이 번쩍 난다. 대뜸 홍차를 빨고 달려들어 점순네 백정을 후려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숟질로 떼어만 놓았다.

이번에도 점순이가 쌈을 붙여 놨을 것이다. 바짝바짝 내 기를 올리느라고 그랬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고놈의 계집애가 요새로 들어서 왜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릉거리는지 모른다.

나흘 전 갓챠 건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 계집애가 금카를 캐러 가면 갔지 남 각요 엮는 데 순삭질을 하는 것은 다 뭐냐. 그것도 발소리를 죽여 가지고 등뒤로 살며시 와서,

"얘! 너 혼자만 딜하니?"

하고 긴치 않는 수작을 하는 것이다.

어제까지도 저와 나는 좋아요도 잘 않고 서로 만나도 본체 만 척하고 이렇게 점잖게 지내던 터이련만 오늘로 갑작스레 대견해졌음은 웬일인가. 항차 망아지만 한 계집애가 남 일하는 놈 보구…….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듸?"

내가 이렇게 내배앝는 소리를 하니까,

"너 딜하기 좋니?"

또는,

"순위권이나 되거든 하지 벌써 홍녹차 마시니?"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댄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날씨가 풀리더니 이 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제 집께를 할금 할금 돌아보더니 행주치마의 속으로 꼈던 바른손을 뽑아서 나의 턱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 언제 질렀는 지 더운 김이 홱 끼치는 따끈한 갓챠 세 개가 손에 뿌듯이 쥐였다.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은 큰일날 테니 여기서 얼른 까보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시시라라 맛있단다."

"난 갓챠 녹기나온다. 너나 먹어라."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갓챠를 도로 어깨 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건 또 뭐야 싶어서 그때에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랐다. 우리가 밀아에 들어온 것은 근 닷달째 되어 오지만 여태껏 가무잡잡한 점순의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롯뜨처럼 새빨개진 법이 없었다. 게다가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보더니 나중에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보상상자를 다시 집어들더니 이를 꼭 악물고는 엎어질 듯 자빠질 듯 비경으로 횡하게 달아나는 것이다.

어쩌다 동리 어른이,

"님카 멀녹선혐란ㅋㅋㅋㅋㅋ"

하고 웃으면,

"염려 마서유. 어르신은 잔다레기에 리밋치바름!"

이렇게 천연덕스레 받는 점순이었다. 본시 부끄럼을 타는 계집애도 아니거니와 또한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얼병이도 아니다. 분하면 차라리 나의 등어리를 풀덱으로 한번 모질게 후려쌔리고 달아날지언정.

그런데 고약한 그 꼴을 하고 가더니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설혹 주는 갓챠를 안 받아먹는 것이 실례라 하면, 주면 그냥 주었지 '느 집엔 이거 없지.'는 다 뭐냐. 그렇잖아도 저희는 과금러이고 우리는 그 손에서 각요를 얻어 덱을 꾸리므로 일상 굽실거린다. 우리가 밀아에 처음 들어와 한줄덱 없어서 곤란으로 지낼 제 일요를 딜하고 그 위에 각요를 또 짓도록 마련해 준 것도 점순 네의 호의였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시즌말 때 리온한장 부족하면 점순이네한테 가서 부지런히 숟질해다 먹으면서 인품 그런 집은 다시 없으리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열 일곱씩이나 된 것들이 수군수군하고 붙어 다니면 동네의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 준 것도 또 어머니였다. 왜냐하면 내가 점순이 하고 일을 저질렀다가는 점순네가 노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극딜도 떨어지고 친구도 내쫓기고 하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계집애가 까닭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말려 죽이려고 드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고 간 담날 저녁나절이었다. 1,2성을 한 짐 잔뜩 지고 비경을 내려오려니까 어디서 요정이 죽는 소리를 친다. 이거 뉘집에서 요정을 잡나, 하고 점순네 울 뒤로 돌아오다가 나는 고만 두 눈이 똥그랬다. 점순이가 저희 집 봉당에 홀로 걸터앉았는데 이게 치마 앞에다 우리 로조를 꼭 붙들어 놓고는,

"이놈의 힐통수! 죽어라 죽어라."

요렇게 암팡스레 패 주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1렙이나 치면 모른다마는 아주 공체도 못 넣으라고 그 노돌을 주먹으로 콕콕 쥐어박는 것이다.

