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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자살을 두 번이나 시도했다. 야구 글러브 공장에 다닐 때 프레스에 왼쪽 팔목 뼈 하나가 잘려나가 장애인이 됐다. 그런데도 공장 선배에게 두들겨맞고, 찬 도시락을 먹으며 공장을 다녔다. 열일곱 살 사춘기일 때 장애인이라는 사실과 희망 없는 현실에 나는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연탄불이 꺼져 실패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자살을 시도했다가 자형이 구해 살아났다. 이후 나는 ‘죽을 힘으로 살기로 작정’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잠을 쫓기 위해 바늘로 찌르고 아카시아 나무에 몸을 비비고, 책상에 압정을 뿌려놓고 공부했다고 한다. 그런 처절한 공부 끝에 그는 1년 만에 중학교 검정고시,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중앙대 법대)에 월급까지 받는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리고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판·검사가 돼 이젠 정말 잘 먹고 잘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다짐에 ‘재’를 뿌린 사건과 사람이 있었다. 사건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이다. 그는 “무지했던 10대 공장노동자일 때 나는 광주시민을 폭도라고 얘기하고 다녔다”면서 “대학에 진학해 광주의 진실을 알고 속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의 운명을 바꾼 사람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는 사법연수원 시절 노 변호사의 강연을 듣고 ‘사회운동에 나서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는 1989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활동하는 한편, 사실상 고향인 성남에서 시민운동에 나섰다.
그는 “전국 최초로 주민이 발의한 시립의료원 조례가 시의회에서 47초 만에 날치기 폐기되는 것에 항의하다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수배됐던 적이 있다”면서 “교회 지하에서 시장이 돼 직접 시립의료원을 만들기로 결심한 날짜가 바로 2004년 3월 28일 오후 5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서 낙선했다가 2010년에 당선됐다. 그리고 약속대로(중간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2013년 11월, 그는 성남시장으로서 시립의료원 기공식 버튼을 눌렀다. 2017년 하반기에 준공되는 성남시립의료원은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 삼성의료원에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던 음압병상을 32개나 갖추고 있다. 그는 2014년 시장에 재선됐다.
출처 |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60123171938244&RIGHT_REPLY=R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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