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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제목 미안해요. 근데 적절한 말인 것 같아요.
술 마시고 나서 쓰는 글이라 이걸 술 게시판에 써야 하나 여기다 써야 하나 고민하다 그냥 여기다 써요.
심하게 취하진 않았어요. 그냥 게임을 즐기는 유저?플레이어? 분들에게
개발자는 이런 고민을 안고 산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걸지도 몰라요.
그냥 신세한탄일수도 있고요.
게임 기획자라는거... 정말 모순 깊은 직업인 것 같아요.
게임을 좋아하고, 내가 만든 게임 사람들이 즐겨주는거 너무 행복해서,
그리고 만드는 과정이 너무 좋아서 이 직업을 선택했어요.
근데, 아... 기획을 하다보면, 게임을 분석하는 버릇이 생겨요. 아 이건 이러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발됐구나.
이건 이러한 의도가 있어서 이렇게 했구나. 이건 이걸 위해 이러한 구조를 만든 거구나.... 등...
게임이 재미 없어요. 뭘 해도 재미 없어요.
난 게임을 좋아해서 이 직업을 한건데, 게임 불감증이 생겼어요. 이 직업을 가지고 나서 부터.
전 게임에 있어서는 고자가 됐어요. 근데 게임을 만들어야 해요.
이 직업을 버리지 않고서는 게임을 순수하게 즐길 수 없어요.
하지만 전 게임을 순수하게 즐기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하지만 전 게임을 순수하게 즐길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뭐가 좋은 게임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어요.
게임을 즐기는게 아니라, 게임을 데이터로 만들어요.
몇분 간격의 컨텐츠, 그 안의 목표는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마인드맵, PPT, VISIO.... 게임이 도표로 바뀌고, 분석하고 분석하고 분석하고...
WOW의 퀘스트 시간 간격 계산하고 그걸 토대로 컨텐츠를 배치해 본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곳에 순수한 재미를 넣어 재탄생 시키기 위해 노력했어요.
하지만 전 고자예요. 순수한 재미가 대체 뭐죠? 전 이미 판단 능력을 상실했어요.
그 문서는 제 직업의 모순만 부각시키는 역할만 했어요.
게임을 하는 건 트렌드를 알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정말 싫어하는 장르인데 해야해요. 당장이라도 그런 장르를 만들어야 할 수도 있으니까.
너무 좋아하는 게임인데 제쳐둬야 해요. 내가 만드는 게임 컨셉이 갑자기 바뀌었거든요.
일이니까요. 난 돈을 받고 일을 하는 프로니까요.
돈을 받고 하는 거니까 전 책임을 져야해요. 한탄과 변명과 칭얼거림은 누워서 침뱉기예요.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봐도 괴로워요.
평생 내가 좋아할 일을 선택하자, 해서 이 업계로 왔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니까 괴로움이 두배예요.
내가 즐겼던, 너무도 좋아했던 게임이란 존재가 데이터고, 사업이고, 직업이 됐어요.
전 제가 즐겼던 인생의 한 부분을 영원히 잃어버린 것 같아요.
4년전 초봉 1700. 야근, 철야 수당 따윈 없어요.
회사에서 음료수 무료로 준다고 애들처럼 좋아하면서 일해요.
노조 따윈 없는 업계예요.
월급 안준다고 같이 싸워줄 사람도 없어요.
업계가 좁아서 싸웠다간 취직 못할지도 몰라요.
일주일 동안 경제 밸런스 잡았어요. 모든 던전 아이템 입력과 밸런싱도 잡았어요.
모든 몬스터 보상, 퀘스트 보상도요. 그러면서 신규 스킬 30여개 연출, 데이터 입력 다 했어요.
그리고 유저분들에게 욕먹었어요.
회의실 책상 위에서 누워서 자다가 눈물이 났어요.
게임을 좋아해서 업계에 온 나는, 게임을 즐기지도 못하고, 게임도 잘 못 만들고
내가 만든 게임 즐겨주는 분들에게 즐거움도 못주고 욕이나 먹는 개발자가 됐네요.
게임을 즐겨주시는 고마운 분들에게.
게임을 이따위로 만드냐, 너넨 일 안하고 땡가땡가 놀기만 하냐.
비판을 들어도 재미없게 만든 전 할 말이 없어요.
제가 만든 게임에 시간을 소모한 분들에게 미안하고, 미안해요.
정말 잘하고 싶은데, 능력이 너무도 부족해요.
박봉에 일하는 시간은 더럽게 많은, 이 직업.
열정 없으면 오래 못 버텨요.
그나마 버티는게 내가 만든 게임 응원해주시는 분들.
그분들의 멘트 하나로 힘내서 일해요.
이런 건 좋더라, 다음엔 이런거 더 추가해달라. 이건 별로다. 다음엔 잘해라. 등등...
그냥, 이런 말이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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