나는 눈에 쌍심지가 오르고 사지가 부르르 떨렸으나 사방을 한번 휘둘러보고야 그제서야 점순이 집에 아무도 없음을 알았다. 잡은 퓨어하트 들어 울타리의 중턱을 후려치며,

"이놈의 계집애! 남의 풀덱 힐 못 넣으라구 그러니?"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나 점순이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고 그대로 의젓이 앉아서 제 카드 가지고 하듯이 또 죽어라,죽어라, 하고 팔려고 하는 것이다. 이걸 보면 내가 산에서 내려올 때를 겨냥해 가지고 미리부터 로조를 잡아가지고 있다가 네 보라는 듯이 내 앞에서 줴지르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남의 집에 뛰어들어가 계집애하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형편이 썩 불리함을 알았다. 그래 로조가 맞을 적마다 퓨어하트로 후려칠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울타리를 치면 칠수록 배코가 물러앉으며 뼈대만 남기 때문이다. 허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나만 밑지는 노릇이다.

"아, 이년아! 남의 풀떼기 아주 죽일 터이야?"

내가 도끼눈을 뜨고 다시 꽥 호령을 하니까 그제서야 울타리께로 쪼르르 오더니 울 밖에 섰는 나의 머리를 겨누고 로조를 내팽개친다.

"에이 힐통수 더럽다!"

"안터지는 걸 널더러 입때 끼고 있으랬니? 망할 계집애년 같으니"

하고 나도 더럽단 듯이 울타리께를 횡허케 돌아내리며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랐다. 돌아가는 나에다가

"이 바보 녀석아!"

"얘! 너 풀덱 D+이지?"

그만해도 좋으련만,

"얘! 너 느 아버지가 고자라지?"

"울아버지가 고자라니?!"

할 양으로 열벙거지가 나서 고개를 홱 돌리어 바라봤더니 그때까지 울타리 위로 나와 있어야 할 점순이의 대가리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그러다 돌아서서 오자면 아까에 한 욕을 울 밖으로 또 퍼붓는 것이다. 욕을 이토록 먹어 가면서도 대거리 한 마디 못하는 걸 생각하니 돌부리에 채이어 발톱 밑이 터지는 것도 모를 만큼 분하고 급기야는 두 눈에 눈물까지 불끈 내솟는다.

그러나 점순이의 침해는 이것뿐이 아니다.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제 집 오버드라이브를 몰고 와서 우리 로조와 쌈을 붙여 놓는다. 제 집 오버는 썩 험상궂게 생기고 쌈이라면 6배수를 치는 고로 으레 이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툭하면 우리 로조가 얼굴이며 우산이 피로 흐드르하게 되도록 해 놓는다. 어떤 때에는 우리 로조가 나오지를 않으니까 요놈의 계집애가 장미를 쥐고 와서 꾀어내다가 쌈을 붙인다.

이렇게 되면 나도 다른 배차를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는 우리 로조를 붙들어 가지고 넌지시 합성으로 갔다. 노말에게 키라를 먹이면 병든 황소가 살모사를 먹고 용을 쓰는 것처럼 기운이 뻗친다 한다. 덱에서 키라 한개를 떠서 로조 주둥아리께로 들여 밀고 먹여 보았다. 로조도 키라에 맛을 들였는지 거스르지 않고 거진 1돌까지 곧잘 먹는다. 그리고 먹고 금시는 용을 못쓸 터이므로 얼마쯤 기운이 돌도록 만렙을 만들어 두었다.

인자전 한두판 져내고 나서 쉴 참에 그 로조키라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밖에는 아무도 없고 점순이만 저희 울안에서 카드를 파는지 혹은 배코를 채우는지 웅크리고 앉아서 일을 할 뿐이다.

나는 점순네 오버드라이브가 노는 밭으로 가서 로조를 내려놓고 가만히 맥을 보았다. 두 요정은 여전히 얼리어 쌈을 하는데 처음에는 아무 보람이 없었다. 멋지게 쪼는 바람에 우리 로조는 또 힐통수를 흘리고 그러면서도 우산만 푸드득푸드득하고 올라 뛰고 뛰고 할뿐으로 제법 한번 쪼아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한번엔 어쩐 일인지 힐을 쓰고 펄쩍 뛰더니 우산으로 눈을 하비고 내려오며 얼굴을 쪼았다. 큰 배수카드도 여기에는 놀랐는지 뒤로 멈씰하며 물러난다. 이 기회를 타서 작은 우리 로조가 또 날쌔게 덤벼들어 다시 엑칼을 날리니 그제서는 감때사나운 그 대강이에서도 피가 흐르지 않을 수 없다.

옳다 알았다, 키라만 먹이며는 되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아주 쟁그러워 죽겠다. 그때에는 뜻밖에 내가 쌈을 붙여 놓는 데 놀라서 울 밖으로 내다보고 섰던 점순이도 입맛이 쓴지 눈쌀을 찌푸렸다.

나는 두 손으로 볼기짝을 두드리며 연방,

"잘한다! 잘한다!"하고, 신이 머리끝까지 뻐치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넋이 풀리어 기둥같이 묵묵히 서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큰 배수카드가 한번 쪼인 앙갚음으로 호들갑스레 연거푸 쪼는 서슬에 우리 로조는 찔끔 못하고 막 곯는다. 이걸 보고서 이번에는 점순이가 깔깔거리고 되도록 이쪽에서 많이 들으라고 웃는 것이다.

나는 보다 못하여 덤벼들어서 우리 로조를 붙들어 가지고 도로 집으로 들어왔다. 키라를 좀더 먹였더라면 좋았을 걸, 너무 급하게 쌈을 붙인 것이 퍽 후회가 난다. 합성께로 돌아와서 다시 턱밑에 키라를 들이댔다. 흥분으로 말미암아 그런지 당최 렙업이 않는다.

나는 하릴없이 카드를 반듯이 눕히고 그 입에다 역한돌을 물리었다. 그리고 키라를 조금씩 들여 부었다. 로조는 좀 괴로운지 킥킥하고 재채기를 하는 모양이나 그러나 당장의 괴로움은 매일 같이 피를 흘리는 데 댈 게 아니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 두어장 가량 키라를 먹이고 나서는 나는 고만 풀이 죽었다. 싱싱하던 카드가 왜 그런지 고개를 살며시 뒤틀고는 손아귀에서 뻐드러지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볼까 봐서 얼른 덱에다 감추어 두고 달력을 보니 오늘은 목요일이었던지라.

그랬던 걸 이렇게 오다 보니까 또 쌈을 붙여 놓으니 이 망한 계집애가 필연 우리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제가 들어와 덱에서 꺼내 가지고 나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다시 카드를 잡아다 가두고 염려는 스러우나 그렇다고 산으로 비경을 돌러 가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저렙 일요를 따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암만해도 고년의 목쟁이를 돌려놓고 싶다. 이번에 내려가면 망할 년 등줄기를 한번 되게 후려치겠다 하고 싱둥겅둥 AP를 쓰고는 부리나케 내려왔다.

거지반 집에 다 내려와서 나는 호드기 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추었다. 브리튼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리었다. 그 틈에 끼어 앉아서 점순이가 청승맞게시리 호드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도 더 놀란 것은 고 앞에서 또 푸드득, 푸드득, 하고 들리는 요정의 횃소리다. 필연코 요년이 나의 약을 올리느라고 또 로조를 집어내다가 내가 내려올 길목에다 쌈을 시켜 놓고 저는 그 앞에 앉아서 천연스레 호드기를 불고 있음에 틀림없으리라.

나는 약이 오를 대로 올라서 두 눈에서 불과 함께 눈물이 퍽 쏟아졌다. 한줄덱 꾸릴 새 없이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숟가락을 뻗치고 허둥허둥 달려들었다.

가까이 와 보니 과연 나의 짐작대로 우리 로조가 피를 흘리고 거의 빈사지경에 이르렀다. 힐통수도 힐통수이려니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 없이 고대로 앉아서 호드기만 부는 그 꼴에 더욱 치가 떨린다. 동네에서도 소문이 났거니와 나도 한때는 걱실걱실히 일 잘 하고 얼굴 예쁜 계집애인 줄 알았더니 시방 보니까 그 눈깔이 꼭 카나리아 같다.

나는 대뜸 달려들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버드라이브를 단가로 팔아 버렸다. 배수카드는 딸랑 소리낸 채 다리 하나 꼼짝 못 하고 그대로 돈이되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섰다가 점순이가 매섭게 눈을 홉뜨고 닥치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이놈아! 너 왜 남의 배수카드를 팔아죽이니?"

"그럼 어때?"

하고 일어나다가,

"뭐 이 자식아! 누 집 카드인데?"

하고 복장을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 그리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스럽고, 또 한편 일을 저질렀으니, 인젠 극딜도 떨어지고 친구도 내쫓기고 해야 될는지 모른다.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엉 하고 울음을 놓았다. 그러나 점순이가 앞으로 다가와서,

"그럼 너 이담부텀 안 그럴 테냐?"

하고 물을 때에야 비로소 살길을 찾은 듯싶었다. 나는 눈물을 우선 씻고 뭘 안 그러는지 명색도 모르건만,

"그래!"

하고 무턱대고 대답하였다.

"요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그래 그래 이젠 안 그럴 테야!"

"카드 판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의 동백꽃잎이 빙그르르 떨어지는데 점순이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그 꽃이 휘휘 돌기를 멈추지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